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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Oct 21. 2015

끝의 끝, 떠남의 미학

어깨에 질 수 있는 만큼만 들 것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생각하며 하루 한 장씩 부지런히 담은 아이들의 아침 등교 풍경.

  인도의 10월은 숨 가쁘게 지나간다. 아이들 시험 기간 2주, 다사라 연휴 2주. 이제 좀 숨 돌릴 만 하면 10월이 어느 새 등 뒤에 있고 11월의 축제 디왈리가 찾아온다.


  올해는 조금 달랐다. 올해는, 숨 돌릴 만 하면 10월이 아니라 나의 인도가 통째로 내 등 뒤에 있고 새로운 출발이 찾아올 거였다. 부유하는 기분이 들어 옛 일기장을 들춰 본다. 방울방울 떠오르는 당시 마음과 생각을 읽으며 새삼스레 코끝이 찡하다.


  있는 힘껏 애쓰며 헤쳐 나가는 것과, 흘러가는 섭리 가운데 겸허히 거하는 것이 씨실과 날실처럼 짜여 들어간 시간. 그렇게 어느덧 시간의 마디가 꺾이고 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또 얼마나 달라져 갈까.


바람 한 점 없는 날 연날리기에 꽂힐 건 뭐람. 사서 고생해도 즐거운 우리 아이들.
유치원 갓 나온 꾸러기의 셈법이란 이래야 제맛. 저래뵈도 제법 곧잘 답을 찾는다.
일 하고 있으면 낼름 와서 이것저것 참견을 한다. 제 이름을 한글로 어떻게 쓰냐고 몇 번 묻더니 자판에서 제 이름을 찾아 쓰는 녀석도 있다. 이러다 한글을 먼저 배울지도 몰라...
우리 모두 같이, 너의 생일을 축하해.


  시원 섭섭 곱하기 백. 떠나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 오면 그렇게 대답했다.

  어떨 때는 괜찮을 것도 같다. 돌아가서 펼쳐질 다음이 기대되고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뇌리에 가득 차올라 ‘시원 섭섭’ 중에서 ‘시원’이 더 큼직하게 눈에 들어오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생각보다는 꽤 많다.


  그럼에도 내가 곧 떠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누나는 멍청이야” 하면서 나를 보는 아이 표정 하나에 무너진다. 내가 떠난다고 말하기 전부터 내가 곧 떠날 거라는 걸 피부로 느낀 녀석이 전에 없이 옆에 붙어 있으려고 할 때, 고작 3박 4일 캠프를 가서도 굳이 캠프 간사를 들들 볶아 전화를 해서는 “내일 누나 동생 보러 여길 와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을 때.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걸 알아서 "그래, 갈게.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하면 또 나보고 멍청이라고 하는데 그 건방진 단어 선택 앞에 왜 울컥하게 되고 하나도 안 괜찮은 것만 같은지.


  아이 하나만 생각해도 그냥 털썩 주저앉고 싶은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래도 떠나야 한다는 걸 안다. 이미 작별은 몇 주 전 시작되었다. 작별은 짧을수록 좋지 길어봤자 지지부진 더 힘들기만 한데, 하고 생각하는 내겐 너무 잔인하게도… 몇 주에 걸쳐 토막토막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지지난 일요일. 내겐 마지막으로 가는 HIV/AIDS 결연 아동 식량 배분 행사였다. 원래는 보통 셋째 주 일요일에 하는데 긴긴 연휴에 사람들이 시골 친척집에 가면 다 같이 모이기는 힘들 것 같아서 날짜를 당겼다. 여유 있게 한 장씩 편지를 쓰고 선물을 포장해 나눠 주려다가, 그 모든 걸 이틀 안에 해야 했다.


  마지막 날까지 마치지 못해 결국 새벽 세 시까지 앉아, 나중엔 내가 글씨를 제대로 쓰고 있긴 한 건지, 이렇게 날림으로 쓰는 편지가 과연 의미는 있는지 회의적인 마음으로 부리나케 마쳤다. 다음 날 피곤한 얼굴이 푸석했지만 일찍 눈이 떠졌다. 소풍 날 아침 같은 기분으로.


  한 번쯤은 꼭 사주고 싶었던 간식까지 사 들고 가니 아이들 반 정도가 이미 와 있었다. 대부분 먼 길을 오는 걸 감안하면 빨리 온 편이었다.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얼굴들이 환하다. 이번 달부터 신규 결연 아동들까지 추가되는 바람에 인원이 갑자기 대폭 늘어,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이길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더욱 길었다.


  우리 간사들은 다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을 두어 가지 준비하여 아이들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대단할 거 없는 간단한 게임인데 아이들이 순수한 건지 그냥 분위기 자체가 들떠서 인지 다들 즐겁게 한다. 때문에 보는 사람들까지 행복해지는, 웃음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시간이었다.


  한참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 현지인 간사가 앞에 섰다. 오늘이 써니가 여기 함께 있는 마지막 식량 분배 행사니까, 우리 모두 써니와 인사를 하자고. 덕분에 앞에 불려 나갔다. 미리 언질 받은 것도, 뭐라 말하겠다고 준비한 것도 없었지만 사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 뚜렷하게 그려지던 이야기가 있었다. 꼭, 들려주고 싶었다.


  나는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소박을 맞고,  대물림되어야 했던 상처에 대해서. 가정을 버리고 나와 그런 할머니를 만난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할아버지가 물려준 병이 내게 있다는 이야기도 꺼낸다.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는 사소한 피부병. 남들의 손발에는 나보다 한 겹 더 지방이 덮여 있다는데 내겐 그게 없어서 손발 피부가 붉고 벗겨진다.


  처음 본 사람들은 ‘아니 이렇게 어린 학생이 주부 습진이에요? 일을 많이 했나?’ 하고 묻기도 하지만, 그래서 주부 습진이란 무엇인가 궁금해한 적도 있지만... 주부 습진은 그네들이 보기에 그나마 가장 비슷한 것을 끄집어낸 이름일 뿐 뭐 별로 비슷하지는 않았다. 나는 남들보다 손끝이 여물지 못해 병이나 캔을 잘 따지 못하는 편인데, 그게 이 병 때문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데다가 늘 ‘이거 따 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으므로 딱히 이 병으로 인해 불편한 건 없었다.


  어릴 땐 있었다. 틀린 것과 다른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유치원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틀린 것처럼 소외되었다. 그 후로 아주 오래 나는 자신이 내향적이라고 믿고 좁게 벽을 친 채로 살았다. 나를 아껴 주는 마음으로 살갑게 던져지는 질문도, 좁은 벽 안에는 고이 들어오지 못했다.


  누군가 걱정을 하며 혀를 끌끌 차는 순간,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시선이 내 손으로 다가왔으므로 나는 별로 그런 걱정 같은 거 듣고 싶지 않았다. 손이 왜 그러니?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다.


  누군가 다정하게 물어 올 때면 아 사실 제가요, 하고 설명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20년쯤 하려니까 귀찮아져서 나중에는 내 빨간 손을 보고‘밖이 아주 추운가 보네, 얼른 이리 와서 손 녹여라’하면 ‘네, 추워요’ 하고 앉았다.


  아주 어린 시절에 갖게 되어 버린 거절의 인상으로 인해, 아주 오랫동안 모든 것을 거절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늘 홀로인 듯 외로움에 허덕였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날 사랑해줘도 그걸 받아들여 누리지 못한 거였다는 걸,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신기하게도 깨달음과 동시에 많은 벽이 허물어졌다. ‘이 사람 내가 싫은데 그냥 억지로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벌컥벌컥 올라오던 불안한 질문도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아무렇지  않아,라고 말하고선- 이미 위로받은 어린 시절의 내게서 눈을 들어 이제 내 앞에 앉아있는 올망졸망한 눈동자들을 보았다.


  엄마를 책임져야만 할 것 같은, 그래서 상처와 상처가 맞붙는 현장에서 더 치열하게 상대방을 내리누르고 엄마를 높여야만 할 것 같은 내 어린 날의 치기를 기억한다. 비슷한 마음으로 엄마에 대한 책임감을 안고 눈물을 삼키는 어린 눈동자를 본다.


  내, 가 아닌 내 안의 어떤 조각, 을 이유로 소외되었던 어린 날의 서러움을 기억한다. 다른 조각으로 비슷하게 소외당하고 이제 다음 발걸음을 떼는 두려움이 서린 눈동자를 본다.


  더없이 강한 사랑을 받고, 그 덕분에 건강해진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내가  사랑받고 이제 괜찮듯, 너희 삶도 그럴 거라고. 지금 상처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그런 말은 누구도 할 수 없겠지만… 지금 상처가 언젠가 훗날 아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바라본다. 어떤 눈동자에는 눈물이 서렸고, 어떤 눈동자는 말없이 자신을 속눈썹 아래 감추고 있다.


  나의 어제와 그들의 오늘, 나의 오늘과 그들의 미래를 가로지르는 교차점을 본다. 전보다 더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어머니가 있고, 그런 줄은 몰랐다면서 내 손을 잡아 오는 아버지가 있다. 오늘이 마지막인 줄 몰랐다고 당혹스러워하는 눈이 있고, 알았음에도 눈물이 흘러 한참 진정하지 못하는 눈이 있다. 그런 건 잘 모르고 마냥 해맑게, 마치 내일 또 볼 것처럼 써니 디디 안녕- 웃으며 인사를 하는 눈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 아픈 건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우는 어머니들이었다. 고맙다고, 연신 고맙다고 말하다가 지난 시간들을 세어 보며 눈물짓는 얼굴. 내가 떠난다는 것이 슬프다기보다는 그동안의 힘든 마음이 한이 되어 터져 나온 그 눈물 앞에 마음이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힘껏 손을 잡고, 끌어안고, 이 작은 표현이나마 마음 깊은 곳까지 닿기를 바라는 게 내겐 최선이었다.


  우리는 헤어지지만, ‘우리’로 묶어 부르며 눈동자를 마주치는 건 여기서 끝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끝은 아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동화에 살고 있는 게 아니니까. 해가 지고 바람이 불 듯 계속해서 즐거운 일도 어려운 일도 찾아올 테지.


  더 오랜 시간 여기 함께 서 있을 수 없지만, 마음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이어져 있을 것이다. 기술 좋은 세상이니 마음뿐 아니라 통화도, 영상 통화도 할 수 있고 서로의 사진을 주고받을 수도 있으며 여기 있는 친구에게 계좌로 돈을 부쳐 간식도 사 줄 수 있으리라. 열심히 살다가 기회가 닿는다면 내가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얼굴 보러 올 수도 있겠지. 우리의 대화는, 우리의 눈 맞춤은 그렇게 끝이 났다.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그림자만큼이나 묵직하게 드리워진다. 미처 그 앞에선 다 표현하고 토해낼 수 없던 감정의 뭉치를 어떻게든 풀어줘야 하루를 마치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일기장 앞에 앉아도 보고 혼자 걸어도 보고 달디 단 케이크도 먹어보고 친구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도 보았는데, 도무지 괜찮아지지 않는다.


  이윽고 이유를 깨닫는다. 또 다른 이별이, 또 다른 작별인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마치 시험이 끝났는데 일주일 후 시험이 또 있는 사람처럼. 계속 연이어 일주일을 공부하기엔 너무 지치지만 그렇다고 놀기엔 공부 분량이 너무 많아 마음이 편치 않은 그런 사람처럼. 늘어진 작별은 내가 가라앉는 이유지만 또 아주 잠시 후면 내가 그리워할 순간이 될 거라는 걸 알기에 더더욱.



  끝의 끝에 섰다. 끝의 시작에서 나는 어떤 결심을 했던가? 나를 잘 빼놓고 여밀 수 있도록 인수인계 잘 하며 마무리하기, 가장 좋은 것만 두고 가고픈 이 곳에 어떤 덕목으로 남아야 할지 고민하기. 그리고 이제 끝의 끝에서 나는 짐을 싼다.


  짐 몇 번 싸고 풀기를 반복한 지난 몇 년만으로도 쉬이 터득한, 그러나 실천이 영 잘 되지 않는 ‘어깨에 질 수 있을 만큼만, 내가 나를 수 있을 만큼만 들고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떠남의 미학을 기억한다. 일은 마무리해 두었고, 나의 마음은 이곳에 남겼다. 너를 집어 든다. 내 안에 깊은 눈동자로 남은 ‘사람’을 하나씩 갈무리해 든다. 나를 내려놓고 너를 품는 것, 그게 내가 들 수 있는 유일한 무게였다.


  얼추 2년 정도. 그동안 나도 변했고 내가 돌아갈 곳도 변했다. 그리고 내게 남은 건 사람이다. 얽히고설킨 연리지 같은 관계고 사랑이다. 매 순간 그 힘을 보고 배우는 시간이었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그것이었다. 우리는 사랑 받음으로써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사랑함으로써 삶을 이어 갈 힘을 얻는다고. 그러니 더욱 사랑하자, 사랑받자고. 나를,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우리를.


  그 작은 기적 하나 품고 간다면,  마음속에만 품고 한 번 실천하지 못했던 떠남의 미학에 제법 걸 맞는 산뜻한 끝이 아닐까. 사실 산뜻한 이별 같은 건 없지만, 나는 또 울겠지만- 괜찮다. 같은 하늘 아래 있음이 행복했고, 삶은 계속될 테니.


  재회의 날이 오지 않는다 한들 내겐 믿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울면서도 갈길은 가야 하니까. 먼지가 나부끼고 태양이 작열하는 이 땅은 곧 꿈처럼 내게 닫힐 테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그 10월의 마지막 밤처럼 나는 곧 차갑고 고요하게 고국 땅을 밟을 것이다.


어느 여름날 아이들이 한 아름 따와서는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던, 그런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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