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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칵테일 Aug 28. 2020

내 ‘몸’과의 화해


 타고난 몸을 오랜 기간 미워하며 자랐다. 주변의 친구들도 그러하다. 자신의 몸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몸은 주로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반사된다.


 오래전, 지난한 청소년기를 견뎌내고 있을 때이다. 큰고모에게는 두 딸이 있다. 큰 키에 마른 몸, 누구나 좋아할 만큼 싹싹한 구석이 있었다. 어른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장난을 칠 만큼 구김살이 없었다. 친척들은 언니들의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언니들처럼 마르고, 예쁘고, 밝은 모습을 보인다면 사랑을 받을 수 있겠다 추측했다.


 사랑을 받고 싶을수록, ‘마른 몸’을 동경했다. 마른 몸이 아닌 내 몸은 부정했다. 추한 상태로 인식했다. 검은 옷, 긴 머리, 그리고 되도록 나서지 않으며 존재를 숨겼다.


 내 몸은 왕따였을까? 누구도 돌봐주지 않고, 따뜻한 관심도 받지 못했다. 통제하고, 처벌했다. 살이 찌면 밥을 굶었다. 다른 사람이 내 몸을 함부로 평가해도 웃었다.


 몸이란 능동적인 존재이다. 왕따당하고 있는 몸은 자신을 보호한다. 결핍을 느끼면 더 많은 음식으로 영양분을 채운다. 공격이 예측되면, 나보다 몸이 먼저 경직된다. 몸은 원치 않는 일에 솔직하게 거부 의사를 밝힌다. 그렇기에,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탈이 난다. 마음이 아무리 앞서가도 몸은 서두르지 않는다.


 이제는 몸과 화해를 하고 싶다. 몸이 싫어하는 일에 귀 기울인다. 근육이 경직되면, 긴장되는 이유를 살펴본다. 어깨가 뭉치면, 지나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살핀다.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진다. 온몸을 살핀다.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을 함께한 몸에 다정해지기로 하자. 소화하지 못한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낸 ‘나의 몸’에 감사한다.


 성인기 이후, 사촌 언니가 나의 뱃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00아, 이 뱃살은 어떻게 할거야?”

나는 당황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미소지었다.


 만약, 지금이라면 어떻게 이야기할까?

무척 화가 났다는 눈빛을 보낸다.

“지금 언니는 굉장히 무례한 말을 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한다.


어쨌든, 절대 웃어주지는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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