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리스 디리Waris Diiriye

사막의 꽃, 인간으로 우뚝 서다

by 선이정

어렸을 때 읽은,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소설에서 중국인 여성 화자가 발을 싸매는 과정을 보고 소름이 끼쳤던 적이 있다. 1인칭으로 서술하는 전족 과정은 끔찍했다. 어머니가 억지로 아이의 발 뼈를 부러뜨리고 접는 과정에서 화자가 겪는 고통, 비명, 이후에도 풍겨 오는 곪은 살 냄새 같은 것들이 어찌나 생생하게 전해지던지 몸을 부르르 떨며 읽었다. 단어로만 알고 있던 서양의 코르셋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꽉 졸라 맨 허리 안쪽에서 뼈가 무너지고 짓눌리고, 그러다 뼈가 부러지거나 장기가 손상을 입기까지 했다고 들었을 때. 팔에 오소소 내리던 소름의 감각이 선명하다.


이게 좋은 거니까, 미덕이니까, 전통이니까... 다양한 이유로 생명에 반하는 행동을 한 건 동서고금 공통점일까. 전족을 하다가, 코르셋을 조이다가, 수은을 바르다가... 그 이유로 죽은 사람이 적지 않을 텐데 어쩐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미의 기준이나 오랜 전통도 사람의 생명보다는 소중하지 않다. 개중에 어떤 것은 목소리 높여 얼른 끊어내야 한다. 그렇게 지금 당장 근절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든다면 역시나 “여성 할례”를 빼놓을 수 없다.


“여성 할례”라는 기괴한 단어를 처음 들은 건 중학교 때였다. 나는 할례라는 단어를 성경에서만 들어봤고, 엄벙덤벙 읽어서 그 뜻은 몰랐다. 하지만 열심히 읽었다 해도 “여성 할례”를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성경 속 할례는 이스라엘 남성들만 행하는 전통인데,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포경 수술이다. 다시 말해 전통을 골백번 바꿔도 여성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와리스 디리의 책 <사막의 꽃>에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와리스라는 이름은 사막의 꽃이라는 뜻이지만, 로맨틱한 시 같은 그 이름이 걸어온 길은 별로 녹록지 않았다. 와리스는 소말리아 유목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염소를 먹이고, 말린 풀로 바구니 짜는 법을 어머니에게 배우고, 염소 우유를 마시고, 별 하늘 아래 잠드는 생활을 했다. 얼핏 낭만적으로 보이는 광경을 다시 풀어 보면 염소를 먹이러 나가는 길에 자신을 강간하려 드는 이를 마주치거나, 혼자 사막에 가서 동생을 낳은 어머니가 그 사이 물을 찾아 이동한 가족을 찾아 며칠 동안 인근을 헤매거나,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게 염소 다섯 마리에 팔려 시집을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모두 그가 겪은 일이다.


와리스는 집에서 도망쳐 나와 무작정 걷고, 차를 얻어 타고, 친척 집을 전전하고, 긴 여정 끝에 런던에 가게 된다. 대사였던 이모부를 따라가서 이모네 집 가정부가 된 것이다. 이모 가정이 소말리아로 돌아갈 때 와리스는 곧 만료될 여권 하나 달랑 들고 런던에 남았다. 우여곡절 고생 끝에 패션모델이 되었고 잘 자리를 잡았다. <사막의 꽃>에서 이 과정을 세세히 이야기하지만, 이 책은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는 인물 이야기가 아니다. 입지전보다는 고발장 내지는 폭로에 가까운 글이다.


와리스가 아직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동경해 오던 “어떤 일”이 있었다. 고만고만한 어느 날이 아니라 내가 조금 더 특별해질 듯한 기분, 말로만 듣던 일이 내게도 일어나고 이제부터 나는 그전과는 좀 다른 누군가가 될 것 같은 기분. 와리스는 서양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듯 그 날을 기다렸다고 한다. 뭔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기다렸다. 그리고 와리스의 그 날이 왔다.


마을에서 동떨어진 곳, 집시 여인,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는 면도칼과 나무 가시. 즉- 아무도 아이의 비명을 들을 수 없는 곳,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 지저분하고 위험한 도구들. 와리스는 서서히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곳에서 그렇게 이루어진 “여성 할례”의 다른 이름은 “여성 성기 절제”, 성기를 자르고 꿰매는 일이었다. 이미 그 일을 겪은 언니 중에는 세상을 떠난 사람도, 와리스를 보며 얼굴에 먹구름을 띄우던 사람도 있었지만 누구도 입에 담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겪는 일이지만 감히 누구도 입 밖에 낼 생각을 못 했다.


2016년 유니세프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30개국(그 중 27개국이 아프리카)에서 2천만 명 이상의 여성이 성기 절제를 했다. 그러나 “했다”보다는 “당했다”는 동사가 적절한 상황이다. 성기를 자르고 꿰맨다니, 대체 처음에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발상을 한 것일까? 초경 전의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다가 이런 끔찍한 짓을 행한다. 와리스의 경우에는 면도날이었지만 칼이나 가위를 쓰는 경우도, 정 도구가 없으면 깨진 유리조각이나 치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와리스는 소변을 보려면 15분은 걸렸고 생리도 열흘 정도에 걸쳐 서서히 배출했다고 말한다. 생리통과 방광염도 심각했다. 운이 나쁘면 HIV에 감염되거나 파상풍에 걸릴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끔찍한 일이 마음에도 영향을 안 줄 리가 없다. 불감증부터 우울증까지 다양한 마음의 병이 많은 여성들 옆에 도사리고 서 있다. 여성 성기 절제로 얻는 것이라곤 몸과 마음의 병뿐이다. 이런 괴로움도 살아남았을 때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과다 출혈, 패혈증, 감염 등으로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


굳이 온갖 병명을 나열할 필요가 있을까?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이 미친 짓을 관두자고 할 일 아닌가. 그럼에도 여성 할례는 전통이란 말의 무게로 존재해 왔다. 실은 근본도 없는 주제에 쓸데없이 오래 존재한 인습이다. 어떤 사람은 이슬람의 전통이라 말하지만 “여성 할례”는 이슬람보다 먼저 자리를 잡았다. 게다가 코란에는 이와 관련된 언급이 전혀 없단다. 다시 말해 여성 성기 절제는 어디까지나 여성의 “처녀”성에 집착하는 이들, 여성의 선택을 배제하고 여성을 가둬 두고 싶어 하던 어떤 이들, 그 빈약한 이들의 소산이다.


잘 나가는 슈퍼 모델로 카메라 앞에 여러 번 서 보았던 와리스 디리도 인터뷰에서 여성 성기 절제 이야기를 하면서는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많이 울었다고 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당당히 걷는 데 익숙한 이조차 여성 성기 절제가 남긴 상처를 말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하물며 시선이 꽂히지 않는 곳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것이 더 익숙한 여성들,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자리에 서 있는 여성들이 이 문제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이를 잘 아는 와리스가 더 목소리를 냈다. 와리스는 런던에 살면서 성기 절제를 되돌리는 수술을 받았다.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도 못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생리로 생리통에 시달리던 날들도 작별이었다. 와리스는 더 건강해진 몸으로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기 시작했다.


<사막의 꽃> 이후로도 여러 권의 책을 내고, UN에서 특별 홍보 대사로 활동했다. 사막의 꽃 재단을 설립해 여성 성기 절제에 대해 알리고, 후원을 일으켜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와리스에게는 과거가 된 일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현실임을 와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지구 반대편 누군가는 여성 성기 절제라는 끔찍한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와리스는 2007년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와리스 디리가 아무리 힘껏 목소리를 내도 듣지 못하는 이들도 물론 있었다. 주거 침입을 해서 와리스를 납치하려던 남자도 있었고, (와리스가 그를 내던졌다고 한다.) 호텔에 머물 때 어떤 택시 기사에게 납치를 당한 적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택시 기사의 강간은 미수에 그쳤다만, 형량이 덜 나온다는 거지 죄질이 덜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들의 귀에는 와리스가 하는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든가 말든가, 와리스는 예전에도 지금도 누가 뭐라든 굴하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도 인간이라고. 누군가의 소유물도 아니고, 꽃도 아니라고. 와리스가 여성 성기 절제라는 거대한 인습과 싸우는 가장 큰 무기를, 와리스 본인은 교육이라고 말한다. 거대한 인습에 맞서 딸을 보호하도록 엄마아빠를 교육하고, 그 딸들이 “순결하지 않은” 여자로서 낙인 찍혀 살까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도록 교육으로 딸들의 삶을 열어주는 것이다. 언젠가 그 딸들은 자라고 자라 파도처럼 목소리를 낼 것이다. 여성 성기 절제라는 악습이 전족과 코르셋 뒤를 따라갈 날도 곧 오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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