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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May 24. 2019

오월을 기다리며

영화: 김군 (2018, 강상우 감독)



   영화는 누군지 모를 한 다부진 청년의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한다. 광주의 오월을 담은 사진 중에 있었다는 이 사진을 보고, 그 오월에 시민군에게 주먹밥은 나눠주던 한 시민이 "동네 김군 아닌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 데서 이 영화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이 사진을 주목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 군인 출신의 보수 논객 지만원 씨는 저 사진의 주인공이 북한에서 광주로 보낸 통칭 "광수"들 중 제1광수이며 지금 북한에서 번듯하게 자리 잡은 누구라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 보고, 또 어떤 사람은 김군 아니냐 하는 한 청년의 얼굴. 저 사람은 누구일까. 살았을까 죽었을까. 살아 있다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실낱 같은 희망을 잡고 영화는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하며 그의 행방을 찾는다.

   그러나 김군을 찾으면 찾을수록 이야기는 1980년 5월 18일 이후의 광주에서 흐른다. 5월 18일에 시작된 어떤 이야기.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며 사람들이 들었던 총을, 폭도로 오인받지 말자고 내려놓는 5월 23일. 계엄군이 도청을 점령하면서 시민군을 체포한 5월 27일. 그리고 그 이후.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감상하고 쓴 글입니다.

**영화 내용이 언급되어 있으나 김군의 정체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5월은 푸르지만도 맑지만도 않아서, 여전히 총탄과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당시 앳된 얼굴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사진 속 소년들이 나이 지긋해진 지금도 그들의 눈에는 그 날이 서려 있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엔 아직 일제 강점기가 남긴 생채기조차 곳곳에 묻어난다. 이런 집단의 상처들이 쉬이 나을 리 없다.

   하지만 광주가 더욱 아픈 건 상처가 나을 틈을 주지 않고 헤집어대는 어떤 이들 때문이다. 애초에 광주 시민군들이 총을 들게 만든 건 그들에게 폭력과 총알을 쏟아댄 이들이었는데, 가만히 있던 이들을 먼저 건드려 놓고 여전히 가만히 있기를 종용한다.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 광주에 600명의 북한군이 있었다고 말하고, 사진 속 이들을 북한 인사들 사진과 적당히 엮어내면서 출처는 일베의 "젊은" "전문가"라고 한다. ( 젊은 전문가 혹시 "동년배"라는 단어  쓰시는지 궁금하다.)

   광주 시민들은 똑똑하다. 진짜로 북한군이 600명이나 들어왔다면, 그들이 광주까지 올 동안 막지도 못한 정부와 국방부의 책임이지 그게 어디 광주 책임이냐는 거다. 사진 속 인물 본인들도 속속 나타났고, 지만원 씨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광주는 백 년 전이나 사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선빵" 앞에 순순하게 자신의 이름을 내주지 않는다.

   그러나 똑똑하게 되묻는 동시에 아파한다. 누가 뭐라 하면 그걸 꼭 이렇게 증명해 주어야 하는 거냐고.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으니 왜곡이나 말아 줬으면 한다고. 기실 그렇다. 날조는 쉽다. 나도 아무 사진이나 뒤져서 지만원 씨 비슷한 얼굴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크게 북방계와 남방계 정도로 구분되는 비슷한 외모를 가진 민족이라고들 하니까 그 정도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날조를 바로잡고 증명하는 것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든다.

   하물며 사람이 죽어나가고 위기를 느낀 당시 광주 사람들의 기억을 갖고 조각을 맞춘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오늘 보면 내일 볼 지 모를 사람과 통성명을 하지도 않았고, 문제가 될까 사진을 회피하기도 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어떤 부분은 휘발됐고, 그럼에도 고통은 선연히 남아있어 뒤를 돌아보자니 그 발걸음 무겁기 짝이 없다.



  1980년의 총탄이, 그 쇠붙이가 아직 피가 도는 누군가의 안에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쳤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총탄이 사람들의 피를 타고 돌고 있다. 화병으로, 자살로 세상을 떴다는 사람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날 밤엔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람들. 가슴 아파해도 그들은 너를 가슴 아파하지 않으니 그만두라는 친구의 말 앞에 나도 그러고 싶다고 한숨처럼 말을 떨구는 사람들. 사실은 사람들이 주먹밥 주고 물 주고 하는 데에서 희열을 느낄 만큼 어리기도 했던, 그냥 평범한 사람들.


   영화는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하여 흘러가지만, 김군이라는 한 사람을 두고 좁혀가면서 만나는 다양한 시민들의 모습을 담는다. 돌아보기 괴롭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들의 딜레마와, 1980년 5월 이후의 광주에서 흘러온 상처를 보여준다. 광주의 오월을 소재로 한 극영화들은 대체로 1980년 5월을 현재 시점처럼 담아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그 이후이자 이면이다. 제작진이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따라 느끼다 보니, 영화보다는 영화의 제작 과정을 보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다.



   영화 자체도 좋았지만 그 이상으로, 영화 외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들었던 건 이 영화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광주의 오월을 대하는 태도와 같기 때문이다. 지만원 씨는 이 영화가 황당한 소설이라고 안 보겠다고 했단다. 개인적으로는 지만원 씨의 이름이 영화 스크린 엔딩 크레딧에 올라갈 일이 전무후무할 테니 기념으로라도 보시면 어떨까 생각하지만... 이 영화는 한 보수 논객과 힘겨루기를 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고 말하던 감독은, 유료 관객이 한 명 줄어서 아쉽다는 말로 담담히 답했다. (그래서 나는 지만원  몫으로 영혼을 하나 보냈다.)


   영화에도 묘사되는 지만원 씨나 계엄군 출신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보다도, 나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이 들었다는 말들이 더 차갑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지만원 박사께서 과학적인 툴을 사용해 십여 년 동안 연구하신" 건데, 그에 준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다분히 감정적이고 일방적인 영화를 찍었다며 지청구를 놓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그 과학적인 툴은 윈도 그림판이라고 감독은 간단히 대답했고, 나는 친구와 함께 "저 사람 태극기 부대에서 나온 거 아냐? 지만원 씨 아내 분 아니야?" 하고 웅성웅성 이야기했지만... (그리고 그분은 GV가 끝나기 전에 나가셨다.)


   별별 소리를 다 들었을, 앞으로도 들을 감독이 조금 안쓰러웠다. 계엄군도 국가 징집으로 인한 피해자이고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차기작 생각은 없냐는 제안도 꽤 들었다고 조용히 말했다. 물론 국가의 폭력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들 앞에 굳이 계엄군으로 징집되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만들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던 이들은 대체 어떤 생각이었을까. 물론 언젠가 누군가는 그리면 좋을 소재겠지만, 그러면 본인이 하든가 아니면 마음 맞는 사람을 찾든가 해야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두 집단을 동시에 품어보라는 주문은 오만하다.


   어차피 한 사람이 모든 짐을 감당할 수는 없고, 모두가 각자의 몫을 지고 있을 뿐이다. 그 누구도 광주에게든 감독에게든 의무를 지울 수 없다. 감독이 들었을 말들, 사람들이 갈팡질팡하며 하는 소리들에 마음이 아팠다. 광주 태생도 아니고 오월을 겪은 세대도 아닌 나는, 종종 광주를 놓고 뻘소리 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이가 없긴 했지만 이렇게 면도날 같은 말이 일상적으로 오월을 스치고 지나간다는 걸 몰랐다. 어느 평론가의 말마따나 이 영화는 5.18을 겪지 않은 세대가 광주를 다루는 방법인지 모르겠다.




   파상풍 주사는 10년마다 다시 맞아야 한다는데, 주사를 네 번은 맞았을 시간이 지났다. 주사는커녕 걷어내지도 못하고 남은 쇠붙이가 여전히 누군가의 살 속에서 아프다. 게다가 그 녹슨 기억을 4년 동안 모아 붙이고 다듬어낸 이 영화는, 삼천 개에 다다르는 전국 스크린 중 80개가량을 받아 거기에 4주 머무르는 게 목표란다. 이렇게 여러 모로 서글픈 문장들이 미세먼지처럼 희뿌연 지금, 우리의 오월은 맑고 푸르를 수가 없다. 어서 오월이 본연의 청명함을 오롯이 뿜어내길 기다릴 뿐이다. 아직도 요원한 어딘가에서 오고 있는 고도를 기다리듯, 오월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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