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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칵테일 Jul 06. 2020

학대 받던 친구가 떠오르는 날

너의 삶을 열렬히 응원해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뒤에는 북한산 앞에는 역이 있었다. 너무 가팔라서 등교보다는 등산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힘겨운 등굣길을 친구들 덕분에 잘 버텨냈다. 난 비교적 조용한 성격으로 몇몇 친구만 사귀었다. 그중 내 고민을 굉장히 잘 들어주던 A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했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시시콜콜한 고민을 털어놓았고, A는 늘 그럴싸한 해결책을 내주었다.


학업에 지쳐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노래방에 갔다. A는 거미의 ‘어른아이’를 정말 잘 불렀다. 꿈이 가수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A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담임에게 이유를 물었다. A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며 캐묻지 말라고 했다. 친구들끼리 버디버디를 통해 A의 안부를 확인했다. A는 부산에 있었다.


부모님 이혼 후 함께 살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새 할머니는 A를 돌보지 않았다. 아버지를 찾아갔지만, A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자신의 고깃집에서 허드렛일을 시켰다. 밤마다 가정폭력도 일삼았다. 견디다 못한 A는 쉼터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불우한 청소년의 자립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서열 속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그러던 중 A는 채팅으로 한 남자를 만났다. 거처를 마련해준다는 말에 부산으로 도피한 거였다.


추운 겨울이었다. A는 학교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얇은 교복 차림에 스타킹도 신지 않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놀란 친구들이 돈을 모아 기모 스타킹을 여러 벌 사줬다. 담임은 A에게 쉼터를 권했지만 A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학창 시절에 내가 본 A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대학에 올라와 친구들과 A에게 연락한 적 있다. A는 채팅으로 만난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마땅한 거처가 없어 시댁에 머무는 중이었다. 육아에 지쳐 보였다. 남편이 가끔 사오는 편의점 조각 케이크에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과는 다른 삶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 가끔 A를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난다. 왜 부모는 A를 돌보지 않았을까, 왜 아빠를 피해 부산에 내려가야 했을까, 왜 청소년을 위한 쉼터에서 조차 A는 보호받지 못했을까. 왜 어린 나이에 육아에 시달려야 할까, 왜 어른들은 이 작은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왜 가수가 되고 싶었던 A는 작은 날갯짓도 못하고 꿈을 접어야 했을까.  


“나도 학교 다니고 싶어. 대학생들이 너무 부러워.”  


아쉬움 가득 섞인 A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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