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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Feb 18. 2021

꺼내야만 하는 순간

웨이브 오리지널 <러브씬넘버#> 29세 편


  세상은 점점 다채로워져 가고, 연애와 사랑도 다양한 모양새를 띤다. 자연히 드라마 속 사랑 이야기도 제각기 다른 온도를 보인다. 실장님에서 본부장님 정도로만 변주되던 재벌과 신데렐라 구도가 아득해진 지 오래다. 그래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우리를 떠나는 날은 오지 않을 테니까, 멜로 드라마의 기본 문법만큼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런데 옴니버스 드라마 <러브씬넘버#>의 시놉시스는 유독 신선했다. 손을 맞잡은 여성과 남성 한 쌍이 아니라 스물세 살, 스물아홉 살, 서른다섯 살, 마흔두 살 네 명의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점도, 다자 연애(폴리아모리)나 결혼 전의 우울(메리지 블루)처럼 보통의 멜로 드라마에 비해 파격적인 소재를 사용한 점도. 놀랍게도 공중파 방영이다.


  23살 두아(김보라) 편과 42세 청경(박진희) 편은 MBC에서 방영되고, 35세 반야(화영) 편과 29세 하람(심은우) 편은 웨이브에서 히든 에피소드로 독점 공개된다. 웨이브에서 전편 선공개 예정인 2021년 첫 오리지널 드라마라는 점에서도 눈길이 간다. 29세 편을 맡은 심은우는 <부부의 세계>에서 단단한 눈빛에 온갖 감정을 담아냈던 배우로 기억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눈에 쓸쓸하고 막막한 심경을 고스란히 담아 보여준다.


  평생 조용하고 유순하게만 자라온 29세 하람(심은우)은, 순하게 큰 아이들이 사고 치면 크게 친다는 통념 그대로, 결혼식장에서 도망치는 대형 사고를 친다. 결혼에 크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정석(한준우)은 침대를 고를 때 그의 말처럼 “난 다 좋아요.”라고 말하는 듯한, 무난해 보이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적당한 마음을 사랑이라 불러도 될까.



  고민하는 하람 자신만 빼고 온 세상은 다 사랑하는 것 같다. 탱고를 배우다 만난 연하 애인과 함께 있는 엄마만 봐도 그렇다. 이혼하고 자신을 혼자 길러온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늘 앞서지만, 이 상황은 혼란스럽다. 그러다 우연히 타인의 열정적인 애정행각까지 목격하면서, 하람은 그 동안 정석과 주고받은 몸과 마음의 행위를 되돌아보게 된다. 아직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는데 결혼식 날이 밝았고, ‘버진 로드’를 걷기 직전 하람은 그 자리를 뛰쳐나온다.


  결혼을 앞두고 ‘이게 정말 맞는 길일까’ 고민하게 되는 마음은 대강 짐작이 간다. 삶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 결정 전에는 당연히 선택을 되짚어보는 마음이 생기니까. 그러나 ‘메리지 블루’라는 말 뒤에는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색깔의 감정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람은 복잡한 마음을 양파처럼 한 겹 한 겹 뜯어보기 시작한다.


  하람에게 정말 싫었던 건, 패턴화된 성생활뿐이 아니라 “난 다 좋아요”의 태도였는지 모른다. 사랑이라기엔 의무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그런 사랑은 받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게다가 미묘하게 동족 혐오이기도 하다. 엄마가 지나가듯 했던 말과 사회적 통념을 나침반 삼아 직업을 택하고 적금을 붓고 이제 결혼을 앞둔 하람 또한 “난 다 좋아요.”로 일관해온 셈이니까.


  ‘애빌린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다. 서로를 배려하다가 결국 아무도 원치 않은 결말을 맺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 장인이 멀리 떨어진 애빌린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다. 아내가 재빨리 동의하고, 남편도 동조한다. 장모도 가본 지 오래되었다며 동의해서, 넷은 차를 타고 애빌린까지 먼 길을 떠난다.


  후에 이들은 외식이 모두에게 내키지 않는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장인은 식구들이 지루해 보여서, 아내는 남편을 배려해서, 남편은 처가 식구들 말에 반대하고 싶지 않아서, 장모는 셋 다 가자는데 어쩔 수 없어서 가겠다고 한 것이었다. 더운 날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결과는 정반대가 된 것이다.



  어쩌면 배려라는 이름으로 하람의 등 뒤에만 있던 정석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원망을 꾹 누르고 엄마의 등 뒤에만 있던 하람도 그런 역설에 갇혔는지 모른다. 그래도 하람은 이 역설을 박차고 나선다. 영화 <졸업>에서처럼 웨딩드레스를 휘날리며 식장을 나서는 순간이 그랬다. 차이가 있다면 다른 사랑이 아니라 더욱 주체적인 자신의 삶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 그 길 끝에는 사랑도 있는 것이다. 하람은 그렇게 엄마를, 정석을, 자신을 직면한다.


  마주볼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멀찍한 데서 밋밋한 면을 적당히 보는 게 아니라 가까이에서 울퉁불퉁한 장단점을 발견해가는 것. 오토바이의 존재도 요리 실력도, 나누지 않았던 서로의 내밀한 욕망도. 결국 마음 속 깊이 묻어둔 문제를 꺼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애빌린의 역설 바깥으로 나온 인물들은 이해의 빛을 띤다. 그제야 좋은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갖고 있는 좋은 마음들이 보인다. 이 드라마에는 원색 비난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감수성으로 눈을 찌푸리게 하는 인물이 없다. 너그러운 인물들 덕분에 우리는 결국 평소 몰이해로 바라보는 사람들조차 실은 모두 이해가 필요한, 솔직한 마음으로 만나야 할 상대임을 깨닫게 된다. 사랑은, 삶은 그런 씬 넘버들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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