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상상하는 인도 그 자체

여행 (5) 바라나시

by 선이정

처음 타 보는 밤 기차라 조금 긴장했다. 밤새 깨어 있어야지, 하고 다짐도 했던 것 같은데 중간중간 쪽잠도 잤다. 자다 깨다 음악 듣다... 그러다 보니 금방 날이 밝았다.


일어나 앉아서 밀린 일기도 쓰고 일행들과 우노도 하며 편하게 잘 갔다. 조금 연착이 되어 도착했지만 그래도 두어 시간밖에 연착되지 않았다. 마이소르 출발할 때만 해도 한 시간 연착에도 절절 맸는데 어느새 이 정도 여유는 생겼구나.


에어컨이 나오는 기차 칸에 탔기 때문에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확연히 느껴지는 더위와 어마어마하게 붐비는 인파가 가장 먼저 느껴졌다. 여기가 바라나시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정신을 똑바로 챙기리라고 다짐했다.


숙소를 따로 잡는 대신 지인의 소개로 연결된 집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바라나시에서 관광객들이 모이는 갠지스 강변 쪽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교통비도 만만찮게 비쌌다. 워낙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 기본 요금부터가 매우 비싼 듯했다.


아예 외국에서 갓 들어온 관광객이었으면 그러려니 하고 다녔을 텐데, 인도에서 지내본 사람들인지라 거리 대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금액 앞에 릭샤꾼들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그 사람들도 자기들이 책정해 둔 가격 기준이 있으니 우리가 이해되지 않았겠지.


오죽하면 1박 2일 동안 한 달 낼 화를 냈다는 기분이 들었을까. 심지어 거기 있는 동안 같이 있는 일행이 무려 나 포함 일행 중 두 명에게 (4명 중 2명이다)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별명까지 지어 주었다. 그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지냈음은 물론이다.


바라나시는 강 때문인지 후텁지근하고 도시 분위기 자체가 에어컨과 현대 문명보다는 옛날 모습에 가까운지라, 어딜 가도 델리보다 더 덥게 느껴졌다. 게다가 사람들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불친절했다.


길 가는 데도 자기들끼 얼마나 소리를 지르고 싸워대는지 그냥 길 가는 것만으로 지쳤다. 보통 우리 동네에서라면 경적을 울리고 끝일 정도의 일을 가지고도 경적 울리랴 서로 소리쳐 욕지거리하랴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나도 릭샤꾼들과 싸우면서 진이 빠졌다. 별 일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거기선 그렇게 됐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 듣고 있자면 덥고 어이가 없으니까 나도 같이 소리가 올라갔다. 그런 풍경이 곳곳에 펼쳐지고 있었다. 내게는 너무 힘든 곳이었다.


진짜 좁은 골목에서는 사진을 찍을 정신이 없어, 보다 넓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야 사진을 한 장 남길 수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지내는 내내 필름 카메라는 주로 가방에 있었다.

강변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가트라고 부른다. 가트 가까이에 가면 좁디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맛집’이라고 뜨는 식당들도 그 틈바구니에 있으며, 온갖 '인도스러운' 것들을 쟁여 놓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큼직하고 부요해 보이는 가게들도 있지만 대체로 가게 하나하나가 매우 작은 편이었다. 쟁반 하나 펼쳐놓고 조악한 힌두교 소품과 향 같은 것들을 파는 가게들도 있었다. 그런 골목을 지날 때면 향 냄새가 너무 강해 코끝을 찌른다.


그리고 대체 소는 왜 그 좁은 골목에 굳이 기어들어가 길을 막고 있는 것일까? 보통 소라고 하면 평원, 평원이 없다면 하다못해 좀 넓은 곳에 있고 싶어 해야 정상 아닐까?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 덕에 우리는 무척 조심조심 다녀야 했다. 군데군데 늘어져 있는 소 똥을 피하고, 때로는 소 꼬리에 맞을까 싶어 벽에 바짝 붙어 지나갔다.


이리저리 붙잡는 호객 행위의 불쾌함, 이따금씩 2층에서 창문을 열고 바닥으로 내버리는 물과 쓰레기들까지. 지저분함과 분주함과 번잡스러움이 그곳의 인상이었다. 어디 밟히기라도 했는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며 늘어져 있는 새끼 강아지를 봤을 때는 그로테스크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정도면 가트 쪽에서는 큰 길이다.

키가 무척 크고 마른 남자 하나가 휘적휘적 걸어와 어딜 가려는 거냐고 물었다. 길을 알려주고 자기네 가게에 들리게 만드는 식으로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이었다. 다짜고짜 손목 잡고 끄는 무례한 방식에 비할 바도 못 되게, 서로에게 좋은 호객 행위 방법이다. 물론 그래도 여자 혼자였다면 절대 따라가지 않았겠지만....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던 우리는 조금 고민하다가 여기서 길 헤매는 것보다 시간 절약이지 싶어 그냥 그를 따라갔다.


휘적휘적 걷는 그를 따라서 미리 서치해둔 식당에 이루러 보니 하필 문을 닫은 날이었다. 남자는 우리에게 식당을 한 군데 말해 주었다. 달리 방법도 없었고, 덥고 배고파 지쳤기 때문에 그리고 서치하다 한번쯤 들어본 듯한 이름이라 그냥 따라가 보았다. 그런데 웬 반지하 창고 같은 곳이 나왔다. 한참이 지나서야 비닐을 뒤집어 씌운 접시에 별 음식 같지도 않은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잘 먹었다 맛있다고 써 놓은 종이들이 벽면을 빼곡히 메운 것을 보며, 대체 이 사람들은 이 식당의 무엇을 먹고 맛있다는 글을 적은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이 맛있게 먹은 건 이 음식이 아니라 바라나시의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밖에도 바라나시에서 유명하다는, 인도 여행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하다고 블로그마다 칭찬이 자자했던 라씨도 먹었지만 전부 다 별로였다. 집에서 만들어먹던 라씨만 못했다.


갠지스 강, 성스러움과 더러움 그 사이 어디쯤.


그나마 기대한 것은 갠지스강 보트 투어였다. 새벽이나 저녁나절, 즉 해 뜰 때나 해질 무렵에 강가에서 힌두교 예배 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투어가 있다고 했다. 예약해둔 대로 저녁시간에 배를 탔다.


바라나시는 워낙 외국인이 많이 오는 곳이고 그중엔 한국인과 일본인도 제법 많아서, 일본인이 하는 식당이라든지 한국어를 구사하는 인도인이 가이드 해 주는 보트 투어라든지 하는 것들이 꽤 있다. 한국인에게 단연 돋보이는 존재는 ‘철수’라는 이름의 인도인과 ‘선재’라는 이름의 인도인이다. 그중 선재 씨네 보트를 예약했다.


이름은 산제이(Sanjay), 류시화 시인 후원으로 한국 유학을 다녀왔고 한국말을 곧잘 한다-라고, 블로그 검색할 때 엄청 읽은 사람이었다. 각자 따로 여행을 와서 만나 어제도 보트를 타고 오늘도 탄다는, 어느덧 일행 같이 보이는 다른 한국인 3명과 함께 보트를 탔다.


선재 씨를 만난 곳은 강 중간의 모래사장이었다. 거기까지는 선재 씨의 '친한 동생'이 태워다 주었다.
능숙한 한국 말로 깊이 있는 설명을 해 준 선재씨. 한국인 바라나시 여행객들 사이에는 철수 씨냐 선재 씨냐 논쟁이 있을 정도이다.

갠지스 강의 첫인상은 ‘이게 갠지스라고?’였다. 이 또한 혹서기라는 시즌이 문제였다. “우기에는 저 건물들이 잠길 정도로 물이 차 올라요” 하고 설명하는 선재 씨 손끝을 따라가 보니 강가 건물마다 선명하게 물 자국이 보였다. 그러나 그건 수위의 흔적일 뿐, 지금은 그냥 동네의 자그만 강 같아 보였다.


원래는 물에 잠겨 있었을 강 중간중간의 모래사장도 드러나 있었다. 다만 들었던 대로 물은 무진장 더러웠다. 더러운 물 위로 디아(초와 꽃으로 장식되어, 소원 빌며 불 붙여 강에 띄우는 종이 접시)나 시체가 타고 난 잿가루가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나뭇잎 접시와 꽃, 초. 소원을 빌며 강에 띄우는 이것을 '디아'라 부른다. 작은 아이들이 바싹 마른 고사리 손으로 디아를 팔고 다닌다.

선재 씨는 유창한 한국말로 설명해 주었다. 갠지스 강(인도에서는 강가Ganga라고 부른다) 또한 하나의 신으로 간주된다는 것과, 그에 얽힌 신화 이야기도. 해 질 무렵이 되자 한쪽에서는 매일 드려진다는 아르티 푸자(힌두교의 예배 의식을 푸자라 한다)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똑 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고 횃불은 일렁거렸다.


다른 쪽에서는 시체가 타고 있었다. 단연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도 시체 화장터 쪽이었다.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사진에 갇힌다고 믿는 사람들이라, 사진 촬영은 엄금되어 있다. 불필요한 오해도 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주섬주섬 카메라와 핸드폰까지 가방에 넣고 말없이 배 위에서 멀리 있는 화장터를 구경했다. 불 안에 거뭇한 그림자로 사람의 발이 보였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뭐라 뭐라 같은 말로 소리를 치고 있었다. 무슨 소리일까? 답이라도 하듯 때마침 선재 씨의 설명이 날아왔다.


오래전에 한 높은 신이(시바였나 누구였나 이름도 들었는데 까먹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했다. 라마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살다가 죽으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말했단다. 이렇게 높은 신인 자기도 태어나서 죽으니까, 태어나서 죽는 거 별 거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두려워할 필요 하나 없다고.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고. 그 후로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지내면서 소리쳐 외친다고 했다. “라마의 말만이 옳습니다!”라고.


나는 원래 힌두교 특유의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 순간은 싫다 못해 화까지 났다. 내겐 매우 그 말이 폭력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슬픈데 어쩌라고. 슬픈 일은 충분히 슬퍼하고 위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 모두 태어났다가 죽는 것이지만, 모두가 겪는 일이니 위로가 된다고 떵떵 외치기엔 그 사람과 주고 받은 감정과 관계의 깊이 그 특별함이 너무 무시되는 소리다.


내가 ‘나’의 일부로 받아들인 누군가의 죽음은 내게 세상을 뒤집어 놓는 일일 수 있는데, 충분히 슬퍼하고 위로를 받아야 할 일인데. 그들이 슬퍼서 슬프다고 말도 못하게, 슬퍼할 일이 아니고 별 거 아니라고 해두고는 그 말이 옳다고 박박 소리를 치게 한다는 게 너무 소름 끼치게 폭력적인 기제로 느껴졌다.


그 밖에도 내 눈엔 너무 폭력적이라고 느껴지는 몇 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한 시간 가량 이어진 보트 투어 끝에 내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작복작해졌다. 어느덧 어두운 밤이었다. 레몬 티나 차이 좋아해요? 제가 쏠게요, 하고 선재 씨가 털털하게 말했다. 딱히 당기지는 않았지만 그 호의가 고마워 레몬 티 한 잔씩 얻어먹었는데, 놀랍게도 몸이 따끈해지면서 기분이 퍽 좋아졌다.


선재씨네 카페(멍 때리는 카페라는 뜻에서 멍 카페라고 이름 지었단다. 선재 씨의 여동생이 음식을 한다)에서 제법 그럴듯한 맛의 한국 식사로 저녁까지 먹고 느지막하게 들어왔다.


밤이 되자 골목길은 더더욱 위험해 보였고, 길도 모르는 우리는 허튼 시도를 하느니 그냥 큰 길로 나가는 길을 알려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결국 선재 씨가 큰 길까지 배웅해 주어 겨우 오토릭샤를 탈 수 있었다.


멀리 가트 쪽에 보이는 불빛은 화장터의 불빛이다. 화장터는 24시간 돌아간다.

우리는 가기 전부터 바라나시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반응은 대체로 극과 극이었다. 생지옥 같았다, 정말 힘들고 싫은 곳이었다, 끔찍하기까지 한 기억이다, 쪽의 반응과 너무 재미있었다, 매 순간 즐거웠다, 하는 반응.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잠시 방문하는 관광객의 경우 후자의 반응이 많은 것 같다. 인도에 대해서 상상하는 모습, 그러니까 시끄럽고 좁은 골목에 흔히 상상하는 인도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하는 것들이 어떻게 보면 인도에 대한 환상에 부합하는 부분이니까.


힌두교의 성지라서 현지인들도 관광을 많이 하고, 혼수로도 유명한 동네다. 또 병자와 거지들이 죽음을 맞고 싶은 곳으로 여겨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결국 매우 특이한 곳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바라나시가 싫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덥고 지치고 화 나고 힘든 곳이었다. 당시에는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다가 뒤늦게 펼쳐 본 사진들을 봐도 나뿐 아니라 일행 모두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 지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왜 바라나시가 매력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이해가 됐다. 바라나시나 갠지스를 고요한 아침과 명상의 공간으로 묘사하는 블로그들은 나로서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뭐 사람은 다 다른 거니까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바라나시를 그렇게 넘겼듯이. 다만 내겐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내겐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아니어도- 누군가에겐 일상이 담긴 세상의 전부이며, 누군가에겐 낭만의 순간이 머무는 곳이라는 것을.


이제 여행이 끝나가는 것을 실감하며, 또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비행기를 타던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가게 될 곳은 내가 있는 집에 같이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꿈꿨으나 가지 못했던 곳, 내겐 인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 지금 가고 나면 다시는 갈 수 없을 곳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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