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 아그라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늦지 않게 일어나 야무지게 짐 싸 들고 기차 역으로 향했다.
기차 역은 오가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늘상 더럽고 붐빈다. 그러니 위험한 장소가 될 가능성도 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해서 마치 공항처럼 짐 검사를 하는 낯선 방식을 수긍하고 줄을 서 있었다. 웬 남자가 장부를 뒤적거리며 우리 표를 보더니 말했다. 어제 기차가 시간 맞춰 들어오지 않아 우리 기차가 취소됐다는 거다.
작은 승합차 같이 생긴 택시들이 줄지어 있는 곳을 가리키며, 지금 저걸 당장 타고 어디 여행사로 가서 이 기차 표를 취소하라고 했다. 한 시간쯤 후에 출발하는 다음 기차가 있으니 그걸 예약하라는 거다. 우리가 주춤거리자 정부에서 운영하는 택시니까 믿어도 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 말이 제일 수상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름방학이라 성수기인 5월 기차 표를 예약하는 건 한 달 전에도 어려운데, 바로 한 시간 후에 출발하는 기차표를 예약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다만 그때는 그런 구체적인 반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당황해서 입도 뇌도 얼어 붙었다. 뭔가 수상하긴 수상한데 딱 잡아 반박할 말은 못 찾겠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사기 같기도 한데 딱 잘라 사기라고 결론 내려지지도 않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일행 중 한 사람이 전광판을 보고 오겠다며 역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무려 13억 인구 인도의 수도 기차역이 그렇게 만만하게 한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얼마나 많은 기차가 오고 가는데, 정신없이 얼어붙은 사람들 눈에 그게 쉬이 들어올 리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모르겠어,라는 말과 함께 일행은 돌아왔고 우리는 그때부터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려고 애를 무진장 썼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점점 가고 기차 표에 적힌 시간은 점점 가까워졌다. 조급해질수록 머리는 돌이 되어갔고, 우리는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며 여행사를 갔다. 그런데 웬만한 사람 한 달 월급을 뛰어넘는 금액을 제시하는 거다. “우리도 택시 타고 다녀 본 사람들인데 이거 말도 안 되거든요?” 바득바득 우겼지만 들어주질 않았다.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은 자꾸 들었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있는 대로 얼굴을 굳힌 채 다른 여행사로 가자는 말만 했다. 택시는 미터기를 켠 게 아니라 얼마를 주기로 정하고 탄 거였는데 생각보다 거리며 시간이 길어지니까 택시 기사도 점점 툴툴거렸다. 역을 막고 있던 남자와 실랑이, 여행사와 실랑이, 택시 기사와 실랑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벌이는 설왕설래 말다툼에 우리는 차차 지쳐 갔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다음 여행사에서 결국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에 딜을 하고, 택시 타고 아그라까지 갔다. 어차피 그때 우리 선에서 사기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편하게 가니까 잘 됐다며 서로를 위안했지만 모두의 마음에는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얹혀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집으로 돌아와 지난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같이 지내는 현지인 스태프와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답을 찾게 됐다.
“북부에 가면 사기 엄청 쳐요. 인도인들도 많이 당하는 걸 뭐. 제일 흔한 사기로는 기차역 앞에서 기차 취소됐다고 거짓말하면서 돈 뜯어내는 건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똑같은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고, 이미 지난 일이니 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제 여행지에서 사기 당한 외국인 기사를 보며 "아니 딱 보면 사기구만, 그걸 왜 속았대?"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당해보니 알겠다. 뭔가 되게 수상하고 이거 아닌 거 같은데... 근데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당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그 외국인이 나였으니까.
지났으니 웃으며 말하는 것이지... 당시에는 그렇게 힘들게, 사기까지 당해 가며 어렵사리 아그라에 도착했다.
여행 스케줄이 우리 의도와 무관하게 정해진 탓에, 우리가 아그라에 도착한 날은 목요일이고 타지마할 공휴일은 금요일이었다. 정신이 있든 없든 어떻게든 도착한 그 날 안에 타지마할을 가야 했다. 뜻밖의 스파르타 여행길.
숙소 잡을 당시 타지마할까지 걸어다니겠다고 일부러 타지마할 가까운 곳을 택했더랬다. 그러나 아침부터 휩쓸린 우리는 몇 주 전에 예약하면서 한 이야기 같은 건 새까맣게 잊었다. 숙소 밖에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릭샤꾼들의 아귀다툼에 휘말려, 쓸데없이 훌륭한 흥정을 하고선 사이클 릭샤를 타고 갔다.
땡볕 아래 우리를 태우고 자전거를 모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앉아 가는 것이 마음 편할 리가. 내 돈 주고 내가 가면서 왜 이렇게까지 마음이 불편해야 하나? 우리 사이클 릭샤는 다시는 타지 말자는 생각을 하며 정신없이 도착하고 보니 햇볕이 제일 뜨거운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기가 막힐 정도로 최악의 타이밍이 순조롭게 착착 맞아 떨어졌다.
표를 구입하면 타지마할 내부에 들어갈 때 신발에 씌울 커버와 물 한 병을 주는데, 처음엔 상냥하다며 좋아라 했지만 물을 주는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타지마할 내부에는 상인이 없고 날은 이리 더우니 사람이 살려면 물 한 병 정도는 주어야 인지상정이었다. 잘못하면 거기가 내 무덤이 될 뻔했다. 왕비와 같은 곳을 무덤 삼는다니 영광이라 해야 할까...
잔뜩 지쳐 있어서 뭐가 눈에 들어올까 싶었지만, 타지마할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성 소피아 성당이나 블루 모스크에 갔을 때도 이런 감동은 받지 못했다. 세밀하고 정교하게 아름다운 건물. 지금도 이런데 영국인들이 이것저것 다 떼어가기 전에는 어땠을까? 아침에 햇빛이 들어오면 곳곳에 붙은 보석들이 반짝거려 너무나 아름다웠다던데, 대리석과 몇 가지 보석만 남은 지금도 아름답지만 그 전의 모습도 궁금하다.
문양들은 물감으로 그려 넣은 것이 아니라, 파서 다른 종류의 보석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그래서 레이저 불빛을 대면 그 붉고 푸른 색깔들이 투명하게 빛을 반사한다. 어마어마한 디테일이다. 심지어 그 보석 대다수는 수입산이었다. 인근 지역에서만 수입한 게 아니라 이탈리아처럼 먼 곳에서 수입한 것도 있었다.
보면 볼수록 ‘샤 자한이 진짜 미쳤구나’, ‘오타쿠(내 눈에 그는 아내와 건축 오타쿠로 보인다)가 권력을 가지면 제대로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가이드를 데리고 다니면 더 좋다는 말을 미리 들었기에, 현지에서 100루피에 흥정해 듣게 된 가이드의 설명 덕에 더 좋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니까.
오래 전 재수생 시절, 공부하다 지치면 세계사 교과서를 덮어 그 표지를 한참 들여다 보곤 했다. 햇빛 아래, 그 아름답다던 곳에 있는 나를 막연히 그려 보는 것이 독서실에서 곧장 떠날 수 있는 가장 먼 여행길이었으므로. 책마다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는 내용을 읽으며 “건물이 아름다우면 얼마나 아름답다는 걸까” 생각하다가도, 표지를 보면 사진으로만 봐도 곱긴 참 고와서 한번쯤 실제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디 있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진짜로 보게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 진지하게 계획하거나 꿈꾸지도 않았는데, 그 막연하고도 무게 없던 한 마디의 생각이 눈앞에 현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매우 감격스러웠다.
아마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타지마할이라는 건축물에 대해서는 많이들 들어봤어도 그게 어디에 있는지는 모를 수 있을 것 같다. 타지마할 보고 왔다고 했을 때, 그럼 델리에 다녀온 거냐는 질문도 많이 들었다.
그만큼 아그라는 작은 도시다. 타지마할 빼고는 볼 게 많지 않은 소도시. 오래 전의 번영이 꿈 같이 남은, 타지마할로 먹고사는 도시. 1박 2일 들러 타지마할 보고 아쉽다면 아그라 포트 정도 더 보고 이동하면 충분한 것 같다. 타지마할 때문에 도시 규모에 비해 외국인이 많이 다녀서, 릭샤꾼들이나 상인들이 흥정에 있어 제법 재수없게 군다.
타지마할의 비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하다. 무굴의 황제 샤 자한은 왕비 뭄타즈 마할을 전쟁터에도 데리고 다녔을 만큼 아내를 아꼈다고 한다. 무려 14번째 아이를 출산하다 뭄타즈 마할이 사망했을 때, 슬퍼한 끝에 무덤으로 타지마할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가 죽으면 타지마할이 바로 들여다보이는 반대편에 자기 무덤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흰 대리석이 아닌 검은 돌을 쓰되 타지마할과 똑같은 구조로 만들고, 두 건물의 그림자가 한낮의 태양 아래 똑같이 포개질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었다. 진짜 건축 오타쿠 맞다니까... 아무튼 그렇게 국가의 재산이란 재산이 다 건축에 돌돌 말려 들어가는 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일 잘 하는 아들 손에 쫓겨나는 바람에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후로도 그는 여생을 타지마할만 바라보고 살았다고 한다. 앉은 자리에서 사진으로 활자로만 수많은 건물과 탑에 대해 배우던 고등학생 시절, 왕권의 과시나 정복욕의 표현 같은 이유보다는 훨씬 로맨틱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나는 타지마할 이야기가 참 좋았다.
타지마할이 잘 보이는 호텔 옥상에서 해질 무렵의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그를 오래오래 생각했다. 당시 백성 입장에서 엄청난 세금을 아내 무덤에 쓰는 그가 그렇게 좋은 왕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후세에는 이렇게 톡톡히 덕을 보는구나. 낭만주의자였던 열여덟의 나는 눈을 빛내며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스물다섯이 된 나는 그런 왕이 싫을 것 같긴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우여곡절 끝에 아그라를 떠났다. 이제는 밤 기차로 바라나시에 갈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