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성 Jun 17. 2022

백제의 고도(古都) 공주·부여를 흐르는 금강여행 1편

충남 공주 부여 금강 자전거여행 

백제문화가 담긴 축제가 열리는 금강 

강 이름에 비단 금(錦)자가 들어가 비단 같이 곱고 아름다운 물결이 떠오르는 금강. 전라북도 장수의 신무산(895m) 자락 뜬봉샘에서 발원해 서해로 흐르는 긴 하천으로 한국의 4대강 가운데 하나다. 세종시,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를 지나 논산, 강경, 서천,  등을 지나 군산 금강하굿둑에서 바다와 만난다. 


강변을 따라 146km의 금강 종주 자전거길이 이어져 있어 하천여행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비단강이라는 별칭처럼 강변길의 기복이 거의 없고 험하지 않아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자전거 종주가 가능하다. 금강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 도로를 달려보니 최고의 풍경은 1500년 전의 고도(古都, 옛 도읍) 공주와 부여를 지나는 강변길이 아닐까싶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2년여의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관광용 황포돛배가 떠다니고 금강과 어우러진 여러 축제가 열리고 있어 더욱 좋다.    


금강이 백제의 역사적 중심지로 떠오르는 계기는 백제가 두 번에 걸쳐 수도를 옮기는 천도를 통해서였다. 백제의 역사는 과거 속으로 사라졌지만 역사가 남긴 옛 문화의 숨결은 금강의 도도한 흐름과 함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한성(서울시 강남 일대)이 함락되자 475년(문주왕 1) 현재의 공주지역인 웅진(熊津)으로 천도했다. 웅진 시기는 왕릉 발굴로 유명해진 무령왕이 재임하며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웅진은 한 왕조의 도읍으로는 좁았다. 따라서 해외진출에 유리하고, 보다 넓은 평야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성왕 16년인 538년 뻗어나가는 왕국 건설의 웅장한 꿈을 품고 사비(泗沘), 오늘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고 국명도 백제에서 남부여로 바꾸면서 중흥기를 구가하기 위해 노력한다.  


공주시민들에게 휴식과 힐링을 주는 금강 수변공원 

자연 속 산책길이 좋은 쌍신생태공원

공주의 금강은 석장리 구석기유적·공산성·고마나루 솔숲 등 공주의 유물과 자연을 어루만지듯 흐른다. 어느 곳 하나 금강과 어우러진 주변 풍광을 접하지 않는 곳이 없다. 특히 공주 시민들에게 휴식과 힐링을 주는 수변공원들이 많다. 공주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공산성이 가장 잘 보이는 강 건너편에 금강신관공원과 하중도(河中島) 미르섬이 있다. 미르섬은 공산성에 야간 조명이 켜지면 성곽이 마치 용의 형상과 같은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용의 순 우리말인 ‘미르’를 붙였다. 또한 공주대교 옆에 있는 작은 하중도는 새들의 쉼터라는 뜻으로 새들과 나들목의 어원인 목을 합쳐 ‘새들목’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천리물결 금강이 공주의 연미산에 부딪혀 남으로 급히 물길을 돌리는 곳, 쌍신동 마을 강변엔 쌍신생태공원이 있다. 낚시하는 강태공 말고는 사람들이 찾지 않았던 곳이었단다. 천연습지가 남아있고 갈대밭 풍성한 쌍신동 강변공원은 곁에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이 들어서면서부터 자연미와 예술이 있는 공원으로 시민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은 '자연미술'로 특성화된 국내 유일의 친환경 생태미술공원이다. 이곳에서 쌍신생태공원까지 국내외 작가들의 야외 설치작품 100여점이 자연과 어우러져 전시되어있다. 

울창한 솔숲이 이어지는 고마나루
강변에 자리한 석장리 구석기 박물관

연미산 자연미술공원 건너편에 있는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이다. 고마는 곰(熊)을 뜻하고 나루는 진(津)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주를 곰나루라고도 불렀고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 썼다. 곰과 관련된 이러한 명칭들은 고마나루의 암곰에 관한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마나루 설화는 백제가 곰을 신성시하며 종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고마나루 강변에는 곰사당, 웅진단 터 등 전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고마나루에 닿으면 무성한 솔밭이 운치를 더한다. 빼어난 자태의 소나무 숲과 강변의 금빛 백사장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구석기시대 유물을 간직한 석장리 박물관도 금강변에 자리하고 있어 들르기 좋다. 앞에는 유유히 금강이 흐르고 있고 넓은 잔디와 초록빛 산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석장리 박물관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석장리 유물이 발굴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역사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었다. 구석기 시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긴 시대다.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까지를 24시간이라고 가정하면, 구석기시대가 차지하는 정도는 약 23시간 56분을 넘어갈 정도라고 한다. 현생 인류가 오래된 것 같지만 구석기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금강은 백제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훨씬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약 1만 년 전 구석기인이 그 주인공이다.


금강의 동생 하천, 정안천과 제민천

습지와 숲이 있는 정안천 생태공원
여행자에게 기운을 넣어준 벚나무 열매 버찌

정안천은 하천 연장 약 29㎞로 금강의 제1지류이자 공주시의 대표적인 하천이다. 하류 둔치에는 33만㎡(10만평) 규모의 큰 생태공원이 조성되어있다. 갖가지 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자전거 도로와 대나무 정자, 장대한 메타세쿼이아 나무길 등 나들이 시설이 설치돼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농경지로 쓰다가 버려졌던 땅을 습지와 꽃밭, 생태 탐방로로 조성한 곳이라 더욱 의미 있는 공원이다. 


초봄엔 하얀 꽃잎을 휘날려 눈을 즐겁게 주더니, 여름에 들어서자 달콤한 열매를 내어주는 벚나무도 천변에 도열해 있다. 까만 구슬 같은 벚나무의 열매 이름은 버찌, 순우리말 이름도 참 예쁘다. 먹으면 기운이 나는 보약 같은 열매 오디를 선사해주는 뽕나무도 여행자의 친구 같은 나무다. 

 

정안천에서 백제큰다리를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제민천은 공주 시가지 남쪽에 있는 금학동에서 발원해 금강으로 흐르는 길이 4.2㎞의 동네하천이다. 작은 하천이지만 오랫동안 공주 시민들의 삶 속 깊숙이 들어온 물길이다. 예부터 공주의 시가지는 제민천 양편에 들어섰다. 공주목  관아, 충청감영 등 고려와 조선시대 주요 관청 건물부터 공주시청 공주고교 공주의료원 등 공주의 근대를 열었던 주요 시설들이 모두 제민천 주변에 지어졌다. 제민천은 아이들이 뛰어놀던 놀이터였고, 아낙들의 빨래터였다. 공주에 처음 상수도 시설이 만들어졌을 때, 그 물을 공급해 준 곳도 제민천 상류였다. 

공주 원도심을 지나는 제민천
제민천에서 만나는 공주산성시장

공주로 유학 온 하숙생들이 자리를 잡은 곳도, 그들이 즐겨 찾던 분식집도 제민천 주변에 있다. 공주 원도심의 속살을 제대로 느껴보길 원한하면 제민천만한 곳이 없다. 하숙마을, 중동성당, 황새바위 등 숨은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것도 재미다. 공주에는 일제강점기 지역 유지와 관료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명화학교를 시작으로, 여러 학교가 세워졌다. 


특히 1960~1970년대에는 공주고·공주여고·공주사대 부속고 등 명문학교가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청운의 꿈을 품고 공주로 ‘유학’온 학생들이 늘었고, 자연스레 하숙업이 발달했다. 하숙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들은 마당의 펌프·노란 장판·마루 등 당시 일반적인 하숙집의 모습을 꾸며놓아 묵고 싶게 한다. 

 

제민천을 따라가다 보면 대동 1길을 중심으로 조성된 특색 있는 골목들이 반긴다. 가장 먼저 공주사범학교 출신인 나태주 시인의 이름을 딴 ‘공주시 나태주 골목’이 보인다. 시화(詩畵)로 담벼락을 장식해 황량해 보일 수 있는 골목을 아기자기하게 채웠다. 조용히 골목을 걷다보면 간간이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중간 중간 어지러이 피어난 풀꽃들이 보인다. 자연스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는 시구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대표 시 ‘풀꽃’을 떠올리게 돼 더 자세히 바라보며 걷게 된다. 

공주에서 이름이 유래한 인절미
세계문화유산이 된 공산성

제민천변에 자리한 공주 산성시장은 백제의 왕궁터였던 공산성 성곽 바로 아래 있다. 1937년에 개설된 공주를 대표하는 시장이다. 끝자리 1일과 6일, 장이 서는 날 맞춰 온다면 상설시장과 다른 오일장의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공주의 특산물인 알밤으로 만든 알밤모찌, 알밤인절미 등을 맛볼 수 있다. 공주를 대표하는 명물 중 하나가 바로 인절미로, 매년 인절미 축제를 할 정도다. 인절미의 어원이 재밌다. 조선시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쫓아내고 인조가 즉위한 뒤 얼마 안 되어 ‘이괄의 난’이 터졌다. 이를 피해 공주로 피난을 온 인조에게 인근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떡을 대접했다. 떡을 맛본 인조는 그 맛이 아주 뛰어나다며 절미라는 표현을 했다. 이후 임씨가 만든 절미라는 뜻으로 ‘인절미’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산성시장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백제의 대표 성곽인 공산성(사적 제12호)을 볼 수 있다. 백제 시대엔 웅진성이라 불렸던 공산성은 당시에는 토성이었지만 조선 인조 때 석성으로 개축해 현재에 이른다. 공산성은 공산(110m)에 지은 성곽으로 2.6km의 둘레길이 이어져 있어 부담 없이 거닐 수 있다.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한 중심 산성으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공산성에는 여러 이야기를 품은 크고 작은 누각과 건물, 왕궁터 등이 남아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산성 꼭대기에 지은 정자 공산정에 오르면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공주시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비단길처럼 편안한 공주~부여 사이 금강 길

금강을 달리는 자전거 여행자
금강변에서 야영할 수 있는 캠핑장

공주에서 금강을 따라 부여까지 약 30km의 물결이 강변 자전거 길을 따라 이어진다. 비단길처럼 부드럽고 거칠지 않은 강변길이다. 공주~부여 간 금강은 한국적 강변 풍경의 전형이다. 강은 넓거나 깊지 않고 산은 높거나 험하지 않아 자연마저 둥글둥글 중용의 미덕을 구현하고 있다. 직선도 아니고 곡선도 아닌, 무던한 물줄기 따라 느긋하게 달렸다. 강변길은 언제나 고요하고 아늑하지만 백제의 비운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고구려에 서울 한성을 함락당하고 공주로 후퇴했다가 부여까지 더 남하한 퇴로이기 때문이다. 부여에서 백제는 부흥을 꾀하지만 기어이 700년 사직의 최후를 맞고 만다. 

 

4대강 개발사업 당시 금강에 지은 공주보에서 부여의 백제보는 여행자에게 반가운 쉼터 같은 존재다. 금강에는 공주보와 백제보 외에 세종시의 세종보가 놓여있다. 보(洑)는 하천 상황에 따라 물막이 역할을 하거나 물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근 논밭에 농업용수를 대주거나, 차량과 사람들이 강을 건너갈 수 있는 교량역할을 겸하고 수력발전도 하는 등 여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공주보는 폭포처럼 시원한 낙하분수 물줄기가 쏟아져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보 주변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 창문으로 된 휴게실은 직원용이지만 여행자도 이용할 수 있게 배려했다. 편안한 쇼파,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정수기와 커피, 차가 마련되어 있다.  

보(洑)에서 보이는 아늑한 금강
금강일대가 펼쳐지는 백제보 전망대

보는 홍수에 대비해 높게 지어져 눈과 가슴이 탁 트이는 전망대 역할도 한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금강 풍경이 보기만 해도 심신이 힐링 되는 기분이다. 소통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금강 물길을 가로막고 있던 보를 열면 기다렸다는 듯 수질이 개선되고 모래톱과 습지가 생기며 천연기념물 등 많은 동식물이 돌아온다. 공주보는 완전 개방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부여에 있는 백제보의 경우는 수문 개방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보를 열어 수위가 낮아지니 농사에 쓸 지하수가 부족해진다.”는 인근 농민들의 민원이 제기돼서다. 보가 생기고 지하수위가 높아지자 백제보 주변 지역에서 이 지하수를 활용한 농사가 크게 늘어난 때문이다. 

 

부여에 닿았음을 알려주는 곳이 백제보다. 한적한 평야 가운데 우뚝한 백제보는 신기루 같은 경이감과 반가움을 준다. ‘이제 부여에 다 왔구나, 쉬어갈 수 있겠구나’ 같은 마음이 든다. 백제보는 모든 것이 시원시원하고 여유롭다. 높고 장쾌한 전망대, 편의점, 산책로까지 풍성하다. 전국의 16개 보 중에서 가장 멋진 곳이지 싶다. 


백제보의 모습은 말을 타고 백마강을 바라보는 계백장군의 갑옷과 말안장을 기품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백제보에서 울려 퍼지는 계백장군의 함성이 저 멀리서 여기까지 들리는 듯 했다. 야외에 마련된 약 35m 높이의 전망대에서는 주변 금강 경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백마강과 백제보, 금강하굿둑 등 최고의 금강 풍경이 펼쳐진다. 백제보를 둘러보다보니 건너편의 왕진나루와 함께 금강 5경으로 지정될만하다. 






작가의 이전글 서울 최고의 ‘숲세권’ 동네, 우이동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