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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칵테일 Sep 06. 2020

도망치고 싶은 맘뿐이었던 첫 수업

생애 첫 방과 후 강사

   

나의 첫 수업은 학생들의 수업 거부로 시작되었다. 생애 첫 방과 후 학교 수업이었다. 구청 소속으로 서울에 있는 복지관에서 수업했다. 일주일에 한 번, 초등학교 저학년 한 시간, 고학년 한 시간 총 두 시간 수업이었다. 학원은 보통 짜여있는 커리큘럼으로 수업한다. 방과 후 강사는 수업 계획부터 교재 선정까지 모든 일을 도맡는다. 때로 힘들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방과 후 강사가 그러했다.


새로운 경험을 앞두고 마음이 두근거렸다. 설렘을 가지고 교실에 들어갔다. 저학년 반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뒤죽박죽 섞여 앉아있었다. 한 아이가 소리쳤다. 저는 선생님이 싫어요!! 지호(가명)라는 아이였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내가 들어가자마자 싫다니.. 당황스러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했다. 입고 간 옷, 들어가면서 건넨 인사..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아이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외모인가 거울을 살폈다.


아이들에게 준비한 활동지를 건넸고, 지호는 활동지를 구겨서 버렸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며 활동지가 없어졌으니 수업을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지호가 수업을 듣기가 많이 힘들구나. 그럼 꼭 활동지에 하지 않아도 돼. 좋아하는 음식이나 과목, 게임이라도 알려주겠어? 내가 묻자 지호가 질 수 없다는 듯 답했다.

- 아니요. 저는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을 거예요. 한마디도 하기 싫어요. 말 걸지 마세요. 아이들이 동조했다. 활동지가 여기저기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속으로 으악 소리를 질렀다.


수업을 마치고 곧장 직원분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수업을 듣지 않겠다는 아이들은 수업을 듣겠다고 하는 아이에게도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수업을 잘 해낼 거라고 불과 두 시간 전에도 확신했었다. 호언장담은 높은 확률로 실패가 되어 돌아온다. 백기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직원분 말에 따르면, 아이들 삼분의 일은 집중력 장애 약을 복용한다고 했다. 게다가 기존 선생님과 이 년가량 수업을 해 왔다. 그분이 갑자기 그만두셔서 아이들과 작별 인사도 못했다고 한다. 방학 끝날 때까지, 딱 두 달만이라도 수업을 맡아달라고 하셨다.


나는 방과 후 학교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수업을 맡았다. 두 달이 아니라 일 년도 넘게 했다. 방과 후 학교가 돌봄 교실로 전환됨에 따라 비자발적으로 계약이 종료됐다. 수업하면서 두 가지 목표를 가졌다. 첫 번째는, 아이들이 가진 좋은 점을 발견해 주자. 두 번째는, 아이들에게 많이 질문하자였다. 매시간 아이들이 가진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을 관찰했다. 좋은 점을 찾으면, 미루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말로 전달했다. 지호는 집중력이 많이 좋아졌구나. 지난주에는 수업 십 분이 지나서 수업을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 오늘은 이십 분이나 지났네.


아이들에게 전에 있던 선생님 이야기도 물었다. 빙고 게임, 끝말잇기, 마피아 등등 재밌는 게임을 했다고 대답했다. 와!! 너무 좋은 선생님이시구나. 진짜 아쉬웠겠다. 다른 재밌었던 일은 없어? 아이들은 전 선생님과의 추억을 이야기했고 나는 들었다. 다시 말하면서도 즐거워 보였다. 아이들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이토록 진심을 쏟는구나 생각했다. 그분에 대해 아는 전부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이다. 그분은 참 좋은 분일 거라고 장담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 선생님을 이야기하는 횟수가 줄었다. 아이들과 수업을 시작하면,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시냇물처럼 졸졸 쏟아냈다. 난 단지 들으며 그 아이들의 삶을 상상했다. 한 시간 수업에서 반은 이야기를 듣고 반은 준비해둔 수업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이 책상을 연결해 무대를 만들었다. 학교에서 배운 춤을 보여준다는 이유였다. 나에게 카메라로 찍어가라고 졸랐다. 집에서도 보라고 했다. 방탄소년단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는데 제법 그럴싸했다. 더 잘 출 수 있다며 춤을 추고, 또 추고, 또 추었다. 모든 춤이 아름다웠다. 처음엔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두 번째는 더 잘하려고 하는 모습이 애잔했다. 마지막은 어쩜 본인들을 보이는데 한치의 꾸밈도 없을까 놀라웠다. 그 순간에 다 같이 머물렀다. 그저 감탄스러워서 눈물이 한두 방울 흘렀는데 나에게 관심이 오길 바라지 않아 숨겼다. 조금은 들켰을 수도 있다.


계약이 끝나는 날을 확정하고 아이들과 '이별'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몇몇 아이는 화를 냈다. 왜 방과 후 학교가 없어져야 하느냐며 화를 내다가 결국 울었다. 그즈음 아이들 간에 잦은 싸움이 일어났다. 아이들은 힘들어했다. 자신들의 공간이 사라진다는 거. 함께 경험을 나누던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거. 친구들과 만날 수 없다는 거. 이것이 아이들을 얼마나 힘들게 할까 혹여 상처가 될까 겁이 났다. 마지막 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건넸다.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을 실어 말했다. 현진이는 웃는 모습이 아주 예뻐서, 어디서든 사람들이 좋아해 줄 거야. 물론,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쁠 건 없어! 현진이는 항상 현진이니까. 지호는 수학에 소질이 있는 거 같아. 지호가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기까지 하니까 앞으로도 그 마음을 잊으면 안 돼. 좋아하면서 잘하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야.


처음 수업이 시작될 때 수업을 거부하는데 앞장섰던 지호였다. 이별의 날, 지호는 수학 문제집 한쪽을 뜯더니 번호를 적어달라고 했다. 네임펜으로 적어줬다. 지호는 번호를 소리 내어 몇 번이나 읽어보았다. 지호야. 고민이 있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언제든 연락해. 지호는 꼭 연락할 거라고 여러 번 대답했다. 그리고 건물을 나서려는데 지호가 네임펜을 들고 뛰어 나왔다. 선생님! 번호를 쓴 종이를 잃어버릴까 봐 걱정돼요. 제 손바닥에다가도 적어주세요. 난 지호가 뛰어나오는 모습이 귀여운지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가 처음 수업을 거부했던 건, 내가 싫어서도, 화가 나서도 아니었다. 지호는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많이 슬펐다는 걸 이별하며 알았다. 지호는 그날에도 나에게 문자를 보내고, 한 달 뒤에도 컴퓨터를 새로 샀다며 문자를 보내고, 그 뒤로도 가끔 자기 자랑을 했다. 지호에게 문자가 오는 날에는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아이들 시간은 어른의 시간보다 농축되어 있기에 문자가 오는 날은 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온 힘을 다해 가장 좋은 말을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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