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이라는 행위

200208

by 태양


자습이 끝난 11시 30분. 저녁의 한기를 그러려니 받아들이며 친구와 함께 산책길을 나선다. 걸음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시간을 앞에 두니, 쌀알을 찾은 개미의 기쁨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을것만 같다.


시대에 맞지 않으려나 싶지만,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많이 걷는 것’보단 ‘천천히 걷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에 속한다. 뭐,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걸으며 사색하는 나와 온전하게 느껴지는 세상의 풍경들을 좋아한다’라고 하는게 맞는 것 같긴 하다만.. 아무튼간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10분 거리도 느릿느릿 1시간을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걷는 걸 좋아하기 떄문에, 나는 종종 이유 없는 걸음을 이끌곤 한다. 공부를 하다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간다든지, 추운 날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를 거절하고 집까지 걸어 간다든지 하는 방법들로 말이다. 한번은 학교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산책을 나갔던 적도 있다. (이를 고급 용어로 땡땡이라고 한다.) 나가는 것까진 완벽했는데, 다시 돌아오는 길에 자습감독 선생님한테 걸려 된통 혼났었지 아마.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얼마 전, 평소랑 다를 바 없이 걷다가, 하루는 문득 ‘사회가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걸음 자체를 하나의 행위나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주위를 둘러봤다. 역시나였다. 핸드폰만 쳐다보며 걷는 사람들, 시간에 쫓겨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걸음을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니, 거의 전부였다.


‘걷기 매니아’인 나로써는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다는 소리는, 멈춘 것처럼 흐르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는 소리와 같으니까. 시간에 쫓겨 산다는 얘기는,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잠깐의 여유도 없다는 얘기와 다름이 없었으니까. 세상이 언제부터 이리 빨리 흐르게 되었는가? 또 세상이 언제부터 이리 삭막해져 버렸는가. 집에 들어갈 때 까지, '여유로움을 갖지 못하는 세상이, 천천히 걷는 이의 걸음을 의아하게 여기는 세상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자습이 끝난 뒤의 산책을 생각하며 피식하는 것을 보니, 난 여전히 걷기를 사랑하는 것 같다. 친구와 함께하는 산책은 추운 저녁 입김마저 몽환적인 은하수로 만들더라지. 늦은 저녁 천천히 걷다보면, 인간의 욕심이 낳은 대기오염 덕분에 하늘에는 생각보다 별이 없구나 하게 된다. 계속 걷다보면, 그럼에도 달은 여전히 밝구나 하게 된다. 꼭 걸어보시길 바란다. 기왕이면 조용한 저녁 천천히 걸어보시길 바란다. 걸어보면 보게 될 것이다. 걸음이 주는 세상의 괜찮은 모습들을. 봄에는 꽃향기가, 여름에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가을에는 귀뚜라미 개구리가, 겨울에는 유난히 빛나는 달이 우리의 걸음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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