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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칵테일 Sep 02. 2020

초대하지 않은 침입자, 엄마의 남자 친구

엄마의 남자 친구 01

  코로나가 시작되고, 학원이 긴급 휴원을 하게 되어 생애 첫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휴원 결정이 나자마자 바로 짐을 챙겨 떠났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고작 <강릉>을 가는 여행이었다. 그렇지만 꽤나 지친 상태였고, 서울을 떠나야 온전히 쉴 수 있겠다 판단했다. 혼자 떠나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혼자가 되는 일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곁에 있는 사람 없이도 여행은 충만했다. 강제 휴원으로 떠밀리듯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처음"이 주는 설렘이 가득했다. 혼자 "처음" 호텔을 잡아 자보고, "처음" 혼자서 횟집에서 물회를 먹었다. 강릉 해안산책로를 꽤 오랫동안 혼자 걷기도 했다. 내 마음을 느끼고, 몸을 느끼고, 아직 숨 쉬고 살아있구나 느꼈다. 강릉이라는 공간에서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많이 걸으며 생각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주로 강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마음껏 나약함을 보여준 순간들이 떠올랐다.


 - 초등학교 때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받은 과한 사랑

 - 힘든 학창 시절에 친구들로부터 받은 위로

 - 대학에 들어와, 모든 고민을 함께 풀어낸 독서모임 언니 오빠들

 - 사회생활을 함께 이겨내는 내 동료들


 과거를 뚜벅뚜벅 걸으며 소화했다. 1박으로는 부족해서, 하루 더 숙소를 잡아 묵기로 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더 잘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있는 시간이 좋았다. 하루를 해내니, 다음 날도 잘 해낼 거라 믿었다. 호텔 옆에 있는 <낙산사>에 들러, 또 오랫동안 걸었다. 관계, 커리어, 가치관 등 미래를 결정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나'만을 생각하며 미래를 그려보았다. 끊임없이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경험했다. 안달복달하지 않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조식 먹을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새벽 6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고, 일단 받았다. "나 엄마 남자 친군데,,,"로 시작하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중년 남성은 말했다.

엄마가 술을 마시니까, 내가 감당이 안되잖아. 네가 여기 '구리'로 와줘야겠어. 난 이제 출근하는데 네가 엄마를 데려가던지 해라.


아저씨, 죄송하지만 지금 시간이 몇 신지 아시나요? 그리고 새벽 6시에 본인 집으로 오라고 전화를 거는 게 부탁인가요? 엄마 남자 친구인 건 잘 알겠는데, 예의 있게 행동해주세요.

예고 없는 전화에 화를 내며 답했다.


중년 남성은 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딸이 되어가지고, 그것도 큰 딸이, 엄마를 챙겨야지. 네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겠니. 딸로서 도리를 다 해라.


 전화를 끊고 나는 울고 싶었다. 혼자서 잘 해내는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잠시나마 의젓한 어른이 되었다고 믿었다. 엄살 부리지 않고 시간을 잘 소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의 전화를 받고 나서 또다시 무너졌다. 나는 내 상황을 위로해줄 누군가가 필요해졌다. 다시 누군가가 위로해주지 않으면, 내 마음조차 어쩌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 좀 괜찮은 남자를 사귀지, 새벽 6시에 나한테 전화해서 뭐라한지알아?

엄마는 바로 답장이 왔다.



  지혜로운 선택이 아니었다. 위로받지 못할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아마도 아저씨에게 내가 얼마나 불효녀인지, 자신이 딸에게 얼마나 서운한지를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서운한 마음은 커져만 갔다. 엄마는 오랜 시간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 본인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누군가의 뒤에 숨었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본인의 문제를 해결해주길 원했다. 한때는 엄마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엄마가 행복해지면 나도 조금은 행복해지리라 믿었던 때가 있다.


 나는 오만하게도 엄마가 되려고 애썼다. 장녀로서 책임감이었을까? 나는 엄마를 돌봐줘야 하는 존재로 보았다. 엄마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환경 중 극히 일부만 보았다. 내가 대신해줄 수 있는 부분을 보았다. 엄마 대신 동생들을 챙기고, 엄마 대신 엄마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끔찍이도 미워했다. 그런데 사는 게 더 힘들어졌다. 내가 애써야 하는 건 엄마가 되려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내가 되려는 노력이다.

 

 엄마는 술이 깨면 다시 본인의 삶으로 돌아갈 거다. 어쩌면 카톡을 보며 조금은 창피해할 수도 있다. 나는 강릉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엄마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그 여행을 회상하며 '나'를 떠올린다. 혼자서 숙소를 정하고, 바다를 산책하고, 순간순간 감촉을 느끼려고 했던 '나'를 기억한다. 충만했던 경험에 더 오래 머문다. 무례한 일상에 화가 나더라도 찰나를 찰나로 남기는 연습을 한다. 돌이켜 보면 그 찰나는 정말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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