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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Oct 10. 2020

01. 임신 준비는 처음이라

스스로를 기억하기 위해 시작하는 임신 준비 일기.

이 시기를 지날 또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기를.





#결혼, 그리고 임신준비


우리 부부는 결혼 때부터 만약 아기가 생기면 감사한 마음으로 낳자고 뜻을 모았다. 부랴부랴 임신을 준비할 만큼 절박하거나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지만, 막연히 ‘아기가 생기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도 있어 내린 결정이었다. 신랑과 나의 나이는 30대 초중반. 둘다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양가 부모님은 다행히 임신을 보채지 않으신다. 큰 부담없는 환경에서 우리는 별다른 피임 없이 자연임신을 시도하며 6개월을 보냈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 건 결혼한 지 7개월 쯤 되던 때였다.  주위에선 별 노력없이 자연임신이 되는 사례가 하나둘 생기는데 우리는 깜깜 무소식이었다. 게다가 나의 몸은 생물학적인 난임 기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통상 결혼 후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도 12개월 간 임신이 되지 않으면 난임으로 판정하는데, 여성의 나이가 만 35세 이상인 경우엔 그 보류 기간이 6개월로 줄어든다. 즉 정상적인 부부생활 6개월에도 임신이 안되면 난임이라고 보는 것이다. 만 35세가 얼마 남지 않은터라 우리 부부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검사를 받아봐야 하는 건가? 아님 난임병원을 가야 하나?’


#산전검사가 뭐야?


고백하자면 나는 임신준비에 무지했다. 산전검사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때쯤, 그러니까 임신을 진지하게 고민하던때쯤 인터넷 서핑을 통해 ‘산전검사’의 존재를 알게 됐다. 보건소나 일반 산부인과에서 검사할 수 있고, 요즘엔 많은 예비신부들이 결혼 전부터 필수로 이 검사를 받아둔다는 것도. 임신준비가 막막했던 우린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산전검사부터 받아보기로 했다.


혼자 동네 보건소를 찾은 날은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었다. 예비맘 검사실로 올라가면서 ‘맘’이라는 단어의 생소함과 이질감을 거듭 느꼈다. 내 몸 하나 간수할 줄 모르는 내가 맘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한다니. 마치 인생의 새로운 챕터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흰 가운을 걸친 퉁명스러운 직원이 사무적으로 순서를 알려줬다. 키와 몸무게, 허리둘레를 재고 소변을 받아오고 피를 뽑을 것. 엑스레이는 선택사항이니 원하는대로 할 것. 직원의 표정을 보며 이 ‘예비맘 검사’ 또한 나에게만 새로울 뿐 이들에겐 그저 지루한 업무일 뿐임을 또 한 번 깨닫는다.

모든 검사 과정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검사결과는 온라인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퉁명스러운 여자의 마지막 안내를 듣고 보건소를 터벅터벅 걸어내려왔다. 별 특별한 검사가 아니었는데도 마음이 외롭고 허전했다. 무섭기도 했고. 눈발은 여전히 흩날리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임신의 임 자도 모르는 임신 무관심자였다. 임신 자체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원래 결혼 생각이 없던 비혼주의자였고, 산전검사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도 결혼한 지 6개월만에 처음 알았으니까. 그러다보니 아직까지도 '왜 네 몸에 관심을 갖고 임신을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았냐'는 핀잔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뭐, 지금이라도 알고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어딘가. 결혼이 그렇듯 임신 또한 둘의 선택이기에 반드시 준비해야 할 정해진 기간은 없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다잡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 서툴러도 괜찮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됐어도 임신 준비는 처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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