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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칵테일 Aug 25. 2020

아빠 주머니에서 나온 유품, 날달걀

슬픔은 소화가 느리다.

 나는 대학에 합격했고, 아빠는 죽었다. 나는 아빠를 참 좋아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해서 엄마는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빠와 대화를 하면 고민이 모두 사라진다고 말했다. 나도 그랬다. 그런 아빠가 죽기 전 6년간 술만 마셨고, 술을 마시다가 죽었다. 엄마는 자는 줄 알았다고 한다. 참 오래 자는구나 했는데, 심장 박동이 없었고 숨도 쉬지 않았다. 아빠 나이 쉰이었다.


 아빠 유품이라며 구급대원이 날달걀을 줬다. 아직 달걀이 상하지도 않았다. 우리 아빠는 술을 먹은 뒤 날달걀을 먹는 습관이 있다.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숙취해소법이라고 했다. 그는 술을 마시고, 자고 일어난 뒤 숙취해소까지 생각했다. 그런 아빠가 죽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유품은 달랑 날달걀이라니.


 이 죽음을 부정하는 사람 모두가 빈소에 모였다. 다섯명의 고모와 작은아빠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넋을 놓았다. 작은 아빠는 무상하게 놓여있는 사진을 보며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울었다. 고모들은 벽에 등을 대고 축 처진 몸이 되었다.


큰고모는 한참을 울다가 나에게 말했다.

- 아빠가 너 대학 붙는 걸 보고 가서 다행이다. 00 이가 효도했어.

옆에 있던 고모들도 거들었다.

- 그래. 다른 게 효도가 아니야.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장례식에서 아빠가 살아온 삶을 떠올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섯 명의 딸을 낳고서야 가진 큰 아들로 살던 시절,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삼수를 하던 시절, 인쇄소에서 일하던 시절.. 그리고 나와 내 동생 두 명을 키우며 살던 시절까지. 아빠의 삶을 떠올리자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잠시 집에 다녀온다 했다. 바로 집에 가지는 않았다. 편의점에 들려 뭐든 닥치는 대로 먹었다. 컵라면, 빙수, 김밥..


 집에서 짐만 챙겨 와야지 생각했다. 할머니가 작은엄마와 함께 계셨다. 나머지 자식을 다 합쳐도 큰 아들과는 못 바꾼다던 할머니가 있었다. 마음이 무너졌다. 아들을 잃은 사람 앞에서 아빠를 잃은 사람은 울지 못했다. 슬픔을 참고 짐을 챙겼다. 할머니를 위로하고 집 밖으로 나가려는데,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불렀다.


- 밖이 추운데. 짧은 양말 신지 말고, 긴 양말을 신고가.

- 알았어


 목이 매인채로 대답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할머니는 아직도 이때를 회상하지 않는다. 늘 이젠 다 잊었다고 말한다. 잊은 사람은 절대로 '다 잊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빠와 오십 년을 함께한 할머니가 다 잊었다고 말하기에는, 이십 년 함께한 나도 잊지 못할 기억이 많다.


구구단을 알려주며 2단, 3단 넘어갈 때마다 크게 기뻐하던 아빠

초등학교에 올라가 점, 선 그리기 숙제를 받아왔을 때 다 컸다고 말해주던 아빠

나중에 시집갈 때 가져가라고 오래된 우편을 모아두던 아빠

친구와 싸우고 울던 나를 위로해주던 아빠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고 이야기하던 아빠

엄마가 해준 계란 프라이를 조금 떼어 먹여주던 아빠


 아빠를 생각하는 날은 조금 더 외로워진다.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언제 했었는지 기억을 되뇐다. 우편함에 혹시 아빠에게 온 편지가 있나 살핀다. 아빠가 생각나는 날에는 잠시 좋지만, 이내 괴롭다. 평생을 아빠가 남긴 조각들을 연결해, 그가 느낀 슬픔과 기쁨 그 사이를 탐색하지 않을까? 의젓하게 자라난 딸. 그런 건 아무래도 어렵겠다. 미안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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