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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Nov 09. 2019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도로시를 아껴준 건 나쁜 마녀뿐이었다

  신비로운 이야기들은 길이길이 살아 숨 쉬며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그렇게 제2, 제3의 창작으로 이어질 때조차 원작의 신선함이 줄어들지 않는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다 본 것 같지 않은 기분, 눈을 가늘게 뜨고 좀 더 집중해서 보면 전에 못 본 무언가가 더 보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쩐지 손에서 뗄 수가 없다. 낯설고 묘한 매력이 있는 이야기들. 역시 이상한 나라를 뛰어다니는 앨리스, 그리고 신비로운 여행길에 오른 도로시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배경 자체가 현실과 거리가 먼 환상이며, 등장인물들 또한 그 환상의 세계에서니까 납득이 되는 인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배경과 인물, 이야기까지 모두 몽환적인 이런 이야기를 영화계가 탐내지 않았을 리 없다. 앨리스는 푸른색 드레스에 흰색 앞치마를 걸친 디즈니 애니메이션부터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주연을 맡은 영화까지 다양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도로시 하면 누구나 단 하나의 영화, 단 한 사람만을 떠올릴 것이다. Over the rainbow라는 곡을 청아하게 부르던 배우 주디 갈란드의 모습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다. <오즈의 마법사> 원작부터가 재해석의 여지가 많아 다채롭고 풍성하다. 금본위제와 은본위제의 대립으로 보면서 당시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비판하는 작품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 여성 참정권 등을 암시하는 장면 등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보기도 한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물건을 함께 나눠 쓰는 모습에서 사회주의의 공유 경제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단순히 여자아이가 환상적인 모험을 하는 이야기로만 보아도 흥미롭지만, 다면적으로 살펴보면서 보물찾기 하듯 오즈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도 재미다.


  그러나 정작 도로시 역할을 맡은 주디 갈란드에겐 기쁜 탐험이 아니었다. 주디 갈란드의 길에 비하면 도로시의 여정은 문자 그대로 황금 길이었다. 주디의 삶에는 황금 길도 은색 구두도 놓여 있지 않았다.


  주디는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들어섰다. 성 착취가 횡행하는 업계에서 아이를 보호해야 했지만, 주디가 데뷔한 해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주디의 어머니는 보호자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다. 주디의 어머니는 본인이 못 다 이룬 꿈을 딸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인물이었다.


  주디는 관능적인 느낌보다는 깜찍한 느낌이 강해 당대에 선호하던 주연 이미지가 아니었다. 주디의 어머니는 딸을 “성공”시키겠다는 미명 하에 주디를 약물이나 성 접대 자리로 내몰았다. 감독들이 성 접대를 받는 일, 자연스러운 연기를 시킨다는 명목으로 어린 배우에게 약물을 사용하는 일... 이런 끔찍한 일이 당시 할리우드에선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었다. <오즈의 마법사> 현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디는 <오즈의 마법사> 촬영 내내 약물로 수면 시간을 조절했고, “어린” “여자”가 주연을 맡았다는 걸 질투한 성인 남자 배우들의 학대를 받았다. 여기서 말하는 ‘성인 남자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내내 도로시의 도움을 받아 소원을 이룬 양철 로봇, 사자, 허수아비 역할의 배우들이다.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가 없다. 담배 80개비를 피우게 강요했다는 일화가 유명한데 “지어낼 거면 좀 그럴듯하게 지어내야지... 담배 80개비라니 말이 되나” 싶게 비상식적인 일화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촬영장에서 정상적인 청소년이 누려야 할 규칙적인 수면을 보장받긴 힘들었겠지만, 주디 상황은 그 수준이 아니었다. 배우 몸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약을 써댔다. 촬영장 대부분이 주디에게 우호적인 입장이 아니었던 걸 생각하면, 해줄 수 있는 스케줄 조정도 해주지 않았을 공산이 훨씬 높다. 촬영 현장에서 주디를 다정하게 대한 인물은 서쪽의 나쁜 마녀 역할을 맡은 마가렛 해밀턴 뿐이었다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도로시를 둘러싼 오즈의 세계가 얼마나 허울뿐인 모습이었는지 느껴진다.


  도로시의 세계를 벗어나서도 주디 갈란드는 황금 길을 찾지 못했다. 소속사와 주디의 어머니, 영화계 인물들은 계속해서 주디를 약물에 절여 놓았다. 사람이 아니라 상품 취급이었고,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


  학대만 받은 사람의 삶이 어떻게 정상적일 수 있을까. 신경쇠약, 약물과 알코올 중독, 자살 시도 등으로 주디의 20대는 한없이 불안정했다. 그러나 스크린 위에선 또 다른 존재여서, 출연작마다 흥행의 연속이었다. 누가 봐도 쉼이 필요한 존재였지만, 소속사는 주디의 내면이 덜그럭거리든 말든 죽어라 끌고 다니기 바빴다.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단물을 뽑아 먹을 만큼 뽑아 먹은 후에야 주디를 놓아주었다. 그 후 주디는 어머니와도 멀어진다.


  영화를 떠났어도 주디는 여전히 건재한 스타였다. 무대에도 오르고 텔레비전 쇼에도 출연했으며 음반도 냈다. 공적인 세계에서 주디는 더없이 강력했지만 무대 뒤 본인의 일상은 어린 시절부터 허물어진 상태 그대로였다.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은 그 숫자보다도 이유와 내막이 하나같이 죄다 씁쓸하다. 남편의 동성애로 인한 원치 않았던 파국, 각자의 중독으로 결국 서로를 끌어안지 못해서 맞게 된 이혼... 심지어 어떤 남편은 사위와 눈이 맞아 떠나갔는데, 그때도 주디는 말없이 보내주었다 한다. 알코올과 약물 중독은 더욱 심해져 갔다. 어린 시절부터 이용하기 편하도록 주디의 몸에 약물을 밀어 넣은 이들은 그의 마음에도 그 못지않게 해로운 것들을 주입했다.


  주디는 은막의 스타였지만, 그를 바라보며 배우의 꿈을 키우거나 행복해한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을 만큼 병들고 지친 상태였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으니 타인이 주는 환호 소리가 마음에 건강한 자존감으로 쌓일 리 없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지만 그는 평생 애정 결핍에 허덕였다. 게다가 그의 몸은 타인의 사랑보다 약물에 더 익숙했다.


  결코 정상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력에도 불구하고 주디가 삶에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 곳곳에서 풍긴다. 무대 위에서, 스크린 위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주디 자체가 그 증거다. 그 불안정한 와중에도 마치 다른 사람처럼 노래하고 연기하며 무대에 올랐다.


  애초에 자기가 걷던 길을 떠나는 방법을 배워 보지 못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소속사와 결별한 후 어머니와 남남이 된 걸 보면 주디도 나름대로 자기 삶을 불우하게 만드는 원천을 제게서 꺾어내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오랜 세월 학대당한 사람이 그 학대로부터 벗어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하면, 어머니와 남남이 되었다는 그 짧은 문장 뒤에서 그가 겪었을 감정들이 더욱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그는 평생 스스로이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 목소리를 우리는 지금도 종종 듣는다.


    주디 갈란드가 부른 노래 하면 단연 Over the Rainbow가 가장 유명하지만, 연말이 되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또한 주디 갈란드의 곡이다. 이 곡을 들으면 언제나 따뜻한 촛불 앞에 앉은 듯한 기분이다. 연말 노래라 더 그런 것도 같지만, 멜로디나 가사도 워낙 다정한 노래다.


  약물에 죽음까지 내몰린 주디 갈란드가 여전히 우리에게 다정한 선물을 남겨둔 것을 보며,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사회에 남기는 가장 좋은 영향력은 연예인 본연의 일, 즉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렇게 소중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성폭력과 약물에 휩쓸려 소리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현실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가슴 아프다.




  프랑스 배우 레아 세이두는 그야말로 영화계의 “금수저”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유력 영화사 하나씩을 운영하고 있고, 다른 가족들도 실제로 큼직큼직한 기업을 이끌고 있다. 재산과 영화계 인맥을 모두 가졌는데 본인 역량도 탁월해서, 작품마다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때 이례적으로 감독뿐 아니라 배우들 공이라고 콕 집어 이름이 언급됐다.


  그런 레아 세이두조차 자기가 하비 웨인스타인의 피해자 자리에 놓인 적 있다고 폭로했다. 실력과 명성은 물론 재산과 인맥까지 다 가진 배우조차 그의 물리력과 영향력 앞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고백한 것이다. 레아 세이두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운이 나쁘면” 어떤 일을 겪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한국 연예계에서도 너무 끔찍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 귀를 닫고 싶은 순간이 많다.


  그럴 때마다 주디를 떠올린다. 떠밀리고 떠밀리면서도 최선을 다했던 주디처럼, 누군가가 다정한 노래를 또 마음 다한 연기를 작품으로 남기고 있을 것이기에. 너무 거대한 범죄가 연루되어 있어 나약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주디가 부른 노래 가사처럼 행복한 작은 파랑새들이 무지개 너머 날아갈 수 있다면 우리라고 못 할 건 또 뭘까. “무지개 너머 저기 어딘가 하늘이 푸른 곳, 감히 품었던 꿈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곳”에서 “구름은 저 멀리 아래에 있고 괴로움은 레몬 사탕처럼 녹아내리는” 날이 또 있을 것이다. 그 날까지 누군가 어디선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펼치고 있을 것이다. 예술가가 예술하는 단순한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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