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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칵테일 Jul 24. 2020

고모와 사촌오빠의 애증관계


난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친가 사촌만 합쳐도 17명이다. 그 중 둘째 고모의 첫째 아들은 유달리 감수성이 풍부했다. 사촌들 중 비교적 친하게 지냈다. 고모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부단히 오빠를 데리고 종교활동에 참석했다. 기도 내용은 대부분 오빠의 성공으로 채워졌다.


“우리 기현(가명)이가 이번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 내게 해주세요.”

“우리 기현이가 한의사가 되게 해주세요.“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었다. 방학이면 오빠를 대전에서 서울로 유학 보냈다. 아무리 비싼 과외도 오빠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불안했는지 다른 집 자식과 비교하며 오빠를 자극했다. 안타깝게도 하늘은 고모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오빠는 이름 모를 지방 대학에 진학했다가 1년 후 중퇴했다.


고모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서 최선을 다했다. 해군이었던 고모부 인맥을 총동원한 덕에 오빠는 그토록 싫어하던 군인이 됐다. 명절 날 술을 진탕 마시고 자신을 내버려두라며 오열한 적도 있다. 하지만 고모는 끝까지 오빠를 놓지 않았다. 결혼까지 한 서른 넘은 오빠에게 수시로 연락해 안부를 캐묻는다.


미국의 의학자이자 문필가인 올리버 웬들 홈스는 "청춘은 퇴색되고 사랑은 시들고 우정의 나뭇잎은 떨어지기 쉽다. 그러나 어머니의 은근한 희망은 이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 나간다."라는 말을 했다. 엄마의 기대가 조금만 덜 부담스러웠다면 오빠는 좀 더 희망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오빠는 그렇게 원망하는 고모 곁을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토록 미워하던 고모를 많이 닮아 버렸다. 이제는 엄연한 두 아이의 아빠인데, 여전히 부모를 원망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명절때면 꼭 술을 먹고 울며 부모를 원망한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커가는 자식에게 자유와 책임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고모, 부담이라는 틀에서 자유마저 빼앗긴 오빠. 둘의 관계가 애잔하다. 애증의 관계가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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