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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Oct 17. 2015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기대와 불안의 이중주 안에서

  내가 에이즈 사업장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B의 집이다. 처음 단기 봉사 팀으로 왔을 때, 꼭 근현대사 교과서에 나올 것 같은 움막집에 오도카니 앉아 있던 작은 과부. 7년 간의 결혼 생활을 ‘hell’이라는 한 단어로 응축해버리고 지금 여기서 더 바라는 게 없다고 가만히 웃던 여자.


  내 기억 속에 그를 밀어내던 집 주인의 우악스러운 손길은 거친 크로키로, 그 와중에도 그저 웃으며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던 여자는 나직하고 옅은 필치로 그려져 다.


  다시 이곳에 와서도 B와는 자주 만났다. 그 후로 B는 골목의 작은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다. 움막집을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리고 다른 환자들 가정을 방문하느라 B의 집에 한 동안 못 가다가 오랜만에 만나기라도 하면, 날 잊어버린 거냐면서 왜 요즘 통 오질 않냐면서 손을 붙잡고 한참 아줌마 화법의 수다가 터져 나오곤 했다. 잊어버릴 리가 있냐고 웃으면 그제야 같이 웃으면서 손을 놔 주었다. B는 정말 내게 특별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B를 만나러 간다고 해서 살짝 들떴다. 하지만 평소보다 더 들뜬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B의 재혼 자리를 알아보러 가는 자리라고 했다. HIV/AIDS 양성 환자들만 모이는 곳에서 가끔 의도치 않게 중매 결혼은 물론 연애 결혼까지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오래전부터 클리닉에 다니던 남자 분이 혼처를 알아본다는 말에 건너 건너 우리 현지인 간사가 B를 소개해 주게 된 거였다.


  이미 남자 쪽 가족들이 한 번 B의 집에 왔다 갔고, 그 날은 B가 남자의 집을 방문하려고 하는데 B의 형제들이 영 협조를 해 주지 않아 마지못해 우리가 다 같이 나선 거였다.


  사실 우리 현지인 간사는 끈덕지게 그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중에 증인을 서고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하는 것도 그들이었고, 어떻든 남인 우리가 법적으로 끝까지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현지인 간사는 B가 축복받는 결혼을 하길 원했다. B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얼마든지 재혼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잖아? 내게 묻지만 실은 내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던 불만스러운 한 마디. 그 얼굴에는 형제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형제들은 여태까지 연락이 없다. 알아서 살든지 말든지 관심 없다며, 그 여자 삶에 끼고 싶지 않다며 발을 뺐다. 씁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B의 상견례 자리에 B를 혼자 앉혀둘 수는 없어, 아쉬운 대로 현지인 간사들 모두와 나까지 가게 됐다. 그렇게라도 B를 향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픈 마음이었다.


  차에 타고 가는 내내 왁자지껄 우리는 신이 났다. 알아듣는 말보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현저히 많은 외국어지만, 깔깔 웃는 소리를 들으며 뭣도 모르고 신나게 같이 웃었다. 덜컹거리며 가는 내내 우린 무척이나 행복에 들떠 있었고, 덕분에 남자의 집이 꽤나 멀었음에도 가는 동안 지루한 줄을 몰랐다.


  집 근처에 가서 정확한 위치를 묻기 위해 우리 간사가 남자와 통화를 할 때쯤에야, 천천히 실감이 나는 듯 조금씩 긴장하는 B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10년쯤 전에 다니던 시장 골목처럼 생긴 길이다. 그 길을 벗어나니 비교적 한적한 주택가가 나온다. 그중 낡은 4층짜리 아파트 제일 위층에 남자의 집이 있었다. 혼자 사는 집답게 단출하고 작은 방에서 남자의 어머니와 형수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좁은 방에 열 명도 넘는 사람이 옹기종기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나야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니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이 낯선 듯했다. 여태까지의 모습이 무색하리만큼 분위기는 유연하지 못했다. 이윽고 우리 현지인 간사 한 명이 포문을 열었고, 남자 쪽에서는 형수가 차분하면서도 야무지게 이야기를 받았다.



  나중에 현지인 간사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사실 그는 그 때 조금 불쾌했다고 한다. 진작 잡아 둔 약속인데 남자의 아버지도 형도 나타나지 않은 그 자리 자체가, 또 대화에서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작은 감정들이, B를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은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그때 그의 머릿속에 있던 생각이고,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함은 물론 그런 눈치조차 느끼질 못했다. 하필 또 침대 안쪽 구석에 앉게 되어 방 전체를 보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았다. 긴장이 뒤섞인 두 남녀의 얼굴. 허공을 보는 것 같지만 시선 끝에 B를 살짝 걸쳐 둔 남자의 얼굴과, 알게 모르게 남자를 힐끗 보고는 눈을 내리깔고 입술 끝을 살짝 깨무는 B의 얼굴을. 그렇게 은근슬쩍 서로를 바라보는 속눈썹 끝에 걸려 있는, 기대와 불안이 적절히 뒤섞인 가벼운 긴장을.



  한 번의 실패에서 우리는 불안을 끄집어내고, 그럼에도 시작을 다시 해보는 용기에서 우리는 기대를 잡아 든다. 여전히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두 사람이지만 사실 꼭 행복해질 거란 보장 같은 건 없다. 실제로 그렇게 재혼을 하고서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훌쩍훌쩍 우는 아줌마들 손을 잡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시작이 주는 긴장감 안에서 그런 모습까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라면 불안과 기대의 이중주는 늘 함께 울려 퍼진다. 어디까지가 불안이고 어디서부터가 기대인지 그 색을 딱 잘라 구분할 수 없어도, 그 둘은 긴장이라는 이름 안에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그건 나쁘지만은 않다.


  둘이 잘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서로 죽고 못 살아도 알 수 없는 게 사람 사이의 일인데 무슨. 하지만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딛는 지금 자체가 의미 있다. 두 사람의 얼굴에 가볍게 실린 긴장감 자체가, 두 사람에겐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처음 결혼할 때 그 결혼이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 이렇게 다시 시작하게 될지 예측하지 못했듯, 지금 끝을 말하긴 이르다. 어디서 어떻게 끝나든 이미 두 사람 안에서 무언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멀리 갈 길이 있다.


그리고 그 길에 희망도 있다. 행복에 대해서라면 무한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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