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데이비슨Emily Davison

말에 치여 죽더라도 외쳐야 했던 말

by 선이정

어떤 이야기든 교과서에서 읽으면 단조로운 톤이다. 역사 속 파란만장한 이야기들도 중립과 객관을 목표로 최대한 정제하면서 서술하니, 교과서를 읽다가 놀랄 일이라곤 거의 없다. 그런데 너무 충격적이어서 마음에 오래 남는 이야기들이 간혹 있다. 중학교 사회 시간에 별 생각 없이 읽은 교과서 한 꼭지가 그랬다. 투표권을 얻기 위해 경마 대회에서 말 앞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는, 그 마지막 순간에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외쳤다는 어떤 여자 이야기였다.


아무 생각 없는 중학생이었던 나는 투표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냥 민주주의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보지도 않았고, “정치”적인 이야기는 사회 전체를 들썩거리게 만들 때에나 가끔 들었다. 살아생전 투표권 유무를 다툰 적이 없고, 투표가 당시 내 삶으로 들어온 적은 더더욱 없었다. 나이가 차면 그때 하게 될 무언가로만 여겼다. 그래서 이 과격한 처사가 이해 가지 않았다. 투쟁 같은 거 하지 않아도 투표권이 너무 당연한 세상을 살기에.


그러나 그 여자, 에밀리 데이비슨이 살던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에밀리 데이비슨뿐 아니라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이들을 세상은 서프러제트(suffragette)라고 불렀다. 그 이름은 때로는 존경의, 때로는 희롱과 욕설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어떤 독립운동 같았다. 그들을 억누르던 사회적 억압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


사실 서프러제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에밀리 데이비슨보다는 에멀린 팽크허스트일 것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했다. 이들의 모토는 “말보다 행동”이었다. 돌을 던지고 불을 질렀지, 고운 말로 상대를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그전까지 서명 운동을 하고 청원을 숱하게 넣어 실제로 투표 관련 법안이 의회까지 들어간 것도 여러 번이었지만 모두 부결되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말을 다 했고, 모두 거절당했다고 생각한 이들은 이제 행동에 나섰다.


당연히 엄청난 반발을 샀다. 여성이 “감히” “기어오르는” 상황에 불편함을 느낀 남성들의 반발이 대부분이었다. 서프러제트를 비난하는 신문 삽화를 보면 서프러제트가 꼭 동화 속 마녀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남성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그럴 거라고, 못생기고 뚱뚱하고 늙은 노처녀들일 거라고, 문맥과 전혀 상관없는 비방으로 귀를 막는 남성들이 많았다. 물론 서프러제트에 동의하고 함께 움직인 남성도 소수 있었다.


여성이라고 모두 서프러제트를 옹호한 것도 아니다. 당장 오늘 벌어 오늘 먹고사는 게 급했던 여성들에게는 참정권이 거의 우주여행만큼이나 먼 단어로 들렸다. 그나마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안에서도 투쟁 방법이나 방향을 놓고 목소리가 갈렸다. 그럼에도 다른 모든 역사처럼 여성 참정권 투쟁의 역사도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제 갈 길을 갔다.


1918년 인민대표법으로 30세 이상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됐다. 그러나 그나마도 재산을 소유한 남성과 혼인한 여성, 혹은 재산을 소유한 여성에게만 주어졌다. 남성의 경우 재산으로 투표권을 제한하는 규정이 아예 없어져, 이때 보통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은 10년 늦게, 1928년이 되어서야 갖게 된 권리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 투표는 정말 성별과 연령, 재산에 대한 차별이 없는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보루가 되었다.




경마대회에서 몸을 던지는 순간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에밀리 데이비슨의 이름이 교과서에 실릴 만큼 길이 회자되고는 있지만, 사건 자체에는 불분명한 구석이 많다. 이목을 끌기 위한 자살로 보는 사람도, 그냥 고삐에 깃발을 매달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사람도, 사고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어떠했든, 에밀리 데이비슨의 생애를 보면 그의 행보엔 일관성이 있었다. 인상 깊은 순간 뒤에는 웅숭깊은 시간이 있었다.


에밀리 데이비슨은 아버지를 여의면서 대학 공부를 그만두어야 했다.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입주 가정교사로 돈을 모아 다시 학교에 등록했다. 그렇게나 끈기 있게 이어간 공부였는데 학교 방침상 여성이라는 이유로 졸업을 하지 못했다. 결국 다른 학교에서 끝내 학위를 손에 넣었다. 갈 수 있는 길이 별로 없는 시대에도 끝내 길을 찾아 개척한 삶이었다.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아예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 경찰에 체포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행진을 하다가 경찰과 언쟁을 벌이고 공무 집행 중인 경찰을 모독했다는 사유였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체포되었는데, 그때마다 단식 투쟁을 벌였다. 간수들이 고무 호스로 음식물을 강제 주입한 기록만 47번이나 된다. 에밀리는 무엇에도 아랑곳 않고 뚝심 있게 자기 길을 갔다. 워낙 급진적이라 가끔은 연맹 내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우체통에 불을 지른 사건만 해도, 연맹에서는 하지 말라는 입장이었다.


더비 경마 대회에 몸을 던진 것도 누구와 논의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불분명하다. 다만 마지막 순간 에밀리가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 외치는 소리를 누군가 들었다 하고, 그대로 유언이 되었다. 집에 갈 기차표와 연맹 깃발을 모두 품고 바닥에 쓰러진 그에게, 또 쓰러진 말에게 사람들은 다가갔다. 국왕의 말을 더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고, 여자 하나가 경마 대회를 망쳤다고 끌끌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 자체는 급진적인 여성 한 사람의 단독 행동이었지만, 이 일을 다루는 세상의 태도는 다른 사람들이 이대로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장례 행렬은 길게 이어졌다.



에밀리의 장례식에서 높이 올라간 깃발에는 계속 싸우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삶을 마무리하는 장례식치곤 너무나 호전적인 메시지지만, 그가 평생 견지해온 삶의 태도였다. 어떤 싸움은 아무리 지난해도 그만둘 수 없다. 그렇게 악착같이 지켜낸 것들이 우리를 지켜주는 날도 분명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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