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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Nov 08. 2019

카고 아이加護亜依

그의 몰락에 책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

  혹시 아는 일본 연예인 이름이 있다면 말해 보자. 나는 이름을 읊다가 15년 전쯤에 기억이 멈춰 있음을 깨닫는다. 마츠모토 준, 야마시타 토모히사, 뭐 이런 이름들.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일본 문화는 보편적이라기보단 특정인들만 깊이 파는 문화지만, 그래도 내가 중학교 때쯤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일본 드라마 한두 편쯤은 보았던 때가 있었다. 아주 짧지만 그 시절 내 또래는 일본 연예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정도는 의식하고 있었다.


  카고 아이는 그 존재감의 중심에 있었다. 카고 아이는 몰라도 모닝구 무스메라는 그룹명 정도는 들어보았거나, 모닝구 무스메를 몰라도 카고 아이 사진은 한 번쯤 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연예인 사진에 화려한 효과를 입히고 글귀를 넣어 만든 이미지가 인터넷에서 유행이었던 시절, 카고 아이 사진은 여기저기 많이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너무나 귀여웠다. 초등학생 때 데뷔했으니 실제로 어리기도 했고, 젖살이 통통한 볼, 앙증맞은 목소리, 눈을 깜빡이며 웃는 모습, 밝은 태도는 누가 보아도 사랑스러웠다. 단연 당시 일본의 국민 아이돌이었다.


  카고 아이는 이미 언급한 그룹 ‘모닝구 무스메’로 데뷔했다. ‘모닝구 무스메’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를 주름잡은 일본의 여자 아이돌인데, 멤버들이 기수제로 들어오고 탈퇴 대신 ‘졸업’을 하면서 똑같은 그룹명 안에서 멤버만 계속 바뀌는 시스템이다.


  카고 아이가 모닝구 무스메에 합류한 2000년 언저리는 그룹의 전성기였다. 특히 당시 12살 카고 아이와 13살 츠지 노조미는 찰떡같은 조합이었다. 모닝구 무스메를 졸업한 후에도 둘은 W라는 듀엣으로 함께했다. 두 사람 모두 사랑스러웠지만 이미지를 만드는 건 누가 봐도 카고 아이였다. 그렇게 카고 아이는 자신이 그룹 밖에서도 건재한 캐릭터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인기에 끝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끝은 있었다. 끝의 시작은 교환일기 유출이었다. 우리나라의 어떤 연예 기자들이 잠복하면서 사진을 찍어 열애설을 낸다면, 일본 잡지사들은 연예인 주변인에게서 사진이나 자료를 비싼 값에 산다. 몰래 사진 찍히는 것도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지인이 돈 받고 넘긴 자료를 잡지에서 보게 된다면 배신감까지 들어 이중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카고 아이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 친구가 오래 주고받은 교환일기를 넘겼다. 귀엽고 깜찍한 소녀 이미지 이면에 있던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치마를 뒤집어 팬티를 보여주는 안무가 창피했다든지, 가방이 핏빛으로 보인다든지... 녹록하지 않은 연예계에 사는 인간의 일기로서 그저 안쓰러운 내용이었으나, 대중은 이를 선정적으로 소비했다. 게다가 얼마 후 미성년자였던 카고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 잡지사에 올라왔다. 이 또한 사석에서 지인이 찍은 사진이었다.


  연예계 사건 사고란 참 알 수 없어서, 작은 일로 죽어라 욕먹는 이도 있고 중죄를 저질러도 어영부영 넘어가는 이도 있다. 대중은 법전이 아니라 토막 난 정보와 이미지를 토대로 판단하니까. 물론 미성년자 카고 아이가 담배를 피운 건 잘못이지만, 사람들이 카고 아이에게 분노한 건 준법정신 때문이 아니었다. ‘해맑은 소녀’ 캐릭터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괘씸죄를 부여한 거였다. 결국 소속사는 카고 아이를 자숙하도록 했는데, 공백기를 맞은 카고 아이의 사진을 대중은 다시 잡지에서 보게 된다.


  손에 담배를 든 카고 아이가 나이 든 남자와 함께 온천에서 나오는 사진이었다. 남자는 카고 아이보다 21살이나 연상이라고 했다. 카고 아이는 소속사에서 계약 해지를 당했고 대중의 시선도 차가웠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카고 아이의 몰락이었다.


  얼마 후 카고 아이는 세미누드 사진집을 냈다. 반응은 좋지 않았다. 연예인으로서 받고자 했을 사랑 대신 선정적인 구설수와 카더라만 몰고 들어갔다. 얼마 후 온천에서 함께 나오던 21살 연상의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의 폭력을 비롯해 좋지 않은 소식만 전해졌다. 결국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혼을 했다고, 가끔 잊을 만하면 그렇게 카고 아이의 이름을 들었다.


  그 모든 내내 사람들은 너무나 잔인하게도, 이제 조금 있으면 성인 비디오 찍겠다며 수군거렸다. 성인 비디오가 흔한 일본에서는 연예인이 몰릴 때까지 내몰렸을 때 종종 있는 일이었다. 훗날, 소속사에서 포르노 출연을 종용했으며 그래서 자살 시도까지 했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본인 입을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카고 아이와 같이 데뷔해서 그룹부터 듀엣까지 함께한 츠지 노조미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평탄한 결혼 생활을 함은 물론 자기 사업까지 확장하며 잘 나가고 있다. 아마 카고 아이 같은 이들보다는 연예인 자리에서 특권을 누린 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보통은 연예인들이 누리는 게 더 많고, 기회도 더 많다. 그렇게 거의 사회 특권층이 되다시피 해서인지, 어린 나이에 데뷔해 삶의 어느 부분이 여전히 그 나이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삶을 스스로 날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기사를 볼 때면 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심각한 경우에는 그들이 나올 때마다 불쾌함을 느낀다.


  그러나 카고 아이는 경우가 다르다. 그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그는 무대 위에서 자기 역할을 잘 수행했다. 연예인이라고 그의 모든 사생활 모든 순간이 노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쓴 글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찍히는지도 몰랐던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려 이러쿵저러쿵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친척 얼굴보다 자주 본 얼굴이어도 연예인은 대중에게 타인이다. 무대는 그의 직업이고, 무대 뒤의 시간은 온전히 그의 것이다. 내가 퇴근한 후에는 온전히 내 시간이듯이.


  그 시절 모두가 본인은 카고 아이를 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0명이 넘는 여자아이들이 비슷한 목소리로 지저귀듯 부르는 노래에서 카고 아이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 카고 아이의 사진을 카고 아이 본인보다 더 많이 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예능에서 보이는 모습과 인터뷰 답변 등을 통해 카고 아이 성격마저 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꽤나 많았을 것이다. 그를 안다고,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과연 앎이었고 사랑이었는지.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가정의 문제들을 끌어안고 있었고, 남들 앞에서 웃는 만큼 혼자 쉴 시간도 필요했겠지만 그럴 틈이 없었고, 일정한 얼굴만을 드러내야 하는 생활에 지쳐버렸을 때... 그래도 여전히 정해진 역할을 잘 해냈는데, 굳이 무대 뒤의 모습까지 뒤져내어 낱낱이 밝혀낸 상황. 과연 카고 아이 잘못일까?


  카고 아이는 연예인이기 이전에 12살이었고 18살이었고 22살이었다. 아무리 넉넉하게 쳐 줘도 아직 어린 나이들이다. 12살 작은 아이가 들어간 세계는 조금 다른 시계로 시간이 흐르는 곳, 조금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6년이 지났어도 다른 사람의 18살과는 다른 18살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꾸짖고 그 잘못에서 배울 수 있도록 지적해줄 보호자가 없는 세계, 잘못과 “배신”에 대한 괘씸죄까지 책임을 묻는 세계에 그는 놓여 있었다.


  그 세계는 세일즈의 칼 같이 잔혹한 논리가 개입되지만 동시에 예측하기 어려운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나마 예측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연예인들은 본인이 아닌 어떤 캐릭터를 부여받는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이들은 배우만이 아니다. 아이돌 가수들도 그룹 안에서 역할을 잡고 최대한 그 캐릭터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 성격과 상관없이, 본인 감정과 상관없이 주어진 역할을 다해야 한다.


  성격만 연기하면 다행이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성적 어필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본인에겐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였던 그 성적 어필 때문에 사석에서 부조리한 말이나 성희롱의 말을 듣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치마를 뒤집어 속옷을 보여주는 안무를 준비한 건 소속사, 그런 걸 보란 듯이 전시하다가 그걸 창피해하는 속내마저 까뒤집어 손가락질한 건 잡지사다. 그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 따르듯 환호와 야유를 오간 건 대중이다. 모두가 카고 아이에게 잔인할 때에도 그는 자기 캐릭터대로 밝은 아이여야 했다. 우울함이나 슬픔과는 거리가 먼, 그런 건 전혀 모른다는 듯이 해맑게 웃는 아이여야만 했다. 그게 카고 아이의 선택이었을까.


  이제 삼십 줄에 들어선 카고 아이의 남은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놀라운 모습으로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대중은 카고 아이를 서서히 잊어 갈 확률이 높다. 그렇게 카고 아이의 이야기는 지난 이야기가 되어간다. 그저 지금 그가 어딘가에서 무탈하게 지냈으면 싶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일본 연예계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치열하고 괴이한 한국 연예계 단면을 생각하면, 한 사람의 대중으로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형적인 산업을 이끌고 따라가는 이들 중 어느 누가 카고 아이의 불행에 책임 없다 할 수 있을까. 그의 몰락에 책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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