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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Dec 10. 2015

누구 마음에나 한 마리쯤

영화: 들개 (2014, 김정훈 감독)

* 스포일러 주의!! 그냥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내용을 요약하니,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




  원래 나는 심장 쫄깃한 스릴러 같은 건 잘 못 본다. 사포 소리 날 것 같은 거친 필치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귀신 나오는 영화처럼 현실감이 동떨어지는 영화는 그냥 지나치고 말지만, 그게 서늘한 현실을 눈 앞에 들이대는 경우에는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매우 극심한 피로를 느끼면서 보곤 한다.


  판타지를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판타지라도 현실을 얼마나 서늘하게 담을 수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이유로 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볼 때면 한숨부터 쉬고 시작하곤 한다.) 이 영화도 첫인상은 그런 느낌으로 피로했다. 들개라는 거친 제목,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 독립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두 주연 배우의 이름. 내겐 한숨 쉬면서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좀 마음에 여유 있고 편안하게 쉬는 날에 보겠다고 뒤로 슬쩍 미뤄 둘 영화였다.


  그러나 입덕을 결심하고 그 필모그래피를 훑기로 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걸... 사실 나는 두 배우 다 좋아한다, 다른 의미로. 변요한은 인도에서 한창 외롭고 힘들 때 미생의 한석율로 내게 위로가 된 배우였고, 그 후로 꼬박꼬박 챙겨보는 배우다. (저는 공식 팬카페 회원입니다...) 박정민의 경우 이 영화를 볼 때까지 사실 연기를 본 적은 없었다. <파수꾼>도 아직 못 봤을 때였으니.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응답하라1988에 나오는 보라의 똥차  구 남친을 스치듯 보긴 했지만... 못 본 걸로 치자. 3분 출연했는데 울엄마의 첫 평가가 '저런 나쁜 놈'이었으니 그건 빼고- 박정민이라는 배우를 나는 글로만 접했다.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언희(言喜)라는 필명으로 그가 어떤 잡지에 매달 연재한 글을 몇 개 읽었다. 솔직히 내가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호감보다는 질투였다. 하드보일드까진 아니더라도 가볍게 툭툭 뱉는 듯한 말투인데 유쾌하면서 세련된 느낌, 내가 제일 동경하는 바인데 그의 글이 딱 그랬다. 무슨 잡지인지도 모르는 그 잡지를 정기 구독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그의 책이 나왔으므로 이제 그런 고민은 하지 않는다!)


  인생의 롤 모델을 물으면 빨간 머리 앤이라고 대답하는 나지만, 그 옆에는 '착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깔려 있었다. 다시 말해 나도 마음에  미친개 하나 키우는 사람이라는 거다. 정규 중등 교육 과정을 착실히 이수하면서 얼굴 아래 차곡차곡 눌러 놓은 미친개는 가끔 짧은 성깔을 못 이기고 튀어나오곤 하는데, 그 미친개가 이 영화를 보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것도 격하게. 광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정확히 말하면 아직 영상이 나오기도 전부터 정구는 얻어터진다. 교사에게 구타에 가까운, 아니 구타를 당한 후 또 일어선 그가 하는 말. "선생님 그래도 제 말이 맞잖아요." 당돌한 놈이다. 그리고 그는 또 얻어터진다.


  주변 친구들의 표정은 안타까움보다는 공포와 '저 새끼 왜 저래'가 적절히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날 퇴근하기 위해 차에 오른 교사는 똑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시계 초침 소리 같은 그 소리에 의아해하며 손목시계에도 귀를 대어 보지만, 몇 초 후 폭탄이 터진다.


  그리고 정구는 고등학생이 아닌, 대학 교수 조교가 되어 다시 등장한다. 그래도 제 말이 옳다고 따박따박 대답하던 소년을 꾹 눌러 숨긴 채, 소극적이고 표현이 없이 사회에 적응하려 하지만 영 못 한다. 자기 옷이 아닌 '따까리' 라이프는 쉽지 않다. 나이에 비해 늦게 들어온 데다가 일처리도 빠릿하지 않은 그를 대놓고 경멸하는 동료도 부담스럽고, 양말주 만들어 먹이고 능글능글 웃으며 한 마디씩 훅을 농담처럼 날리는 교수는 더 부담스럽다. 미친 사이코패스라고 욕하면서 보고 넘기면 그만인 인물이 아니라,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평균치의 부담스러움일 뿐이다. 그래서 더 싫은 거지만. 구도 싫겠지,그래선지 조교실을 비우면서 열심히 면접을 보지만 아직까지 좋은 소식은 없다.



  그러는 한편으로 그는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려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 사제 폭탄을 보낸다. 따박따박 대답하던 소년이 바짝 눌리는 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저를 풀어놓고 있었다. <생산자>라는 이름 하나 적힌 박스를 택배로 보낸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진짜 보내주시나요?' 하는 메일이 그의 핸드폰으로 부지런히 날아든다.


  그러나 그 메일을 본 건 정구가 아니라 친구였다. 고등학교 때 예의 그 사건 이후 잡혀서 소년원에 가게 되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친구의 실수가 있었던 듯하다. 때문에 정구를 집에 받아 주었지만 갈등은 계속되고... 정구는 결국 친구의 집을 나와 차에서 생활하면서 계속해서 폭탄을 만들고 보내는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그를 보게 된다. 교내 방송이 시끄럽다고 스피커를 잘라 버리는 모습이 첫인상이었다. 기물 파손을 하면 어떡하냐고 으름장을 놓으며 학번과 이름을 묻는 조교 앞에서 당당하게 새로 부임한 교수라는 거짓말까지 한다. 심지어 정구의 담당 교수의 수업에서는 수업 주제 자체에 대놓고 태클을 걸고, '세상 참 좋아졌죠?' 하며 가까스로 화를 참는 교수 말을 딱 끊고 '아직 한참 좋아져야겠는데요. 교수님 같은 분이 강단에 서 계시고.'라는 말을 던질 줄도 아는, 미친개다.


  그러나 학적부에 검색해 보면 이미  제적당한 학생으로 나오는 효민, 도서관에서 창문으로 책을 휙 던지고 나가서 그걸 주워 가는 범상치 않은 효민을, 정구는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보낸다. <생산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박스, 폭탄 설명서와 폭탄이 들어 있는 박스를.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사는 어머니에게서 택배를 받아 든 효민은 반신반의하면서 택배 트럭에 박스를 던져 폭발 사고를 일으킨다. 면접장에서 그 뉴스를 본 정구는 면접도 제쳐놓고 허겁지겁 뛰어나오는 반면, 효민은 여유만만이다. 애당초 정구보다 한 수 위인 놈이다.제가 저지른 주제에 천연덕스럽게 목격자 진술을 하는 것은 물론 보상을 받아낼 수 있냐고 형사에게 묻기까지 한다. (나중의 대사를 보면, 많이 받았다고 한다. ㅋㅋㅋ)


  효민은 경찰서에 전화를 하고 홍대 한복판에서 난리를 치면서 생산자의 정체를 찾아내고, 두 사람은 이내 의기투합한다. 두 사람을 묶어주는 코드는 하나다. 기성세대 아래로는 도무지 쉬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



  생산자와 집행자.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완벽해 보이는 조합이다. 만들기는 하지만 직접 던질 실행력까지는 없이 조교실에 앉아 있는 정구와, 그런 정구를 답답해하며 불만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효민. 같이 비료를 훔치고, 포장마차에서 같이 식사를 한다. 효민은 사고 하나 제대로 칠 작정이 되어 있는 놈이다. 지문까지 지워 놓고, 방 벽에는 '모든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낙서가 삐뚤빼뚤 적혀 있는 그야말로 중2병 들개.


  언제 세상에서 사라져도 사라지지만 그냥 호락호락 사라져 주지는 않겠다는 느낌이 훅 읽힌다. 그런 효민을 보면서 정구 내면에 짜부라져 있던 '그래도 제가 옳잖아요'의 소년은 카타르시스라도 느끼지 않았을까. 후반부를 생각해 보면 저 웃음은 실로 아름답다.



  억지로 눌러 놓은 사람과 언제든지 터뜨릴 준비가 된 사람.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그리며 같이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효민은 그런 정구가 답답하고, 정구 속에 있는 들개의 존재를 알고 있기에 '애완견인 척하지 마라'며 그 들개를 끄집어내려 한다.


  정구는 효민이 여기까지만 해 주면 좋겠다. 그러나 효민은 조교실 문을 서슴없이 두드리고,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계속해서 정구를 옥죄어 온다. 그 와중에 오 형사가 찾아온다. 자기를 소년원에 넣었던 그 사람이다, 정구에겐 너무나 피하고 싶은 사람이다. 부담스럽다. 정구는 도망갈 길을 찾는 토끼처럼 뛴다. 허겁지겁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땅을 파고 묻는다. 만들어 두었던 다음 폭탄을.



  이전에 택배 트럭 폭발 사건 때 정구에게 "전문가로서 소견이 어떤가?" 하고 비릿한 웃음을 지었던 교수는 궁금해하는 조교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얘 예전에 폭탄 만들어서 소년원 갔다 왔잖아, 하고. 그러나 정구가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어 했던 그 과거가, 모두에게 까발려진다. 대자보가 붙어 있다. 사진과 학번, 이름까지 적힌 대자보. 그리고 교수 이름으로 문자가 온다. [정구 유명해져서 좋겠네? 그동안 즐거웠다. ㅋㅋ 내일부터 안 나와도 돼.] 정구 안의 들개는 폭발한다.



  묻어 뒀던 폭탄을 꺼내 교수의 차 아래 설치한 순간 발소리가 들린다. 정구가 아직 차 아래 있는 걸 모른 채로 교수는 차를 몰고 가고, 정구는 그 뒤를 밟으면서 폭탄을 터뜨릴 타이밍을 찾는다. 그러던 중 교수에게서 오는 전화. 덜덜 떨며 받은 전화에서 교수는 오늘 내내 나가 있다가 이제야 그 대자보 사건을 알게 됐다고, 뭐 옛날 일을 갖고 그러냐 애들이, 덤덤히 말하고는 내일 보자고 한다. 이제 아셨다고요? 얼떨떨해하던 정구는 이내 퍼즐을 맞추듯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한다. 어떻게든 정구가 교수를 죽이고 들개를 끄집어내길 바라던 효민의 작품이었다.


  정구는 분노하고,  두 사람의 파트너십도 결별의 수순을 밟는 것처럼 보인다. 효민은 군대에 갈 예정이었고 정구도 안심했는데, 안심한 그때 익숙한 택배 박스 안의 쪽지 한 장으로 단숨에 다시 나타난 효민. (아, 무슨 설명이 삼류 치정 복수극 설명하는 거 같다..) 너 군대 간 거 아니었어? 하며 당황스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정구에게 폭탄을 터뜨리길 종용한다. 끝, 을 종용해 온다.



  결국 폭탄 스위치를 눌렀을 때, 그토록 지긋지긋했던 오 형사가 쓰러지는 걸 정구의 두 눈으로 본다. 효민은 다음으로 넘어가려 하지만 정구는 거기까지였다. 미리 준비해 왔던 스패너를 꺼내 효민을 치고, 피투성이가 된 효민을 자기가 폭탄 만들던 장소로 옮겨 마지막 처리를 준비하는 정구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건 외려 피로감이다. 여기까지 같이 온 정구가 자기를 죽인다는 데 배신감이 들 법도 한데, 효민은 마지막까지 정구를 개새끼야가 아닌  형...이라고 부른다.


  시작부터 나는 효민의 '형'이란 호칭이 굉장히 귀에 탁탁 걸렸는데, 세상 천지에 다 막 가자고 살게 생긴 놈이 말끝마다 꼬박꼬박 형, 형 하는 것이- 이 영화에 어울리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만 사랑스러워서였다.


  이 영화는 정구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 라인이기 때문에 효민 더 궁금해진다. 엄마를 향한 효민의 태도도 그렇지만, 오 형사에게 집에 가서 애를 돌보시라고 훈계하는 건 그냥 건들거리는 말로 들리지 않고 슬피 들린다. 애가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그 말은 효민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만약 효민이라는 캐릭터가 다섯 살 때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분명 밝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 좀 장난기는 많지만 악의는 없는 적극적이고 사랑스러운 아이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효민의 결말을 보면서는 답지 않게 좀 슬펐다.


  그러나 정작 폭탄을 터뜨려 그 효민의 결말을 직접 맺어 준 정구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건 더 깊은 피로감이다. 나중에 감독의 인터뷰를 읽어 보니 감독도 처음에는 슬픈 감정을 생각하다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기실 그렇다. 이만큼 왔으면 정구가 효민의 결말에 대해 슬퍼할 여유는 없어야 자연스러우니까. 많이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은 톤으로 밀었다는데 그게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여운을 길게 남겼다. 정작 배우 변요한은 촬영 끝나고 집에 가서 여동생과 딸기우유 먹는 생각을 멍하니 했다고 한다. 마치 고된 하루를 마치고 멍 때리며 지옥철에 오르는 직장인의 얼굴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 사회에서는 평범해져 버린 무게의 피로감.




  결국 백 교수를 통해 정구는 취업이 되고, 자기 다음 타자를 위해 폭탄주에 넣을 백 교수의 양말을 직접 꾹 짠다. 그의 좌우명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다소 시니컬한 걸로 바뀌어 있고, (그전에는 '내 마음의 주인이 되자'였다.) 안경과 양복으로 대변되는 단정한 차림을 하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새삼스럽게 여태까지 100분 동안 봐온 얼굴이 낯설어 보이면서, 영화는 끝난다.


  지하철, 그 너머 보이는 한강. 이 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들개들이 자신을 눌러 놓고 살고 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만큼은 내 안의 미친개가 신나게 달리고 있지만 이 글을 맺기 무섭게 나 또한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평범한 20대 여성으로서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에 출근하고, 편의점을 나오며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든 생각은 들개라는 제목이 얼마나 강력한 한 방인가,였다. 이 영화는 들개라는 제목에 딱 들어맞으니까. 설령 다른 제목이었더라도 사람들의 리뷰에서 심심찮게 들개라는 단어를 볼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제목은 내 머릿속에서 보더콜리라는 개로 구체화되었다. 유기견들이 들개가 되어서는 고양이 한 마리를 공놀이 하듯 괴롭히다가 죽여 버리는, 언젠가 뉴스에 나온 CCTV 영상도 생각났다.


  금 안에 있으면 양치기 개고 금 밖에 있으면 들개인 것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그다지 낯선 개념이 아니다. 보더콜리, 다른 애완견들 사이에서 유독 덩치가 커져 가는 자신을 놓고 자타가 난감해하다가 결국 이빨을 드러내며  뛰쳐나가다가 사살당한 놈과, 양치기 개가 되어 집안에 머무르는 놈. 그러나 그 양치기 개가 밤에 몰래 양을 죽인다 한들 누가 알랴.


  정구가 사제 폭탄 제조를 멈췄는지는 알 수 없으나, 멈췄다 한들 정구 안의 그 입바른 소년이 사라졌다고 보긴 힘들지 않을까. 글쎄, 만약 정구가 계속해서 그렇게 소년을 찌그러트리며 나이를 먹다가 백 교수쯤의 연배가 되고 그런 위치에 오른다면, 그때는 그 소년의 흔적을 찾기 힘들겠지만 상관없다. 그때의 정구는 이미 정구가 아니라 또 다른 백 교수가 되어 있을 지 모르니까. 또 어떤 정구가, 어떤 효민이, 그 근처에서 조소를 날리고 있을 것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영화다. 폭탄이 터지는 영화라고 해서 사실 이 정도로 생각할 게 많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자마자 감독이 누군지 너무 궁금했다. 현실을 다른 도구에 서늘하게 담아내는 힘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나, 세계 유일의 열차나, 이 영화의 폭탄 같이 말도 안 돼 보이는 소재에 담길 때 현실은 더 현실의 빛을 선명히 드러낸다.


  사제 폭탄이라면 진부해지기도 참 쉬운 소재인데, 폭탄이라는 소재와 들개라는 제목이 그 자체로 시대를 담아 대변하는 걸 보았다. 배우들이 극을 끌고 가는 힘도 얼마나 좋은지 팽팽했다. 표정 하나, 눈빛 하나에 담아내는 감정들... 분노, 불안, 그조차도 초월해 버린 공허함까지. 소름 끼쳐하며 보았다. 박수 받기 마땅한 연기력이다.


  영화를 보고 든 생각 또 하나. 이 영화 대체 왜 청소년 관람불가인가? 나는 또 청불이라고 해서 되~게 잔인한 장면 많이 나오고 그런 줄 알고 긴장했잖아. 하지만 어쩐지 10대에게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세계기기는 하다. 관객과의 대화 내용을 보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학교는 죽었다'가 있었다. 대학으로 가는 계단 취급받은 지 오래인 고등학교, 이제 취업으로 가는 관문 취급에 익숙해져 가는 대학교 입장에서 확실히 돌아볼 여지가 있는 말이다.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 사회에 보편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교육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맞고, 거기서 학문을 꿈꾸면서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부르는 꿈에 젖은 장소가 대학교여야 맞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옛 골동품 같은 생각이고 이상이다. 이상에 대한 '어떻게'의 방책이 학교에 놓여 있나? 별로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중에 인터뷰와 관객과의 대화 질답을  찾아보았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감독이 박정민이란 배우를 눈 여겨 보다가 효민 역에 캐스팅했을 때 정작 그는 정구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변요한을 캐스팅한 후, '변요한이라면...' 하면서 수긍해서 지금의 캐스팅이 되었단다. 그런데 실제 배우들의 성격은 정반대라고 한다. 인생에서 들개였던 순간을 물었을 때 나온 대답이 고스란히 보여 준다.


Q. 인생에서 들개였던 순간?
A. 감독- 운전대를 잡을 때
     박정민- 기숙사 학교를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뛰쳐나가 집에 전화를 하지 않았던 때
     변요한- 항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박정민의 대답과 비슷한 수위겠지만 나는 저런 대답이 진짜 너무 좋다. 삶에 미친개 하나씩은 길러줘야 인간미가 있다.


  운전대를 잡을 때 들개가 되었다던 감독은 정구나 효민처럼 사회에 잘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이 많아, 아직 계획은 없지만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또 그런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한다. 차기작도 기대가 된다. 앞으로도 찾아보게 될 것 같은 감독, 믿고 보는 배우들이다. 앞으로 이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섞여 들어, 어떤 말을 골라 뱉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사는 요즘의 나이기에- 더더욱 기대가 된다. 내 안의  미친개가 만족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확신에 가깝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감독 인터뷰 원출처-

http://www.artpluscn.or.kr/NextPlus_webzine/107/NextPlus_webzine_107_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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