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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Sep 28. 2015

부유하는 우리를 위하여

적극적이고 당당한 헤맴의 시간


  2년 중 1년 반이 지났다. 이제 슬슬 이야기를 맺을 때가 가까워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있다. 1년 반만에 잠시 한국에 다니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한국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다시 인도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다시 인도로 돌아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청소를 하고 일기를 쓰고 멍하니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 모든 순간마다, 또 지금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 헤어짐을 준비해야 한다. 떠나기 전 내 빈자리를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외롭기도 괴롭기도 하다.


  그래서 더 글을 쓰기가 어려웠는지 모른다. 언제나 외부로, 다른 사람들로 향해 있던 시선이 자꾸 내 안으로 엉켜드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또 그 감정뿐이라 그 모습을 제하면 할 말이 없다. 노트를 펴 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몇번이나 쓰려다 말고 쓰려다 말던 움직임을, 조금 더 단호하게 다잡아 본다. 짐작조차 할 수 없던 생의 공간들이 눈앞에 드러난 곳, 나의 인도를 마지막까지 잘 소개할 수 있도록. 끝날 때까진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이 도시가 내게 준 교훈을 생각하면서.


  신기하게도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어렵지 않게 기승전결의 진행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매일 걷던 길, 어제와 마찬가지로 벚꽃 잎이 흩날리는 같은 풍경인데도 아 이제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고 더 이상 봄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처럼. 그렇게 기에서 승으로, 승에서 전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알 수 있었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을 보듯 무심하게 넘겨왔던 그 변화를 문득 예민하게 느낀 것은 전에서 결로 넘어와, 결의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을 잠시 떠나 한국을 방문하고 있을 때 찾아왔다.


한국을 방문한 건 5월이었다. 여름을 피해 봄으로 날아간 셈이다.

  한국에서의 시간은 누군가 미리 재단이라도 해 둔 것처럼 반듯하게 짜여 있었다. 사실 그저 정신 없이 구르다 보니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흘러간 한 달이었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그런 느낌이었다는 얘기다.


  만나야 했던 사람들, 만날 수 있을까 걱정했던 사람들 그리고 만날 거라고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두루 만나며 초반, 중반, 후반 제각기 다른 흐름으로 고이 시작되고 흘러가고 맺어졌다.


  지금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앞으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었다. 인도에서 지내면서 잊고 살던 나라는 사람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공항에서도 집으로 들어가는 아빠 차 안에서도 아무렇지 않았다가 내 방에 들어간 순간 모든 게 너무 낯설어서 놀랐으니까.


  20년을 살아온 내 방이 이렇게 낯설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긴긴 밤 내내 시차를 핑계로 오래 된 편지와 일기들을 읽어보며 나를 찾아 헤매는 내 자신이 새삼 놀라웠다.


  인도에 있는 나와 한국에 있는 나의 위치란 너무 달라서, 마치 우주의 무중력 상태에 익숙해졌다가 지구로 돌아와 중력을 가만가만 느껴 보는 우주비행사처럼, 낯설고도 낯익은 기분과 마주해야 했다. 그건 스스로의 작음을 갑작스럽게 깨달아 버린, 부끄러움에서 시작했다.



  친구를 만나고 다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합정 역을 지나 당산 역으로 가는 길. 언제나 좋아했던 한강 물빛이 보인다. 날이 흐린 탓에 반짝이지는 않았지만, 한때 삶에 위로가 된 것들이란 언제 어떻게 다시 보아도 보통은 곱기 마련이니까.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한 아이가 “와 바다다!”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천진한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작은 미소가 번졌다. 아이는 크고 많은 물이란 바다, 라고 익혔을 것이다. 저 아이가 바다를 보면 몇 번이나 보았을까. 어쩌면 한 번도 본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겐 크게 흘러 가는 물이라면 다 바다일 것이다.


  어린 시절 대부분 비 오는 운동장 한 구석에 흐르는 작은 도랑에 나뭇잎을 띄워 보내며 장화 신은 발을 도도히 피해 지나가는 물줄기를 지켜보는 일을 했을 것이다. 그때 그 물줄기가 그 어린 눈에 넓고 거친 강으로 비치는 일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하여 아이가 외치는 와 바다다, 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왜였을까.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그 짧은 탄성이 왜 그렇게 내 머릿속에 경종을 울렸을까. 오래 전 혹은 얼마 전의 내 말들 같아서일까. 이 게 그것일 거야, 이거야말로 그거지, 하고... 작은 삶의 체험들로, 그 조각들로 전체를 정의 내리려 애쓰던 나의 서툶 같아서.


  그 또한 성장의 한 단계이고, 자연한 흐름임을 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그동안 한참 부끄러워하며 성장통을 치르는 사람들답게, 보다 덜 명확하고 더 두루뭉실하며 더 자신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 짧은 시간 더 적은 말수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흐린 오후였다. 우리 마음에 낀 먹구름은 조금씩 풀어지는 이야기로 녹는 대신, 서로의 형태를 더듬더듬 확인했다. 어느 선명한 답 하나 없는 질문들이 서로를 어루만졌다.


  20대 중반. 어리다기엔 어른이고 어른이라기엔 너무 어린 우리는 자신이 없다. 이제 무엇을 보아도 당당하게 와 바다다, 외치지 못한다. 각자의 서툶을 깨닫고, 머나먼 갈 길을 굽어보다가 기가 꺾인 탓이었다. 정의 내리기엔 너무 길고 먼 것들이라고, 말이 삶을 앞서는 것만큼 부끄러운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 지난 날 자신 있게 말하고 외치던 스스로가 부끄러운 탓이었다. 그러나 외치지 않을 수 없음도 알기에 어떤 딜레마에 봉착해 버린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대화였다.


  우리는 여전히 부유한다. 의미 있고 적극적인 헤맴이라 한들 헤맴이 아닌 것은 아니기에. 한심하고 한량 같아 보일는지, 혹은 책상물림 같아 보일는지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 헤맴이지만, 답 내릴 수 없지만, 같은 템포로 걸어가는 서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좋아서 또 웃으며, 선명하고 궁극적인 것을 위해 흐릿하고 성실한 일상을 살고 있다.


  이것은 결론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과정 중에 있으며 언젠가 나는 또 이 글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온전하지 못한 나의 성장이 부끄러워서 걸음을 멈출 필요는 없겠지. 그때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뻔뻔하게 다시 또, 여전히 나는 과정 중에 살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살고 있다는 것이 포기하지 않은 결과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되어 줄 수도 있구나.


흐린 오후는 날이 개는 일 없이 저물어 버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다른 친구가 선물로 준 에코백에는 힌디로 '꿈'이란 단어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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