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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Nov 06. 2019

조슈아 웡Joshua Wong

우산을 들고 싸웠다

   홍콩이 세계사 무대에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아편 전쟁 때다. 물론 그 전에도 홍콩은 분명히 존재했으며 사람들이 생을 꾸려 가는 공간이었다. 다만 광활한 대륙을 통치하던 중국 왕조사에서 홍콩을 언급할 일이 잘 없었을 뿐이다. 그러니 큰 흐름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홍콩을 이슈의 중심지로 끌어올린 건 영국군의 탐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아편 전쟁 때 홍콩을 점령하고 전후 난징 조약을 통해 공식적으로 홍콩을 집어삼켰다. 우습게도 아편 무역을 빌미로 일어난 전쟁인데 아편 문제는 난징 조약에 규정조차 되지 않았다. 알량한 핑계조차 던져버리고 청나라를 털어먹는 조약이었다. 1997년 중국령으로 돌아갈 때까지 홍콩은 그렇게 영국 그림자 아래 있었다.


  때문에 홍콩은 중국 본토와는 다른 분위기로 흘러왔다. 좀 더 멀고 좀 더 이국적인 곳. 언제나 우리에게 들려줄 매력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성룡, 장국영, 양조위, 주성치, 홍금보, 왕가위, 오우삼... 홍콩 영화의 잔상은 여전히 짙고 깊다. 그뿐일까. 쇼핑 천국, 느와르 영화 수십은 족히 나올 것 같은 구룡 성채,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거리마다 아스라한 네온사인과 불빛들.


  그러나 중국 정부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속삭이는 이야기들이 우뚝 멈추고 만다. 중국은 독립을 기도하는 이들에게 민감하다. 위구르, 티베트 등 어디 한 군데라도 독립하기 시작하면 다른 지역도 우수수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에 따라 당근과 채찍을 구사하며 이 말 저 말을 갖다 대 왔다. 홍콩이 중국으로 넘어가던 1997년, 중국과 홍콩은 향후 50년간 일국양제(一國兩制), 즉 한 나라 두 체제라는 말 안에 남기로 결정했다. 중국의 일부이지만 일국양제라는 말 안에서 홍콩만의 정부를 꾸리고 헌법을 따로 가진다. 그대로 둘 테니 빠져나가려 들지는 말라는 중간선인 셈이다.


  한시적인 선이라서 그런 걸까. 중간선을 넘나드는 일이 종종 터져 나온다. 개중 2014년의 “우산 혁명”은 선거 제도 때문에 일어났다.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변경하도록 목소리를 냈으며 학생들이 주축에 있었다는 점에서 어딘가 한국의 1987년을 연상케도 하는 것 같다.


  대만의 경우에는 보통 선거를 치러 정부를 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범록 진영과 범람 진영, 즉 온건파와 강경파가 투표 결과 따라 권력을 잡는다. 이와 달리 홍콩은 간선제로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도 비슷한 예시가 있듯, 간접 선거는 누군가의 입맛대로 인사를 뽑는 시스템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홍콩의 간선제 또한 친중파를 앉혀 놓는 수단이 되기 쉬웠고, 직선제로 바꾸자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져 갔다. 결국 선거 제도를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불만을 무마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은 얼마나 미련한 일인가. 왜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에 불을 지르는 선택을 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 조건을 갖추면 누구든 출마할 수 있고, 그 후보들을 모두가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로 뽑을 수 있어야 직선제가 보장이 된다. 그러나 새로 바뀐 홍콩의 선거 제도는 숫제 오디션 프로그램 같았다. 위원회에서 후보를 두어 명으로 추린 후 국민들이 그 후보들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단이 어느 정도 거른 후 TOP10 정도부터 시청자 투표를 도입하는 것처럼. 차라리 시청자 투표가 순위에 결정적이라는 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홍콩 간선제보다 더 민주적이다.


  홍콩 시민들도 당연히 자유롭게 누구든 입후보할 수 있는 진짜 직선제를 원했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그간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지만 2014년 7월 초, 500명 가량이 체포되면서 하루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9월 말에는 사정이 달랐다. 대학들은 동맹 휴학을 했고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중고등학생들도 나왔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자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맞섰다. 마스크를 쓰고 우산을 쓴 사람들은 12월까지 경찰과 대치했다. 홍콩 시민들의 시위를 상징하는 물건이 우산이었다면 상징하는 인물은 여러 명의 학생들이었다. 9월의 동맹 휴학 흐름을 이끈 아그네스 차우, 시위의 주력 인사가 된 조슈아 웡 등이다.


  조슈아 웡은 9월에 시위가 시작되고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애초에 조슈아는 학생 때부터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홍콩 교육 정책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 사안에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그가 중국 공산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추후 시위 때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인용해 쓴 글에서 잘 드러난다. “사람들이 정부를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정부가 사람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조슈아 웡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섰지만 우산 혁명은 선거 제도를 바꾸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주요 인사들이 단식까지 불사했지만 12월 중순 시위는 끝났다. 베이징에서 불어온 바람을 따라 홍콩은 언론 통제라는 죔쇠를 조였다.


  어떤 학생들은 법정에 서야 했다. 함께 지도부에 있던 알렉스 차우, 네이던 로와 함께 조슈아는 “불법집회 참가와 그 선동”죄를 선고 받았다. 처음에는 사회봉사활동만 선고 받았지만 이에 검찰은 너무 가볍다고, 학생들은 유죄 판결이 부당하다고 각각 항소를 제기했다. 항소심에서는 6~8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상고심은 상고심대로 진행되고, 조슈아는 복역 중 보석으로 풀려났다. 결국 1심의 사회봉사활동 형으로 최종 선고가 나면서 법정 싸움은 그런 대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 후 시진핑은 헌법을 고치고 자기의 통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법정 선고가 떨어질 때 조슈아는 두고 보자는 말을 했다. 몸을 가둔다고 자기를 가둘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일국양제 시스템이 어느새 사라지고 중국이 슬그머니 홍콩을 중국의 시스템 안에 가두는 사태를 맞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우산 혁명은 시스템을 바꾸지 못했지만 사람들을 집결시켰고 함께 뭔가를 일군 경험을 안겨 주었다. 조슈아와 다른 지도부 학생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될 때 홍콩 시내에서 사람들은 징역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에도 어떤 이들은 우산을 들고 나왔다. 이미 이들의 마음 속에 우산 혁명은 어떤 상징이 되어 있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말레이시아에서 조슈아의 입국을 거부하기도 했는데, 아마 이런 비슷한 일을 조슈아는 이미 많이 겪었으며 앞으로 많이 겪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계속하고 있다.


  살아있는 인간이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그가 나이 들면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모른다. 과거의 민주화 열사가 오늘날 독재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든지 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니까. 그러나 적어도 그는 보여주었다. 우산 혁명이라는 싸움의 끝에서 졌지만 지지 않은 모습을, 끝없는 싸움의 끝은 끝내지 않는 자들의 몫이라는 것을. 조슈아 웡과 아그네스 차우 그리고 함께한 수많은 이들의 건투를 빈다.



  여기까지 쓰고 또 시간이 흘렀다. 2019년 홍콩 시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범죄인 인도 법안을 놓고 시작된 시위는 복면 금지법과 긴급 조치, 외신 기자 사망 등 듣기 싫은 단어들로 이어지고 있다. 흉흉한 소문이 많이 들려온다.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의문사들, 군사력의 움직임, 시위대에게 저지른 온갖 범죄들, 손을 맞잡은 시진핑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사진 같은 것들. 대학생들은 인터넷을 사수하기 위해 홍콩이공대를 마지막 거점으로 삼았고, 그곳도 곧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홍콩이공대 벽면에는 Dear world, 전 세계에 이들이 남긴 메시지가 거칠게 남았다. "중국이 신장(위구르)처럼 너희 나라를 털어먹으려 들 것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다음은 당신이다."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지고 있다. 위구르와 홍콩뿐 아니라 인도나 미얀마에서도 바람을 타고 어떤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한복이나 김치, 윤동주라는 시인의 존재마저 중국의 테두리에 편입하려는 불편한 움직임들도 포착된다. 유례 없는 공격적 행보에 경계심을 느끼고 예민하게 움직인 사람들은 <조선구마사> 드라마 방영 금지라는 결정까지 끌어냈다.


  중국이 굴기를 꾀하는 방식은 주변국들에게 매우 공격적이다. 문화대혁명으로 제 문화를 파먹은 이들이 이제는 남의 문화마저 파먹으려 들고 있다. 홍콩만의 다채로운 색깔을 지키기 위해 홍콩은 잠시 검은 복면을 썼다. 사람들은 이제 홍콩이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슈아 웡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몇 달 전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도 그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미얀마를 지지한다는 뜻을 세계에 전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아그네스 차우가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건투와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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