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크리스마스 미장센

영화 <나 홀로 집에> 리뷰

by 선이정

DIRECTOR. 크리스 콜럼버스

CAST. 맥컬리 컬킨, 조 페시, 다니엘 스턴, 존 허드, 캐서린 오하라 외

SYNOPSIS.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카고. 말썽꾸러기라 집안 가족들로부터 욕을 듣고 따돌림 당하는 케빈은 늘 자신은 혼자 살거라면서 가족들이 모두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치즈 피자를 먹은 형과 싸워 소동을 일으키자 엄마는 케빈을 3층 다락방으로 올려보낸다. 케빈의 가족들과 케빈의 집에 온 손님들은 다음 날에 크리스마스 연휴를 이용해 프랑스의 친척 집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그날 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전화선과 전기선이 끊긴다. 케빈의 가족들은 늦잠을 자게 되어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허둥대다가 그만 3층 다락방에서 잠이 든 케빈을 두고 떠난다. 잠에서 깬 케빈은 혼자 남은 것을 알고 하느님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기뻐한다. 비행기를 타고 가던 케빈의 어머니는 무엇인가 빠뜨린 기분에 고민하다가 케빈을 두고 왔음에 놀란다. 하지만 전화선이 불통이라, 어쩔 수 없다가 프랑스에 도착한 식구들은 목적지로 가고 엄마는 케빈이 걱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표를 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연말연휴라 좌석이 없었다. 혼자 집에 남은 케빈은 형과 누나 방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트리도 만들면서 자축한다. 그런데 빈집털이 2인조 도둑이 케빈의 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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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는 크리스마스 무드를 크리스 콜럼버스에게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말 영화의 클래식 <나 홀로 집에>와, 또 다른 클래식이 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모두 크리스 콜럼버스 작품이니까. 요즘은 덜 그렇지만 나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날 집에서 케이크 먹고 이런 거 보는 게 국룰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나 홀로 집에>를 더 좋아했는데, 중간에 크리스마스 무드가 뭉클하게 들어갔을 뿐 메인 스토리는 따로 있는 해리포터와 달리, <나 홀로 집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여전히 <나 홀로 집에>를 본다. 오늘도 친구들과 모여 치즈 듬뿍 든 피자를 시켜 먹으며 코멘터리 상영회를 했다. 이제는 빙판에 넘어지고 못에 찔린 도둑의 허리 디스크나 파상풍을 걱정하고, 저거 어떻게 치우지 걱정하면서 보는 마음도 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마음들이 있다. 그게 아마 우리가 <나 홀로 집에>를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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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의 멸종위기사랑

이제는 더 이상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조차 잘 쓰지 않듯, 엄격하게 정해진 규칙도 모두를 아우르는 취향 조차도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클래식보다는 트렌드, 트렌드조차 마이크로트렌드로 쪼개지는 세상이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도 제각각이고, 영화를 본다고 해서 꼭 연말 무드의 영화를 보지도 않는다. 시내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조차 클래식보다는 제각각의 트렌드를 따라간다. 어떤 해는 앵두 전구가 유행하고, 또 어떤 해는 트리 전체에 커다란 빨간 리본을 드리운 모양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그러나 <나 홀로 집에>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라! 그야말로 클래식이다. 색색깔의 전구 (길고 지난한 단색 전구 유행의 나날들 끝에 요즘 드디어 컬러 전구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이때의 색감과는 확실히 다르다), 원색으로 반짝거리는 오너먼트 등 우리가 가장 기본적인 폼으로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모범생처럼 얌전하게 영화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야말로 클래식 크리스마스 미장센이다.


내가 어린 시절 잘 모르고 동경했던 서구 사회의 클래식이 여기에 기인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 위기 같은 건 그다지 코앞의 걱정거리가 아니었던 시대, 넘치는 부유함을 풍성하게 과시하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다. 이제 와서 헐리우드의 돈을 죄다 발라 크리스마스 미장센을 구현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이 감각을 다시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이상 우아하지 않은 서구 사회를 고려할 때, 이미 미시적인 트렌드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의 눈으로는, 시간까지 흘러 진짜 클래식이 되어 버린 <나 홀로 집에>의 미장센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내게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뭐랄까, 기후위기 시대의 멸종위기사랑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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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어 아니 혼자 있기 싫어

이 영화로 충족되는 감각은 클래식한 미장센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한때 케빈을 부러워하거나 귀여워하거나 기특해하거나 최소 한 가지 감정 이상은 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케빈이 한 모험은 그만큼 어마어마하니까. 와중에 잠옷도 꼭꼭 잘 챙겨입고 아침이 되면 깨끗하게 씻고 옷도 갈아입고 장도 보고 맥앤치즈로 (먹지는 못했지만) 저녁 상도 멋지게 차리고... 케빈은 어린 시절 꿈꾸는 두 가지를 훌륭하게 이뤄 낸다.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의 모습과, 일상을 척척 해결하는 생활인의 모습. 어린이가 갖기 쉽지 않은 이 두 가지를 케빈은 영화 내내 깜찍하게 보여준다.


이 양쪽의 열망은 결국 어린이가 언젠가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마음, 어른으로 자립하고 싶은 열망에 뿌리를 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어른이 되면 영웅은 고사하고 생활인으로서 잘 사는 것조차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되지만... 아직 그런 고단한 미래를 알기엔 당장 눈앞에 커다란 일들이 너무 많은 어린이의 눈으로 보면 케빈은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룬 대상이다.


자립하고 싶은 마음도 사람의 인지상정이지만, 동시에 홀로 배제되고 싶지 않은 마음,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 또한 사람이라면 응당 갖는 마음이다. 케빈은 이 두 가지 마음 사이를 오가며 모험을 하고 끝내 두 가지 상태의 이점을 모두 취한다. 거기서 오는 충족감과, 환하게 웃는 케빈의 얼굴은, 누구라도 내 속에 끌어안을 법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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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언제까지 <나 홀로 집에>를 볼까? 매년 꼬박꼬박 챙겨보지는 않더라도 이따금 사람들과 몰려 앉아 계절감을 누리는 감각이 좋다는 이유로 이따금 앞으로도 볼 것 같다. 잔인한 장면이 많아 안타까운 곡 소리(?)를 내려면 아무래도 같이 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클래식 없는 시대에 바라보는 머나먼 클래식,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은 현대인으로서 앞으로도 크리스마스는 케빈과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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