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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Jan 02. 2021

03. 난임병원은 너무 무서워!

초짜 신혼부부의 난생 처음 난임전문병원 방문기

#난임병원, 가? 말아?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거부감을 느낀 장소가 있다. 바로 산부인과다. 그런데 그보다 더 거부감이 느껴지는 장소가 있으니, ‘난임전문병원’이 그것이다.


난임, 듣기만 해도 어마무시하고 꺼려지는 단어.

난임전문병원,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  무섭고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

 나는 우리 부부가 난임인지도 잘 모른다. 우리는 아직 결혼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단지 좀더 체계적으로,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하고 싶은 상황일 뿐.

모두가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하려면 일반 산부인과에 가지 말고 난임병원으로 직행하라 한다. 그런데 어쩌나, 도저히 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걸.


#우리의 첫 난임병원, 미래와희망


 우리나라엔 유명한 난임전문병원 몇군데가 있다. 차병원, 미래와희망, 마리아병원 정도가 손에 꼽힌다. 전국 각지에서 난임 치료를 위해 이 병원들로 몰려든다.

우리 부부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냥 부담없이 검사나 받아보는 마음으로 난임전문병원을 가보기로 했다. 우리 부부로서는 매우 큰 결정이었다.


 우리가 처음 방문한 병원은 청담에 위치한 미래와희망 산부인과.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는 난임 전문이라 너무 난임의 세계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고, 마리아병원은 우리 거주지와 가까운 지점이 없었다. 그래서 이름만 들었을 때 세 곳 중 가장 덜 ‘난임 전문적’이고 덜 무서워보이는, 거주지와도 가까운 이 곳을 선택했다.

 


난임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
따뜻한 응원


 차를 세우고 병원 입구로 들어가니 이질감이 느껴진다.  손을 마주잡은 부부, 배가 남산만큼 부풀어오른 여자분. 여느 병원이 그렇듯 환자들의 표정은 무겁고 어두워보인다. 접수를 하면서 슬쩍 들어보니 여성은 80-85년생, 남성은 75-83년생이 많은  했다. 대부분 우리 부부보다는 나이대가 높다. 개중에 아주 어려보이는 친구들도 간간이 보였지만.


정부가 세계 최저 수준인 출산율을 높이려고 노력 중인데도, 한켠에는 아기를 갖기 위해 난임병원을 찾는 부부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나는 괜히 긴장되어 신랑의 손을 꼬옥 잡았다.


우리는 사전에 선생님을 딱히 알아보고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진료 가능한 여자 선생님이 랜덤으로 배정됐다. 진료실 앞에서 1분 정도 대기했을까. 바로 내 이름이 불렸다. 우리 부부가 진짜 난임전문병원 진료를 받는구나.


우리가 만난 선생님은 나이대가 나와 비슷한 3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그런데 뭐랄까, 나는 그녀에게서 아주 사무적이고 차가운 인상을 받았다.


내가 난임의 기준이 뭔지, 생리 주기상 임신 가능성이 높은 때는 언제인지, 난임으로 판명되면 어떤 절차를 거쳐 아기를 갖는지 물어보자 그녀는 귀찮고 피곤하다는 듯 매몰차게 답변을 했다.


만 35세가 지나면 정상적인 성생활 6개월에도 아기가

없으면 난임이에요. 그러니까 난임으로도 볼 수 있죠.

절차는 그 때 되면 말씀드려요.

생리 주기가 정확하면 이 날이 숙제일이죠.


 난임병원을 찾은 부부들은 대부분 마음이 약하고 민감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따뜻한 말과 응원 한마디에 큰 힘을 얻고, 차가운 말엔 쉽게 상처를 받는다. 나는 이때의 진료가 큰 아픔이 됐다. 직원들의 불친절함도 한몫했고.


결국 우리 부부는 마음 편한 게 최고라는 생각에 선생님을 다른 분으로 바꿨다. 알고보니 선생님을 중도 교체하는

경우는 이 병원에서 매우 흔했고, 우리를 진료한 젊고 입사한 지 얼마 안되어보이는 의사는 특히 더 전원율이 높은 듯 했다.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 “선생님과 합이 맞고 마음 편한  가장 중요하다”는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난임 기초검사, 그리고 진료 결과

난임병원에서 난임을 진단하려면 보통 세가지의 검사를 받는다. 여성 혈액검사, 질초음파, 그리고 나팔관조영술.


선생님을 바꾼 후 나는 피를 뽑아 난소의 나이를 판단하는 기초적인 검사를 받았다. 병원에서 정확한  검사를 위해 질초음파나 나팔관조영술을 권하기는 했지만 나는 무서워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신랑은 역시나 “맘편한 게 최고”라며 내 편을 들었고.

의사는 ‘난소나이도 문제가 없고 아직 결혼한  몇개월 되지 않았으니 배란테스트기로 날짜 맞춰가면서 자연임신을 두세달  시도해보세요. 그리고 나서도 소식이 없으면 다시 오세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세 번의 진료를 마치고 우리는 별 소득 없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진료비는 총합 20만원. 거의 갈 때마다 5-10만원의 진료비가 청구됐다. 돈이 없으면 임신 준비도 쉽지 않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느낀 순간이었다.


난임병원도 그저 아픈 사람이 모인 병원임을


난임전문병원은 우리 부부에게 심리적으로 아주 크고 높은 산이었다.

괜히 난임병원이라는 이름에 쫄아서 우리가 난임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결혼한지 1년도 안됐는데 이렇게까지 해야해?’라며 병원을 피해왔느니까.


하지만 방문하고 나선 이곳도 역시 사람사는 곳이고 평범한 병원임을 느꼈다. 그저 바라는 진료 분야가 ‘임신과 출산’일 뿐, 일반 병원인 것이다.


이후로 우리 부부는 ‘우리는 아무 문제없어. 자연임신이 곧 될거야’라고 위안했다. 하지만 내가 우연히 다른 병을 치료하던 중 뜻밖의 소식을 들으면서 그 위안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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