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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Nov 07. 2019

네이딘 고디머Nadine Gordimer

초연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인종 차별은 뿌리가 깊다. 고작 피부색이 뭐라고, 너무 유치한 발상이 이토록 깊은 뿌리를 내다니 놀랍지만 그렇다. 슬프지만 우리 대다수는 당대의 분위기에 쏠려 침묵하는 군중이 되기 쉽다. 갈릴레이를 죽인 중세 사람들처럼 우리도 많은 것을 생각지 못한 채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가끔은 도저히 그렇게는 넘어가지 않는 인물들이 나타나 빛을 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 분리라는 이름으로 인종 차별의 상징처럼 남은 단어와도 끝까지 싸운 사람들이. 물론 넬슨 만델라가 가장 먼저 생각나지만 그 혼자가 아니었다. 그가 1964년에 종신형을 선고받고 마지막 변론 기회마저 연설로 빛낼 때 그 자리에서 그를 지지한 사람, 1990년에 마침내 석방된 그가 얼른 만나고자 했던 상대. 남아공에 사는 백인으로서 인종 차별을 반대한 사람, 네이딘 고디머가 있었다.


  네이딘 고디머는 부커 상, 노벨 상을 둘 다 탄 대작가다. 동시에 투사였다. 넬슨 만델라와 함께 인종 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 조직에서 활동한 이력도 있다. 번번이 정권과 마찰을 빚는 바람에 소설이 판금되기도 여러 번이었으니, 예술에 대한 검열에도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했음은 물론이다.


  동시에 그는 남아공을 떠나지도 않았고, 남아공 사회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언젠가 남아공에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인종 차별도 성 차별도 끝나는 날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얼핏 급진적이고 나이브해 보이지만 그는 이 꿈을 평생 견지해왔다. 인터뷰에서 "사회가 도저히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급진적"이라고 되받아칠 만큼 여유 있게. 그는 항상 초연하고 예리한 태도를 유지했다.


  어린 시절부터 네이딘은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들에 의문을 품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물건을 사러 가면 자신은 옷 한 벌을 사도 꼼꼼히 만져볼 수 있는데, 학교 앞 상점에 보이는 흑인 광부들은 왜 물건을 조심스레 가리킬 수밖에 없는지, 철사 한 줄을 넘지 못하고 그 사이로 돈만 슬쩍 건네고 물건을 받아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흑인에게는 술을 팔지 않던 시절이라 곳곳에서 밀주가 횡행하던 시절, 어느 날 밤 갑자기 밀주 단속을 나왔다며 경찰이 흑인 하녀의 방을 급습해 뒤집던 날을 그는 기억한다. 부모는 밤중에 갑자기 집안에 들어온 경찰을 말리지 않았고,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던 어린 날의 기억은 이후 그의 책에 박제되었다.


  대학에 간 후 그에게는 같은 마음을 가진 흑인 친구들이 생겼다. 그때까지 만났던 어떤 백인들보다 훨씬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바르게 흘러간 그의 시간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 14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네이딘은 자신이 작가가 된 게 오롯이 독서의 힘이라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니까, 독서를 하면서 언어를 배우고 문장을 다듬었다니까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정규 교육을 끝마치지도 않았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문예창작 과목에도 학을 뗐으니 독서에 공을 돌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어린 시절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못한 시선에서부터 작가가 태어났을 것이다. 물론 그 시선을 독서가 주었을 수 있지만, 같은 책을 읽는다고 모두가 같은 것을 보지는 못한다. 그가 자라면서 그 안의 작가도 자라 결국에는 세상으로 나온 것일 테다. 당대 백인들과 생각을 같이하지도, 당대 흑인들과 같은 위치에 서지도 못했을 중간자는 자신의 균형점을 찾아 그만이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을 담아냈다.


  이제 그 모든 투쟁은 다 과거지사가 되었다. 인종 차별 정책이 폐지되고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그는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보이는 모습을 흐뭇하게 이야기한다. 흑인과 백인 남자아이들이 같이 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 놀랍다고. 자기 세대에 그렇게 꿈꿨을 장면, 자기 자녀 세대에도 차마 보지 못했던 장면을 그는 보았다.


  이쯤 되면 제법 아름다운 결말이다. 아파르트헤이트 문제가 해결되고 작가로서 성공도 거두었으니 뿌듯한 노후를 보내도 되련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그의 예리한 시선은 뜻밖에도 에이즈를 향한다. 그는 에이즈 예방 교육이나 에이즈 감염자 치료를 위해 기금을 모았고, 국가의 에이즈 대처 정책에 대해 명쾌하게 의견을 내기도 했다.


  쉼 없이 쓰고 쉼 없이 읽었던 사람, 쉼 없이 목소리를 내고 또 쉼 없이 들었던 사람. 그의 꿈은 매일 현실에서 좌절되고 내팽개쳐지는 것이었으나, 그는 눈앞의 것이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이뤄질 날을 보고 살았다. 때문에 절망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늘 단단했다. 그 힘으로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어딘가 결여된 타인들의 허망한 면면을 들어 올린다. 강단 있는 그 모습이 시공간을 건너 지금 여기까지 생생한 힘을, 꿈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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