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강인함을 지켜주는 일
한참 달린 차는 색색의 빨래가 빼곡하게 널려 있는 골목 앞에 선다. 이 근처까지는 자주 오곤 했는데 이 동네는 처음 보는 곳이다. 이 근처에 부촌과 번화가가 지천인데... 이 골목은 어째 영 분위기가 다르다.
골목 어귀에 있는 힌두교 사원 앞에 차를 대고 내린다. 소 한 마리가 좁은 골목을 기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기이하다 생각한다. 그 틈바구니에서 아주머니 한 명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낯선 외국인을 쳐다 본다. 죄 지은 것도 없건만 시선을 피해 서둘러 현지인 간사들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간다.
모처럼의 공휴일이어서 집집마다 밀린 빨래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빨래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도 되는 걸까. 골목길 구석구석으로 물이 흥건하다.
그 와중에도 작은 천막 아래 코끼리 얼굴을 한 신상이 앉아 있고, 그 앞에 동네 꼬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코끼리의 지혜로 장애를 극복하기에 사업이나 공부를 도와준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 가네쉬는 인기가 좋은 신이다. 끝물이 되었음에도 가네쉬 축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다.
아이들을 지나, 빨갛고 파란 사리와 속옷과 아기 배내옷까지 걸려 있는 골목을 지나, 질퍽한 물웅덩이를 지나, 계속해서 미로처럼 모퉁이를 꺾어 가며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들어갈수록 작아지는 골목길, 그중에서도 끝 집이 우리가 찾아간 U 아주머니의 집이었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집 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던 풍채 좋은 아저씨가 황급히 일어나며 우리 현지인 간사를 알아보고 정중히 인사를 한다. 허허 웃는 그 얼굴은 선거철 정치인의 얼굴처럼 정제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에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아마 그런 빤들빤들한 처세의 얼굴은 사실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HIV/AIDS 사업장 특성상 사람들의 가장 깊은 마음을 나누는 일이 많아 대체로 정직한 얼굴 표정을 보아 온 편이다. 숨이 죽어 가는 얼굴이나 반가워하는 얼굴은 보았어도, 그렇게 “대외용”이라는 느낌을 주는 얼굴을 여기서는 많이 보지 못했다.
특이하다는 생각 정도는 했던 것 같지만 뭐 별 일은 아니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런 사람도 있는 거지. 그때만 해도 그 아저씨가 아마 U 아주머니의 남편 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좁은 방 한쪽을 메운 침대 위의 한 남자였다. 체구만 보면 깡마른 소년 같은데 그 얼굴은 한참 어른이어서 위화감이 든다. 사실 내가 놀란 이유는 그보다도 남자의 허리에서부터 철창 틀로 이어져 있는 자색 끈이었다. 남자는 묶여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입에서 떨어지는 침을 보며 곧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가난한 집, 일을 나가야 하는 어머니. 제 나이로 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맑은 아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U 아주머니와 그 아들, 딸을 소개받는다. 침대에 앉아 있는 아들은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친다. 뜻밖의 손님이 기분 좋은 모양이다.
아들이 아직 뱃속에 있던 시절, 아이 아버지는 술과 폭력이 예삿일인 사람이었다. U 아주머니가 배를 맞은 적도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그때 결핵에 걸려 계속 약도 먹었다고 한다. 아마 그 두 가지가 이유가 아닐까 추측한다고… 현지인 간사는 말끝을 흐린다. 이야기는 넘어간다.
딸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타향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흔적은 이 집에 없다. 아이들 외할아버지가 계시고 삼촌 둘에 이모 하나가 있는데 그 중 삼촌 한 명 빼고는 다들 이 집에서 나가라고 성화란다. 동네 창피하니 어디론가 멀리 떠나든지 하라며. 같이 살지도 않는 사람들이 뭐가 그리 창피할까. 어쩌면 그냥 집을 노리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잔혹한 또 대담한 추측이지만 사실 그런 일은 흔했다.
해사한 얼굴의 딸아이는 올해로 열다섯, 피어나는 봄 꽃 같은 나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깔깔거리며 현지인 간사와 편안하게 이야기를 했다는데 한동안 못 보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자기 어릴 때 이야기가 나오자 수줍은 듯 눈을 지그시 내린 채 웃는다. 그러나 그 표정에는 장난스러운 기색이 묻어 있어 나이답게 귀여웠다.
딸아이는 곧 차이를 끓이러 일어나고, U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은 가만히 관찰을 한다. 낮고 작게 하나씩 말하는 목소리는 더없이 차분한데 이상했다. 나는 그 이상함이 마치 앙금 같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기분이 드는 게 차분함이 아니라,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느낌을 주는 차분함이었다.
U 아주머니는 외국인의 관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해야 할 말이 너무나 많다. 주섬주섬 처방전 한 장과 알약 한 줄을 내밀어 보여준다. 현지인 간사가 클리닉에서 약국 일도 보고 상담도 하고 하기 때문에 가정 방문을 하다 보면 자주 보는 모습이었다만, 오늘은 알약이 단 하나뿐이어서 그게 의아스러웠다.
보통은 빈혈 약, 종합 비타민, 진통제, 간 약 등 기본으로 4-5가지 깔고 거기서부터 기침하는 사람은 기침 약, 열이 있는 사람은 해열제, 하는 식으로 추가되는 게 일반적이다. 6개월에 걸친 클리닉 약국 막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저건 뭔가 다른 약이었다.
현지인 간사는 처방전을 한참 들여다 보더니 내게 내밀어 주었다. “네가 읽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과 함께. 처방전은 유난히 구불거리는 글씨가 많아 잘 못 읽는데… 자신 없어하면서 받아 든 처방전에는 뜻밖에도 정갈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일주일 전 상담을 통해 적었을 처방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약 3년 정도 지속적으로 강간당함
비명을 지르거나 발작을 일으킴
- 피해 상황이 떠오를 때,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과 마주칠 때
아침에 5회, 밤에 2회 증상 발현
병력: 발작
(금번 클리닉에서 발작 일으켰을 때: 의식 있었음, 혀를 깨물지 않았음, 팔다리 움직임 없었음)
일주일 후 재상담
그리고 알약 한 종류가 처방되어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말끔한 글씨였지만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한 글자씩 더듬는 심정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U 아주머니의 가라앉은 눈빛을 앞에 두고, 현지인 간사는 조심스럽게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대략 3년쯤 전, 지금은 침대에 묶여 있는 아들이 더 어리고 체구가 작았을 무렵, U 아주머니는 늘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녔다. 두 아이를 건사하며 먼길을 오가기엔 힘이 들었으므로 아직 11살이었던 딸은 집에 남았다.
그리고 마뜩잖아 한다면서도 꼭 뻔질나게 드나들며 이것저것 가져간다는 외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제 손녀에게 너무 끔찍한 폭력을 휘둘렀다. 이윽고 삼촌도 그 범죄에 가담했다.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제 어머니에겐 그저 기숙 학교 같은 곳으로 보내달라고만 졸랐다. U 아주머니는 단순한 아이의 칭얼거림이라고 생각했고, 제법 끈질긴 아이의 요청에 1년 전에야 아이를 기숙 학교로 보냈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 경영하는 여학생 전용 기숙 학교였다.
1년 후. 당시 클리닉에서도 비상이 걸렸다고 우리 현지인 간사는 기억해 냈다. 해당 기숙 학교에 있던 여학생들의 어머니를 통해서 밝혀졌다. 그 나이 지긋한 양반이 아이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행해 왔다는 사실이.
여학생‘들’이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 내내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뒤늦게 추가된 몇 마디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공부를 할 때도 아이는 청소를 해야 했고, 교장이 보기에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아이에겐 매가 쏟아졌다고.
클리닉에서는 TF팀을 꾸려 고발 절차를 밟아 나갔고 기숙 학교는 문을 닫았다. 기숙 학교 교장은 해외 어디론가 도망쳤다고 한다. 그 아내와 딸도 알고 있었다던 후안무치한 범죄는 그렇게 졸렬한 가해자의 도망으로 끝이 났다. 적어도 세상에서는.
아이는 계속되는 발작으로 인해 학교를 1년 쉬기로 했다. 책도 공책도 다 기숙 학교에 두고 도망치듯 나온 탓에 아이는 마땅히 할 게 아무것도 없이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색색의 리본으로 머리를 묶고 교복을 단정히 입고 학교를 가는 골목의 소녀들을 보며 멍하니 부러워한다고도 했다. 좋은 책이라도 몇 권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가 내미는 차이를 받아 든다.
3년, 아이보다 10년을 더 산 내게도 결코 짧은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그 긴긴 세월 동안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아이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감히 그런 더러운 것들이 다 깨뜨릴 수 없을 만큼 아이는, 그냥 아이였다. 할 말을 더 찾지 못하고 아이가 끓여 준 차이를 마셔 본다. 유난히 따뜻하고 달아 맛있는 차이에, 나는 할 말을 더더욱 찾지 못한다.
집을 나선다. 문 앞의 빈 플라스틱 의자를 내려다 본다.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고 허둥지둥 일어났던, 오늘은 물을 뜨러 이 집에 왔다던- 얼핏 호인으로 보일 법한 인상으로도 다 숨길 수 없는 위화감이 들던 그 빤빤한 얼굴을 다시 생각해 본다. 아이 외할아버지.
가해자가 여전히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불편하다. 악마를 보았다, 보지도 않은 영화 제목을 한 번 생각해 보며 들어간 골목을 돌고 돌아 나온다. 괴로움이 깊이를 더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마음도 미어지지만 그 슬픔이 민망할 때가 있다. 같이 울어야 하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들에게 이미 적응된 삶이라 덤덤하게 풀어놓는 이야기 앞에 울기가 민망한 순간이 있다. 경우마다 다르고 정답은 없겠지만 내 경우는 좀 그랬다.
그래서 울지 않으려고, 적어도 앞에서는 감정을 추스르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끔찍한 일이라는 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걸 이유로 내가 울고불고 하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
듣는 것만으로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이야기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아이는 무너지지 않았으니까. 아이의 강함을 동정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당한 일은 제3자인 나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 만큼 어둡지만, 그 어두움이 아이를 절망하게 할 수 없음을 바라고 꿈꾸고, 그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을 상상하며 부단히 애 쓰는 게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