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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Nov 10. 2019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신을 찾았지만 하늘은 텅 비어 있었고

  미국에 한 전도유망한 여성이 있었다. 8살 나이로 시를 발표했을 만큼 타고난 시인에다가, 유수의 대학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만큼 평생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그와중에도 쉬지 않고 방학 때 여성지 인턴을 할 정도로 적극적인 면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장학금까지 받으며 영국 유학길에 올랐고, 그곳에서 준수한 청년을 만나 결혼했다. 그 청년도 시인이 되면서 이 둘은 젊고 아름답고 지적인 시인 부부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첫 시를 발표한 다음 해 9살 나이로 첫 자살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화려한 도시 뉴욕에서 여성지 인턴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또 자살을 시도했으며, 이러한 자살 시도는 길지 않은 삶 내도록 꾸준히 이어졌다. 준수한 문학청년인 줄로만 알았던 남편의 외도로 결혼 생활은 산산조각이 났는데 그 후 또다시 시도한 자살이 기어코는 ‘성공’했다. 그것도 아주 충격적인 방법으로.


  미국의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이야기다.


  실비아 플라스의 아버지 오토 플라스는 독일계 미국인으로, 벌 연구에 일가견이 있는 생물 교수였다. 어머니인 오렐리아와는 무려 20살 차이였다. 학생이었던 오렐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한 후 원래 아내와 이혼한 다음 오렐리아와 재혼하는 놀라운 행보를 착착 보였지만, 어떤 재혼 생활을 상상했든지 현실에서 오래 누리지는 못했다. 딸 실비아와 아들 워렌까지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사실은 당뇨 합병증이었으나 오토 플라스는 자신이 폐암에 걸렸다고 굳게 믿었다. 얼마 전에 폐암으로 죽은 친구 증상과 자기 증상이 비슷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 치료를 거부했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그때 실비아는 고작 여덟 살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데다가 원래 스승과 제자 관계였던 부모님의 관계에서 본 권위적인 가족상, 그나마도 아버지의 죽음으로 너무나 빨리 끝나버렸다는 점은 실비아의 평생에 트라우마처럼 남아 영향을 끼쳤다. 아마도 무언가가 뚝 끊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 것 같다. 그 이후 실비아의 일기를 보면 신을 찾지만 답변이 없고 자기의 외로움만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구절이 많다. 읽다 보면 그가 말하는 신이란 결국 권위적인 모습만 보여주다 금세 사라져 버린 아버지의 치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8살 때 시를 기고한 후로도 실비아는 여러 잡지와 일간지에 시를 냈고, 미술에도 재능을 보였다. 겉보기엔 못 하는 게 없는데다가 외모도 예뻐서 그에게 호감을 표하는 사람도 많았다. 실비아의 내면에는 걷히지 않는 우울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겉보기엔 화사하고 고고하게만 보였다.


  자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때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성공가도가 이어져 갔다. 이제 그는 영국 유학길에서 당시 대학생이었던 테드 휴즈를 만났다. 훗날 영국 계관 시인이 될, 시를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넉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나오는 하루이자 제임스 조이스를 기념하는 날인 블룸스 데이(Bloomsday, 6월 16일)를 부러 결혼식 날로 정했다. 그야말로 문학청년들의 결혼이었다.


  1960년은 실비아의 삶에 중요한 첫 열매들이 맺힌 해였다. 큰딸 프리다도 실비아의 첫 시집도 세상에 나온 해였으니까. 작가로서도 가족 구성원으로서도 바쁘게 삶을 꾸려 나갔다. 또 한 해가 지나 1962년, 이번에는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테드 휴즈는 벌을 키우기 시작했다. 큰딸과 둘째 아들을 낳고 벌을 키우는 남자. 아버지와 겹쳐 보이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 실비아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즈음의 실비아는 바쁘고 평범해 보이지만, 실비아의 내면에 있는 어떤 것들은 벌처럼 윙윙거리며 실비아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실비아는 이때 있었던 교통사고도 사실은 자살 시도였다고 기록했다. 이후 실비아의 시에도 벌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비아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테드 휴즈가 불륜 사이라는 사실을. 상대는 작년에 집을 빌려준 부부의 부인이었다. 결국 날씨가 갈수록 추워지던 12월, 집에 얽힌 불쾌한 기억을 뒤로 한 채 실비아는 아이들만 데리고 런던으로 이사했다. 이 시기도 실비아가 다작(多作)한 시기에 속한다. 


  당시 런던은 “100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였다. 도시 전체를 꽁꽁 얼리는 동장군 앞에서 실비아는 무력해졌다. 배수관이 얼거나 아이들이 아프거나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실비아의 우울증은 깊어 갔고, 약을 먹거나 차를 강으로 운전하는 등 몇 번이고 자살 시도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실비아는 아이들이 잠에서 깨면 먹을 간식을 준비해둔 뒤 아이들의 방을 테이프로 잘 막고, 가스 오븐에 머리를 넣어 자살했다. 1963년, 30살 젊은 실비아 플라스는 그렇게 질식사했다. 이후 한 평론가는 이 자살이 “도움을 요청했으나 응답받지 못한 것”이라고 평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실비아가 죽고 나서 테드 휴즈는 아이들을 데려갔다. 아이들이 태어난 집이었지만, 테드 휴즈의 불륜 상대였던 아씨아 웨빌이 이혼도 하지 않은 상태로 같이 살고 있었다. 실비아가 자살할 때 아씨아는 테드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실비아의 자살 소식이 너무 충격적이었던지 유산을 했다. 이후 아씨아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실비아의 존재에 거의 집착을 한다. 몇 년 후 자기 딸을 죽이고 실비아 플라스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살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여러 모로 착잡한 이야기다.


  두 여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테드 휴즈의 이름은 길이길이 잘 살아남아 극찬과 욕을 동시에 먹는 이름이 되었다. 결혼도 다시 했으며 시인으로서도 잘 나갔다. 영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테드 휴즈를 동시대 최고의 문인으로 꼽는 사람도 많다. 내가 학부 때 배운 교수님 중에도 그런 분이 계셔서 그의 <시작법詩作法>이라는 책이 우리 집에도 있다. 오래 전 절판된 낡은 책인데, 책을 닫으며 덧붙인 역자 해설이 참 흥미롭다.


  “... 이 두 사람의 탁월한 시인의 결합은 단순한 공동생활을 뛰어넘어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하고 격려를 하기도 하며 각자 작품을 쓸 수 있도록 한 반면 결국에 가서는 단지 <글을 쓰기 위하여> 결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하기도 했다. 그 상황은 결국 실비아 플라스의 자살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


  아마 이 책을 번역하신 분께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 자체와는 무관한 선정적인 이야기라고, 오히려 시 작법을 가르치는 책의 본 목적을 흐린다고 판단해 자세히 넣지 않으셨으리라 감히 추측해 본다. 매우 오래된 책이라 사회 변화를 감안하면 더더욱 그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마치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을 위해 내놓는 연예 기획사의 공식 입장 같은 느낌을 주는 문구다. “글을 쓰기 위하여 결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니. 마치 “음악으로 보답하겠습니다”처럼 누군가의 잘못을 싹 지워낸 말, 얼마나 무의미한 말인가 생각해 본다. 도덕이 도덕으로 존재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럴 때 굳건히 세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인데, 사람의 마음을 할퀴면서 도덕을 깬 사람이 승화시킨 예술이 대체 누구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게다가 테드 휴즈는 실비아 플라스 사후 실비아의 글을 제 손으로 직접 엮어 욕을 먹었다. 실비아가 배열한 순서를 마구 섞어서 실비아가 원했던 의미를 희석시켰고, 이후 출판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에도 손을 댔다는 의혹이 있다. 실비아 플라스의 팬들은 테드 휴즈의 그런 행태에 매우 분노해 실비아 플라스의 무덤에 찾아가 ‘휴즈’라는 성을 지워 버리기까지 했다. 세월이 모든 감정을 흐릿하게 만든 지금도 테드 휴즈의 이름은 영광과 저주 사이 어딘가에 걸려 있을 것이다.


  실비아의 ‘죽음’을 테드 휴즈 탓으로만 몰아갈 수는 없다. 실비아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불안과 우울로 잠식되어 있었고, 그 흔적을 일기 곳곳에서 볼 수 있으니까. 사진 속의 실비아는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고, 마치 잡지 속의 여성 모델처럼 자신만만하게 보이고, 테드 휴즈는 아무튼 큰 잘못을 했다. 그래서 그냥 테드 휴즈를 비난하는 걸로 이 비극적 이야기를 흘려 넘기기가 너무나 쉽지만, 실비아의 문학을 토대로 과감하게 추측해 보자면, 테드 휴즈의 영향력보다 큰 그 어떤 것이 이미 발자국을 찍었다.


   실비아는 단지 남편의 배신으로 사랑을 잃고 자살한 여자가 아니다. 실비아의 자살 방식이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만큼 괴이하고, 불륜이 얽힌 이야기라 호사가들의 시선을 끄는 면이 있어서 실비아의 이야기가 그렇게만 소비되어 버리기가 너무 쉽지만... 실비아의 절망은 단순히 여자와 남자의 사랑에만 원인을 두고 있지 않다.


  실비아를 짓누른 무게를 나는 그 아버지에게서 찾는다. 아버지를 죽였어야 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는, 섬뜩한 실비아의 시를 아시는지. 항상 당당한 실비아의 뒷면에는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자기를 뚝 끊어내고 홀연히 떠나가는 그림자에는 익숙했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언제나 든든하게 기댈 곳이 되어 주는 그림자를 평생 갖지 못했기에 불안했던 것은 아닐까? 실비아 플라스의 “신에게 말을 걸지만 하늘은 텅 비어 있었다”는 말은 무신론자들 입에서 쉬이 흘러나오지만, 그 말을 하는 실비아의 마음이 더없이 공허했으리라 생각하면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다.


  실비아가 남긴 글을 보면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기댈 곳을 잃고 다시는 기댈 곳을 찾지 못한 사람 특유의 꼿꼿함이 보인다.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는 말, 세상이 나를 건드리게 두느니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게 더 안전하리라는 말,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어둠에 스스로도 두려워진다는 말을 그의 일기에서 하나씩 읽어 내리며 나는 그런 실비아를 연민한다.



  자기 내면에 고요해지지 않는 목소리가 늘 있기 때문에 글을 쓴다던 실비아 플라스는 일기 곳곳에 사랑받고 싶었다는 마음을 소리치듯 풀어놓았다. 역설적으로 불안의 끝에 몰려 자살 시도를 할 즈음의 글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다 사후 일일 뿐 실비아 생전에는 일기장 속 그 마음에 응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지나간 삶의 궤도는 바꿀 수 없고, 진작 고인이 된 실비아의 삶은 위로할 수 없다. 온 세상 모두가 온전히 행복한 유토피아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라건대 지금 비슷한 공허함 속에 있을 누군가에게는 위로의 목소리가 곁에 있었으면 한다. 그가 실비아처럼 멀리 날아가 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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