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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Jan 03. 2021

04. 어쩌다 마주친 진실

내가 다시 난임병원을 찾게 된 이유

내 몸상태가 안좋다고?


아, 이거 제대로 검사해봐야겠는데요.


산부인과 선생님은 모니터를 보며 연신 미간을 찌푸렸다. 방광염이 심해져서 신우신염까지 번졌어. 몸이 염증 투성이에요. 그런데 초음파로 보니까 자궁쪽도 전반적으로 건강하지가 않아. 상세한 검사가 좀 필요하겠어요.


어느날 소변을 보는데 갑자기 피가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소변만 보면 아랫배가 늘어지게 아프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방광염 증상인 것 같아 내과를 가려다가, 아기를 준비중이니 겸사겸사 동네에 있는 작은 산부인과에 들렀다. 그런데 내 자궁이 전반적으로 안좋다니. 검사가 필요하다니.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갑작스런 난임병원 전원


선생님은 방광염과 신우신염을 약물로 치료한 후에 자궁초음파, 자궁경부암검사 등을 해보자고 하셨다. 잔뜩 겁에 질린 나는 방광염이 낫자마자 바로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좋지 않은 편. 자궁에 6cm가량 되는 근종이 있었고, 난소 주변에도 크고 작은 물혹이 보였다. 한쪽 난소의 기능도 떨어졌다.


엇, 그럼.. 저는 뭐부터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요 선생님?


선생님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일단 난소 물혹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니 크게 걱정할 것이 아닌데 문제는 근종이라고. 결혼 전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미리 수술로 근종을 제거한 후 임신이 잘 될 깨끗한 자궁 환경을 만들어두겠지만, 지금 수술을 하면 최소 3-6개월의 회복기간동안 임신할 수 없기 때문에 당장 수술은 어렵다고.


우리 병원 말고 큰 병원에 가서 본격적으로 계획적인 임신을 준비하는 게 낫겠어요. 기왕이면 난임 환자들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좋겠고요. 그 병원에서 자궁 근종을 없앨지 아니면 그대로 둘지, 시술을 할지 결정해줄거예요.


선생님은 난임병원으로 전원을 권유하더니, 나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보였는지 여러 악조건에도 임신한 사례를 줄줄이 언급하셨다. 임신이 잘 안되다가 마지막에 된 사례, 근종을 그대로 두고 임신했는데도 출산까지 완벽하게 해낸 사례.

하지만 내 귀에는 그게 좋게 들리지 않았다. 대체 내게 이 위안이 왜 필요하지? 내 몸상태가 이런 위안을 들어야 할정도로 심각한 상황인가? 라는 질문만 머릿속을 맴돌 뿐.


진료비를 계산하고, 엘레베이터로 건물 1층까지 내려와, 신랑에게 전화하면서 엉엉 울기까지의 기억은 매우 희뿌옇게만 남아있다.


복병은 우연히 마주한다


우리 부부는 몇개월 전 방문한 '미래와희망' 난임전문병원에서 둘다 문제가 없으니 마음 편하게 자연임신을 시도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안도했었다. 하지만 내 몸의 진실은 의외로 동네 산부인과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방광염을 치료하기 위해 들른 작은 산부인과에서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들었고, 난임병원 전원까지 추천받았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미래와희망 난임전문병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의 몸상태를 제대로 진단받기보다는 그저 믿고싶은대로 믿고 온 것 같다. 난임 진단에 필요한 초음파나 나팔관조영술은 무섭다고 검사받지도 않았고, '아무 문제없으니 자연임신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 기뻐하며 집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반쪽짜리 진료경험은 심리적인 위안만 줬을 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동네산부인과 진료를 끝내고 돌아온 날 저녁.

나는 신랑과 논의 끝에 이번엔 제대로 난임전문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기로 했다. 난임병원이라는 거부감드는 이름도, 무섭기만한 난임 진단 검사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내 몸상태를 현실 그대로 인정하고 용기를 내 대책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 우리가 선택한 난임전문병원은 미래와희망이 아닌 차병원. 이 곳에서 다시 새로운 난임진료 Part.2가 시작된다.

이번엔,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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