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상실
3.
그리운 매튜,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랜만에 매튜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 봅니다.
마릴라가 안다면 “매튜의 영혼은 바라건대 천국에 있을 거다. 이건 신성모독이야.”라고 경악하실지도 몰라요. 그러나 나는 헤스터 그레이의 정원을 발견한 이후로 종종 죽은 이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곤 해요. 어쩌면 나 자신에게 말하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매튜의 이름을 부르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매튜를 자주 생각하지만 어쩐지 그렇기에 더 아껴 부르고 싶었거든요. 비록 지금만큼은 도저히 매튜의 이름 없이 버틸 자신이 없지만요.
매튜. 오늘 나는 오랜만에 요리를 했어요. 양파를 썰면서 코를 훌쩍였지요. 땅 속의 그 어떤 힘이 양파를 살찌웠을까요. 잎에서 빨아들인 햇살을 닮은 황금빛으로 껍질을 짓고, 그 안의 하얀 속을 이렇게 백합처럼 예쁘게 만들어낸 건 대체 어떤 힘이었을까요. 인간 내면에도 그런 힘이 분명 있겠지요. 인간은, 그 중에서도 마리는 대체 어떤 토양에서 그렇게 힘차게 자라난 걸까요.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 식물의 본성이라면, 마리는 식물을 닮았어요.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동물의 본성이라면, 마리는 동물을 닮은 거고요. 세상 존재하는 무수한 것들 속에서 자신을 닮은 면을 자꾸 찾게 되어서, 마리는 그래서 그렇게 늘 바빴던 걸까요. 사지인 줄을 알면서도 그 길로 걸어간 걸까요.
매튜가 떠난 밤을 기억해요. 다이애나는 같이 있어주겠다고 했지만, 그 다정함이 아무리 고마워도 차마 다이애나가 메꿀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밤이었어요. 혼자 있고 싶다고 해도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고 주춤주춤 말했지만 그 밤 결국 마릴라와 둘이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지요. 그때 제 안에서 뭔가 둑 같은 것이 터지던, 끈 같은 것이 끊어지던 소리를 기억해요.
그 때 알았어요.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내 세상의 일부가, 어떤 조각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걸. 나의 유리창 어딘가가 깨진 거예요. 실제로 사라진 조각은 아주 작다 하더라도 그 구멍으로 바람이 숭숭 불고, 금이 간 유리창은 다시 붙을 수 없다는 걸. 하물며 매튜, 당신은 내게 가장 큰 조각이었지요. 매튜의 무덤에 백합을 아무리 갖다 놓아도 그 상실감은 해갈되지 않아요. 조세핀 할머니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지만 나는 여전히 상실이 두려워요.
그리고 두려워하던 것과 직면하는 순간은 유일하게 두려움이 나를 떠나는 순간이지요. 마리를 잃고 나는 초연하게 앉아 있습니다. 마리가 콧노래를 부르며 서성거리던 불 앞에 서서 요리를 하고, 혼자서도 커피를 내려요. 함께 만든 레몬 차를 마십니다. 이렇게 이제 나는 마리가 없는 세상을 다시 봉합해야 할 거예요. 매튜가 떠난 내 세상에 마릴라와 다이애나, 다른 다정한 사람들이 한 뼘씩 손을 더 내밀어 주었듯, 또 다시 누군가의 손을 잡고 깨진 틈을 메워야 해요.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그 구멍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같은 레퍼토리, 같은 목소리로 수업을 하지만 왜 하필 오늘 학생들에게 던져야 했던 질문이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는 누구인가요? 그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요?”였을지. 아이들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조잘조잘 소개했어요.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씩 꼬박꼬박 1년 가까이 봐온 사이인데 서로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같이 지내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고. 서로에게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아이들은 낯선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우리는 그쯤하고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었어요. 하지만 매튜, 나는 올리버 트위스트보다 오늘의 내가 슬펐어요. 사랑한 흔적을 더듬으며, 그 흔적이 하나하나 내게 전해져 오는 것이 너무나 서글퍼요.
마리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가 뉴스에 오르내리고, 각양각층의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의견을 내놓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마리가 정의를 위해 싸우다 살해당했다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대다 명줄을 재촉했다고 해요. 마리는 그 사람들의 입에서 가련한 피해자도 되었다가 희대의 마녀도 되었다가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서 가느다랗게 전해져 오는 그 날의 진실, 사실들.
사실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는 일은 힘겹지만 필요한 일이기도 할 거예요. 마리가 그 날 겪었을, 마리를 죽음으로 데려간 고통들을 하나씩 나는 활자로 또 목소리로, 언어로 복기하고 있어요. 자도 잠이 아니고 꾸어도 꿈이 아닌 것들을 그렇게 나는 넘어서고 있어요. 매튜가 잠든 후에도 나는 이 세상을 살아왔지요. 지금도 언젠가는 그렇게 지나갈 거예요. 다시는 이전과 같아질 수 없는 세상을 계속 나는 살아갈 거예요.
마리는 지금쯤 죽음 너머에 도착했겠지요. 장례식도 끝났고 이제는 우리가 살던 집에 경찰이 찾아오거나 전화를 해 오는 일도 얼추 끝나가는 것 같으니까요. 이제 내가 일하는 학원의 원장 선생님은 복도에서 마주치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지 않아요. 그 눈빛엔 여전히 연민이 묻어 있지만, 죽음 너머로 떠난 마리를 보내주는 배려의 한 방법이겠지요.
나 또한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다다르려 해요. 매튜, 매튜를 떠나보낸 건 분명 내 어딘가를 무너뜨린 비극이었지만 그래도 그 순간이 내게 가르쳐준 게 하나 있다면... 떠나간 이를 가슴에 묻어도 쓸쓸하지 않은, 그런 이별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사실일 거예요. 금단추처럼 묵직하고 따뜻한 눈길, 내 손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아 주었던 초콜릿 캐러멜, 행복의 잔을 끝까지 채워 줬던 갈색 퍼프소매 드레스, 그리고 어딘가 바람이 묻어날 것만 같았던 매튜의 든든한 뒷모습... 매튜를 떠올리면 지금도 내 마음은 따뜻해요.
매튜에게 편지를 쓰며 이제 마리도 그 곁에, 보이지 않는 그곳에 묻습니다. 6월의 백합이 피면 두 사람을 보러 찾아갈게요. 물론 헤스터 그레이의 무덤도 잊지 않을 생각이에요. 이 다정함이 빛을 되찾는 언젠가 분명 다시 만날 거라 굳게 믿으며.
매튜의 영원한 초콜릿 캐러맬,
꼬마 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