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 베아Ishmael Beah

전장의 소년병이 집으로 가는 길

by 선이정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다. 가수들이 어떤 식으로 마이크를 잡는지, 어떻게 비트를 타고 어떻게 발음하는지 유심히 본다. 힙합과 랩을 좋아하는 10대라면 이런 경험을 방구석에서 조용히 해봤을 법하다. 개중에는 가사를 써서 오디션장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경연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내는 이들도 많을 것이고.


이스마엘도 그런 소년이었다. 형과 함께 집을 떠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른 동네까지 갈 길이 멀었다. 부모님께도 정확히 알리지 않고 길을 떠났다. 아끼는 테이프 몇 개를 주머니에 넣고 당시 유행대로 헐렁한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었다. 마치 소풍 날 같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로.


이스마엘의 고향은 시에라리온이다. “사자의 산”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나라, 유명한 다이아몬드 생산지지만 그 다이아몬드 때문에 시에라리온 현대사는 더욱 잔혹해졌다. 정치계와 군대의 권력자들은 다이아몬드 수입보다 더 어마어마한 액수로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정부는 무능해지고, 정국은 위태로워졌다.


시에라리온 현대사 문제에는 언제나 다이아몬드가, 정확히는 다이아몬드를 향한 인간의 욕심이 있었다.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만과 이웃 국가 라이베리아의 내전 등이 겹겹이 쌓인 자리에 탐욕이라는 도화선이 댕겨지면서 시에라리온 내전으로 폭발했다. 반군이 이웃 나라 라이베리아의 군사 지원을 등에 업고 벌인 일이었고, 라이베리아도 다이아몬드를 노리고 지원한 것이었다.


다이아몬드 생산이 중요했기 때문에 이들은 마을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불태우고, 남자들의 손목과 발목을 자르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죽였다. 아이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어린이들을 잡아다가 남자아이들은 소년병으로 여자아이들은 전장 성노예로 전락시켰다.


딱딱한 코코넛 껍질을 단숨에 벗길 수 있을 만큼 강한 칼로 손목과 발목을 잘리면 그 사람은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소년병이 된 아이들에게는 힘이 나는 약이라며 마약을 주어 이들을 다스린다. 고향 마을에 불을 지르고 그 인근에서 살인과 강간을 저지르게 시켜, 아이들이 이후에도 돌아갈 곳이 없게 만든다. 여자아이들은 자기들을 강간하고 때리고 칼로 찌르는, 매일 새롭게 가해자가 되는 가해자들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해야 한다.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살아남는 건 순전히 각자의 몫이었다.


그래도 친절한 손길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두막에 이스마엘과 친구들을 데려다 놓고 물과 음식을 가져다준 사람도 있었고, 먹을 것을 내어준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러나 도움을 베푼 어른들의 이름을 묻는 이스마엘에게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다. 굳이 이름을 알 필요가 없다고, 무사하려면 모르는 편이 낫다고 대답할 뿐이다. 전쟁은, 특히 내전은 그렇게 친절한 이웃의 얼굴마저 익명성에 가둔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더욱 지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지방색이 약간 있을 뿐 서로 소통에 어려움이 없을 만큼 같은 언어를 쓰는 이들이 총부리를 겨눌 때에는 피아 식별이 너무나 어렵다. 전선이 쉬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 민간인은 얼마나 무력해지는가. 그런 내전 3년이면 나라를 죄 헝클어 놓는데, 시에라리온 내전은 10년이 넘게 이어졌다.


민간인의 지옥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회의가 열리고 선거가 진행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세계 곳곳의 보석상에는 다이아몬드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평화 협정, UN 평화유지군, 반군 무장해제 같은 단어들이 시에라리온 현대사에도 속속 등장했다. 그 끝에 2002년, “내전 완전 종식”이 공식적으로 선포되기는 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돌아온 소년병과 여자아이들에게 일상을 돌려주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종식은 온전한 끝이 아니라 끝의 시작일 뿐이다.


이스마엘은 반군이 아니라 정부군에 속하기는 했지만,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소년병들은 자기 입장을 정하고 참전한 게 아니다. 10대 소년을 보면 잡아다 일원으로 만드는 어른들 아래 살았을 뿐이다. 참혹한 전장에서 너무 많은 시체를 보고 너무 많은 피를 흘렸으며 그게 아무렇지 않아질 만큼 무뎌진 마음은 어느 진영에나 있다. 이스마엘은 반군이 될지 정부군이 될지, 손목을 잘릴지 그렇지 않을지조차 랜덤인 세상을 살았다. 러시안룰렛이 사방에서 팽팽 돌아가는 세상을.


험한 꼴을 보고 나면 소년들은 울지 않으려고 웃었다고 한다. 죽지 않으려고 지옥을 버텼다. 버티면서 많이 죽였다. 이스마엘 또래의 소년들은 전쟁의 가해자 탈을 쓴 피해자였고,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이 이중적 지위는 그들의 일상 복귀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스마엘 또래 소녀들에게는 더욱 어렵다. 이들 다수는 살아남지도 못했으므로, 피해자라는 말조차 그들에겐 요원했다. 다이아몬드를 노린 러시안룰렛은 모두를 쏘아붙였는데, 그 돈은 대체 누구 주머니로 들어갔을까.



이스마엘은 결국 그 세상에서 “구조”되어 기관으로 들어갔지만 그의 마음은 쉬이 전장을 떠날 수 없었다. 이스마엘을 비롯한 아이들은 기관에서도 정부군 반군 출신을 갈라 싸웠고, 마약 금단 현상에 시달렸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라는 유네스코 헌장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너무 멀리 있는 듯 느껴지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포기해선 안 된다. 이스마엘 본인은 말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한 치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걸어가야 했던 여행길에서 아버지의 말을 생각했다고. “살아 있는 한 더 나은 날이 오고 좋은 날이 생길 거라는 희망이 있단다. 더 이상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을 잃게 되면, 그때 죽는 거야.” 그 말을 원동력 삼아 이스마엘은 포기하지 않았고, 살아남아 이제는 과거를 회상하며 우뚝 서 있다.


그렇게 그는 선례가 되었다. 책을 여러 권 썼고 유니세프 대사로 목소리도 부지런히 내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 일원으로 일상을 살고 있다. 앞으로 그의 삶이 어떠할지 알 수 없으나 현재까지 그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희망봉이다. 저기까지 이르면, 도움받기도 어렵던 상황에서 살아남아 도움을 받은 자가 도움을 주는 자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 비록 한 번 생긴 상처가 없던 일처럼 되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흉터는 따라다니겠지만... 적어도 한 아이를 전장에 혼자 버려두지 않는다면 아이의 마음속에서도 서서히 전쟁이 끝나리라는 희망이다.


이스마엘을 전장으로 내몬 것도 어른들의 손이었고, 그런 이스마엘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며 아이를 일상으로 다시 데려온 것도 어른들의 손이었다. 전장의 소년병이 집으로 가는 길은 우리 모두가 함께 평화로 가는 길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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