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 돌아보기
여행은 가기 전에 계획할 때도 설레고, 여행지에 있는 시간도 즐겁다. 거기에다가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묘미는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끼는 기분 좋은 피로와 마침내 도착한 집의 안락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쉴 곳이 없었다. 4월 말에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이사를 했는데, 이사할 건물에 일단 임시로 테트리스 하듯 짐을 잘 박아만 놓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뿔뿔이 흩어진 탓이었다. 즉 안락함이고 뭐고 오자마자 짐을 풀고 집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럴 거라는 걸 알고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될 거라고 아는 것과 직접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
여행하는 중간중간에도 델리라든지 바라나시라든지 엄청 덥긴 했지만, 원래는 무지 더운 지역이라는 아이들의 고향에 내내 촉촉한 보슬비가 내렸던 이유로 더위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아오자마자 만난 남인도 내륙의 어마어마한 더위는 끔찍했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는 말은 얼마나 사실적인 수사인가 생각했다. 물건을 어디에 수납할 것인가 머리를 굴리고 회의를 하고 낑낑대며 짐을 나르고 풀고 하는 뻑적지근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아이들이 왔다. 오자마자 아이들 사이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단연 디디들의 동네 방문. 어떤 아이들은 자기 집에 안 왔다고 화를 냈다. 보통 같으면 화 내지 말라고 타이를 텐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는 꼭 갈게,라고 약속할 수 없어서 더 미안했다.
아이들도 보고 현지인 목사님도 다시 뵈어 마음이야 반가웠지만, 아직 정돈되지 않은 집에서 20여 명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집 정리를 해나가는 일이 수월치는 않았다. 차라리 아이들이 학교라도 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날이 너무 더워서 개학이 전국적으로 열흘 가량 미뤄지는 정부 조치가 있었다. 교육청이랑 멱살 잡고 싸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전에 막연하게 홈스쿨링도 나쁘지 않겠지,라고 홈스쿨링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 본 바 있던 나는 극성 홈스쿨링 반대론자가 되었다. 아이는 학교를 가야 한다.
두 달을 2년처럼 살았다,라는 게 모두가 입을 모아 한 말이었다. 어느 정도 정돈될 만 하니 오래 같이 지내며 의지해왔던 한국인 스태프들이 하나씩 돌아갈 때가 되어 있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있었고 감사하게도 내게 정말 좋은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사람들, 여행도 같이 다니고 오만 경험을 다 같이 하면서 하루 24시간 떨어질 틈 없이 함께하면서도 서로 감정 상하는 싸움 같은 건 하나도 안 해본 좋은 사람들, 서로의 차이와 개성을 인정하고 사랑하면서 서로 조금씩 맞아 들어갔던 고마운 사람들이 그것도 2주 간격으로 한 번에 우수수 떠난다는 건 받아들이기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한편으론 감사했다. 이 아쉬운 마음이 쉽지는 않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여태까지 그만큼 좋은 사람들과 지냈다는 뜻이다. 떠나길 기다리며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상황보다야 낫다. 또 아이들과 같은 시선으로 떠나는 사람을 바라보게 되는 것도 감사한 점이었다. 나는 계속 여기 있는데 상대방은 가고, 그렇게 왔다가 가고 왔다가 가고 하는 이들을 보며 아이들이 느꼈을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었다.
많이 걱정했는데 정작 사람들이 떠난 지금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다. 크고 작은 수많은 일들이 참 감사하다.
사실 쉽지는 않다. 전혀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기 시작하자니 또 새로 적응할 것 투성이다. 사람들이랑 의사 전달이 잘못되어 꼬일 때도 있고, 때로는 차이 때문에 서로의 말과 마음이 이해되지 않아 싸운 적도 있다. 하루 종일 움직이면서 청소 설거지 간식 만들기 바느질 숙제 도와주기 등등에 꼬박 시달리다 보면 몸이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한편 에이즈 환자들과는 아직도 안부를 묻는 이상의 대화를 제대로 못한다. 현지 말과 아이들 동네 말이 다르고, 평상시에는 영어를 쓰니 딱히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초반에나 귀엽게 봐 주는 거지, 1년을 있었는데 말을 못 하냐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성격도 일 처리 실력도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에서도- 나는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군, 하며 씁쓸해하는 날이 무진장 많다.
어느 하루는 오전 내 이어진 회의 내내 꾸역꾸역 스트레스가 쌓였다. 아주 작은 디테일에 발목이 잡혀 진척 없는 회의가 계속되었고, 그 내내 도마에 놓인 생선의 심정을 느낀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지지부진하던 회의는 점심 먹고 하자고 잠깐 끊겼다.
그 사이 화장실 핑계를 대고 방에 들어가 엉엉 울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나와서, 남들 걱정 사지 않으려고 억지로 척척 삼킨 점심은 당연히 얹혔다. 불편한 속을 달랠 겨를도 없이 또 회의가 이어졌고, 회의를 마치고 남들이 숨 좀 돌릴 때 나는 급하게 가방만 챙겨 들고 나와 HIV/AIDS 사업장 결연 아동 집을 순회해야 했다. 결연 초기였기 때문에 방문해서 인터뷰해야 할 것이 많아, 하필 그 날 따라 저녁까지 일정이 빽빽했다.
한 집 들어갈 때마다 주시는 커피며 차이... 찾아오는 이 없는 집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들이 손님을 맞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 찻잔을 건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호의를 거절하는 것처럼 보이느니 차라리 속이 문드러지고 말지, 하고 호기롭게 다 때려부었다. 명치 끝에서 느껴지는 체기는 갈수록 무거워졌다. 늘 갖고 다니는 가방 속 구급 상자에 소화제가 있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부대끼는 속을 끌어안고 마지막 한 집까지 방문을 마쳤을 때는 이미 온통 어둠이 깔린 저녁 시간이었다. 동네 한쪽에 차를 대 둔 곳까지 천천히 걸어가면서, 그제야 제대로 숨 쉬는 기분이 들었다.
때마침 눈에 들어온 건 동네 어귀에 모여 있는,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었다. 적당히 시끌벅적한 그 모습이 한가로워 보였다. 가로등, 그 아래 노는 아이들, 몰려 앉아 껄껄 웃다가 나를 힐끗힐끗 보는 동네 청년들...을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이렇게 느긋하게 걷는 게 얼마만인지?
고등학교 때 친구랑 독서실 갔다가 산책 핑계로 노닥거리며 걷던 것, 대학생 때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뭐 할 때마다 열심히 준비하고 친구들이 자취 집까지 데려다 줘서 같이 걷던 것... 그때 느껴지던, 저녁과 새벽 특유의 어슴푸레하고도 시린 공기가 생각났다. 눈앞의 가로등을 본다. 난시라서 더 뿌옇게 따스해 보이는 불빛이 내 작은 기억들을 비추고, 갑자기 내가 얼마나 동동거리고 있는지 비춰주었다.
괜찮아. 속상하고 짜증 나고 눈물 터지는 하루였지만, 온통 죄다 실패처럼 느껴진 하루지만, 오히려 그러니까 더더욱 이런 여유를 좀 갖고 천천히 걷자.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독거리며 사업장 건물로 돌아갔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늦은 저녁 상을 차려 놓고 나를 맞아준 현지인 간사 언니였다. “수고했어 오늘도”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고된 하루를 이해하고 품어 주는 눈길로 나를 맞아준 언니. 그 표정을 본 순간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울컥했다.
그 표정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고3 때 야자 끝나고 돌아오면 보던 엄마 표정 같아서. 얼마나 수고 많았냐고 묻는 다정한 눈, 눈물로 터뜨린 짜증을 고이 도닥거려 주던 손길과, 배보다 허했던 마음을 채워 주던 엄마표 찌개 밥상.
그 시간이, 또 엄마 모습이 마음에 노란 빛으로 따스하게 떠올라서, 잔뜩 체했음에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저녁을 먹었다. 시금치 달(렌틸 콩) 요리, 누가 봐도 전형적인 인도 가정식인데 왜 한국에서 먹는 집 밥처럼 느껴졌는지 모를 일이다. 더부룩한 속도 좀 가라앉는 것 같은 이유도 모를 일이다.
인도 온 이래 요즘이 제일 힘든 것 같다. 그런데 이 말은 몇 달 주기로 끊임없이 갱신되어 왔다. 잘 생각해 보면 그때도 시시때때로 울고, 괴로워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건 잘 기억나지 않고 그냥 다 뭉뚱그려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몇 달 후면 지금도 그런 시간으로 남을 것 같다. 분명 힘들었지만 귀한 걸 배운 좋은 시간이었어, 하고.
당연히 속은 상하지. 그렇지만 너무 나를 몰아세우지 않기로 했다. 한 번도 함께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과 발을 맞추어 걷는 게 한 순간에 뚝딱 될 리가 없다. 그들이 나를 오해하기도 하듯 나도 그들을 이해 못 하고 있을 것이고. 한 번도 내가 가져본 적 없는 성품들,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 없는 것들이 갑자기 내 안에 짠 나타난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니까.
생각해 보면 제로에서 시작했으니 지금부터 하나씩 이렇게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워야 하는 게 당연한 건데 내가 나에게 너무 나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우리 엄마가 자주 쓰는 말마따나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일일 것이다.
나는 절대 지금 배우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괜찮아.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해하지 말고 조금은 천천히 걷자. 중요한 가치들이고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지. 그러나 나라는 사람 또한 중요하다. 누군가가 밥상 차려 놓고 기다리는 소중한 딸이니까. 누군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나 자신을, 나도 조금은 더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내일은 부디 바람이 안 불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