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난임검사 3종세트, 드디어 완료
나팔관조영술의 공포
난임병원을 다니는 여성분이라면 익히 나팔관조영술이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나팔관조영술은 여성 난임검사의 일부로, 조영제를 나팔관에 투여해 나팔관이 막혔는지 뚫렸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만약 나팔관이 양쪽 다 뚫려있으면 검사는 바로 끝나고, 양쪽 중 한쪽이라도 막혀있으면 그자리에서 뚫어버린다. 검사시간은 잠깐이지만 극강의 괴로움과 고통을 선사하기에 난임환자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나는 이 검사를 받기 싫었다. 그래서 미래와희망 병원에 기초검사차 방문했을 때도 간단한 피검사만 한 후 자연임신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은 피할 수 없다. 본격적으로 난임치료를 하기로 한 이상, 이 검사는 무조건 받아야 하니까.
고3시절 나는 수능이 빨리 끝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수능일이 다가오는 게 너무나 무서웠다. 나팔관조영술을 대하는 내 마음도 정확히 그때와 같다.
대망의 검사날. 나는 난임검사 3종세트인 피검사, 초음파를 가뿐히 끝낸 뒤 나팔관조영술 대기실에 앉았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기절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도 그러려나? 주사맞고 입원하는 것 아냐? 선생님이 정 무서우면 진통제를 하나 먹고 오라고 했는데 왜 나는 안먹고 왔지? 지금이라도 그냥 자연임신을 시도하겠다고 우기고 이 시술실을 박차고 나갈까? 호명되어 차가운 금속판 위에 눕는 그 순간까지도 내 머릿속은 온갖 잡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말그대로 ‘내 몸 속에 버터플라이가 쉼없이 날아다녔다’.
자, 이제 좀 불편하실거예요. 그런데 잠깐이에요. 아픈 건 1분도 안됩니다.
오른쪽에 선 선생님이 나에게 말을 건넨 뒤 왼쪽에 선 선생님으로부터 뭔가를 전달받았다. 아마 조영제 비슷한 것이겠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밑으로 불편한 이물감이 느껴지는 찰나, 갑자기 내 아랫배가 급속도로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무끈한 열감이 점차 강렬해지는 느낌. 왜이렇게 자궁쪽이 뜨거워지지? 라고 생각하건 그때, 평소 생리통보다 10배는 강한 생리통이 자궁을 타고 몸을 거쳐 뇌까지 전달된다. 이게 끝인가, 이제 끝나는 건가! 해방될 수만 있다면 이 순간쯤이야!
그때, 갑자기 열감과 고통이 쑤욱 사라진다. 아주 한순간에.
아. 공포과 괴로움은 실로 엄청났다. 하지만 빠르게 잘 끝난 것 같다. 나는 대단한 숙제를 해낸 마음으로 선생님에게 물었다. 다 끝난거죠?
그런데 선생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말없이 왼쪽 선생님에게 뭔가를 전달받은 그녀는 한참 후에 답한다. 한번 다시 해야겠네요. 약이 조금 샌 것 같아요.
내 엉덩이쪽에서부터 허리까지 흥건한 액체. 이게 바로 새어나온 약인가보다. 아,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유로 방금 전의 고통을 다시 느껴야 한다니. 화딱지가 난 나는 단단히 따져물었다. 약이 왜 새요? 애초부터 약을 덜 챙기신 책임이 있는 것 아녜요? 어려보이는 그녀는 약간 당황하더니 가끔 이런 경우가 있으며, 중대한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다.
중대한 문제가 아니기는. 의료계에서 흔한 일일지 몰라도 당하는 환자 입장에서는 절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 이 선생님들에게 더 따진들 달리 방법이 없는 걸. 이미 그녀들은 나의 엉덩이쪽 액체를 슥슥 닦고 추가적인 조영제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고 그 고통스런 과정을 한 번 더 겪어야 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비뇨기과에서 정자 검사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는 신랑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신랑에게 너무 아팠고 의료과실인 것 같다며 툴툴댔다. 하지만 한편으론 앓던 이는 빠졌고, 주사위는 던져졌으며, 수능 답안지는 제출이 끝났다는 시원함에 안도감을 느꼈다. 고통은 검사시간 잠시뿐이었고, 나는 더이상의 통증도 없었으니까.
내 뒤로 간호사에게 나팔관조영술 검사 안내를 받고있는 부부가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에게 마음으로 위안을 보냈다.
검사결과는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며칠 후 나팔관이 정상적으로 뚫려있으며, 자궁에 혹이 있긴 하지만 착상을 방해하는 장소는 아니고, 난소나이는 조금 높은 편이나 괜찮은 수준이란 결과를 들었으니 말이다. 신랑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분이 이상하다.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면 그만이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면 되레 해결방법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선생님은 인공수정보다 시험관 확률이 더 높다며 바로 시험관을 권하셨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험난한 검사과정을 거쳐, 아주 자연스럽게 시험관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길이 얼마나 고될지는 가늠할 수 없다. 엄청나게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도, 생각보다 해볼만한데?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에 조금은 용기가 생긴다. 그래. 까짓것 부딪쳐보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