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차병원 전원, 이제부터 본게임 시작이야
병원은 각기 특색이 있다. 미래와희망은 웅장하고 세련된 분위기였는데 강남차병원 난임센터는 다소 올드하고 정감가는 분위기다. 4-5층 정도 되는 낮은 건물 안에 식물들이 자란다. 직원들도 친절한 편이다. 나는 상대적으로 편안한 감정을 느꼈다.
입구에서 손에 소독제를 슥슥 바르고 열체크와 방문일지작성을 마친 뒤, 수납창구에서 진료 접수를 했다. 그리고는 진료실이 모여있다는 2층으로 올라갔다.
검사가 아닌 치료를 위해 와서 그런걸까. 난임병원에 처음 방문한 것도 아닌데 괜히 긴장감이 높아진다. 나는 진료실 앞에 앉아 신랑의 손을 잡았다.
교수님 시술이 늦어지셔서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예약시간이 다 되어도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아 의아해하는 찰나, 간호사가 와서 친절히 상황설명을 해줬다. 교수님 시술이 조금 늦어지신단다. 곧 오실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란다.
연차를 냈으니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시술때문에 교수님 진료가 늦어진다고? 설마 그 시술이 내가 아는 시술인가? 인공수정이나 시험관같은?
나는 인공수정, 시험관은 이름만 시술일 뿐 수술과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술실에 누워 수술같은 시술을 끝내면 선생님은 지쳐 쓰러지시겠지, 그리고 나는 며칠을 앓아눕겠지. 그런데 간호사는 마치 시술이 아주 간단한 스케줄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뭐가 진실이지?
그 때였다. 타닥타닥,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옅은 구두소리를 나며 진료실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1분도 안되어 안내판에 내 이름이 떴다. 아. 시술은 이름그대로 시술이었다. 의사선생님이 시술 직후에 자기 방으로 뛰어와 별다른 휴식 없이도 진료를 바로 볼 수 있는, 시술.
일단 나이는 어리네요. 잘 오셨어요. 먼저 난임검사부터 하시죠.
우리의 자초지종과 히스토리를 들은 교수님은 차병원에서 다시 난임검사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피검사, 초음파, 나팔관조영술 3종세트 모두.
나는 미래와희망에서 피검사를 완료한 후였고 동네병원과 미래와희망의 진료결과지를 모두 제출했기때문에 대체 왜 난임검사를 다시 하라고 하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피검사, 초음파는 시술 준비 과정에서 환자가 호르몬 수치와 난포상태 점검을 위해 주기적으로 받는 흔한 검사였다. 그리고 나팔관조영술은 지금까지 아예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한번은 부딪쳐야 한다. 결국 응당 받아야 하는 검사인 것이다.
신랑은 정자활동성 검사를 같이 시행하기로 했다. 여자는 몸을 뚫어 속을 봐야 하고 남자는 억지로 배출해야 한다. 몸은 여자가 힘들테지.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우리둘 모두 힘들다.
다음 예약을 잡고 집으로 오는 내내 신랑에게 물었다. 왜 우리가 이 진료를 받아야 할까? 우리는 아직 난임을 판정하는 기준에도 미치지 않았는데, 왜 많은 돈과 시간을 써서 여기에 있어야해? 옆에서 조용히 운전하던 신랑이 한마디 건넨다. 선생님이 어차피 아기가질 생각이 있으면 처음부터 의학의 힘을 빌려 준비하는 것도 좋다고 하셨잖아.
하긴, 신랑 말이 맞다. 자연임신이 될 때까지 맘편히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그게 1년이 될지 4,5년이 될지는 모르니 처음부터 몸관리하며 준비하는 것도 좋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괜히 무서워서 지금 이 상황을 빠져나갈 이유를 억지로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이토록 담담한 신랑과 함께라면, 지금껏 그랬듯이, 이 무섭고 막연한 일도 즐겁게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이 시술 후 쉬는시간 없이 바로 진료하실만큼 가벼운 건데 뭐. 수술이 아닌 시술이잖아.
나는 더이상 이유를 만들어내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