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내가 더 잘하겠다고 붙잡던 때가 있었다.
상대가 한 걸음도 다가오지 않는다 해도 괜찮았다. 내가 두걸음 다가가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때의 나는 인연을 믿었다. 나를 향한 상대의 마음이 흐릿해도 내마음이 더 또렷하면 되었고, 상대가 나를 확신할 수 없어도 내가 더 안아주면 되었다. 사람을 잃는 게, 떠난 마음 곁에 무심히 서있는 것보다 훨씬 더 두려웠다. 그랬던 때가 있었다.
인연의 민낯을 마주한 건 시간이 흐른 뒤였다. 두걸음, 아니 세걸음도 더 다가오겠다며 내 곁을 맴도는 사람에게 도저히 마음이 향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 안의 냉정함은 동정심과는 별개로 반응했다. 나는 미안했지만 사랑할 수 없었고, 상대가 다가오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뒷걸음질쳤다. 그는 더 잘하겠다며 붙잡았지만 나는 도망쳤다. 결국 인연이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멀어지는 친구,
멀어지는 연인,
멀어지는 사람들.
내게 가족만큼이나 가까웠지만 어느새 내 곁을 떠나는 사람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었기를 바랄만큼 차갑게 등을 돌리는 나의 인연들.
아프지만, 그 어느 때보다 힘들지만 나는 이제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인연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닿을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헤어짐은 내 안에서 상대방을 완전히 죽이는 행위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는 헤어짐이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상대를 완전히 삭제해버리는 일이라고 했다. 아니,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함께 있는 동안 만들어낸 추억과 시간이 서로의 삶에 녹아들어 인생을 조금씩 바꿨을테니, 그것으로 인연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의미조차 남아있지 않다면 삶이 너무나 삭막하지 않은가.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인연을 또 한 번 흘려보낸다. 씁쓸하지만 함께 했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으니 그걸로 됐다. 혼자 이어가는 인연은 없으니까. 원래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