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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Jun 28. 2016

당신이 인도에 대해 궁금한 8가지

번외 편- Incredible India!

인도 도로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경적을 울린다.

  인도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오감에 강한 자극을 받는다. 아니 인도행 비행기에서 이미 시작된다. 강한 마살라 냄새, 여자들이 입은 화려한 색색의 사리(인도 여성 전통 의상) 자락... '아 내가 인도로 가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짜 '내가 인도에 도착했구나' 느끼는 건 보통 도로 위에서 1초에 한 번 꼴로 들려오는 경적 소리에 화들짝 놀랄 때다. 우리나라에선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울리지 않는 게 매너인지라, 사람들이 '인도는 미개한 나라야'라고 눈살을 찌푸리는 근거로 꼽히기도 한다.


  미개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뭐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치고, 데시벨로 따지자면 분명 소음공해에 속하는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경적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불쾌지수는 한결 가라앉는다. 인도 도로에서 경적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그것도 커버 범위가 아주 넓은 수단이다.


인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의 첫 장면. 주인공들이 인도 도로에 당황하는 장면인데, 트럭 뒷꽁무니에 HORN PLEASE라는 글자가 보인다.

  사실 인도 도로가 혼잡하게 느껴지는 건 순전히 경적 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자동차 종류뿐 아니라 오토릭샤, 오토바이와 스쿠터, 버팔로, 지역에 따라서는 사이클 릭샤, 낙타, 코끼리 등 다양한 생물과 무생물이 이리저리 엉켜 지나가는 공간이니까.


  게다가 동물들은 사람처럼 신호를 알아먹는 것도 아니다 보니 소가 가만히 서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거나, 가끔 정신없이 날뛰는 걸 보게 되기도 한다. 2차선 도로 위로 차와 소와 오토릭샤가 나란히 지나가고 그 사이를 오토바이가 누빈다든지, 그 와중에도 추월을 한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나는 그냥 오토릭샤를 타고 내 갈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인데, 드라마에서 교통사고 장면을 묘사할 때처럼 하이빔을 쏘는 트럭이 내게 달려오는 장면을 1인칭 시점으로 보게 될 때의 아찔함이란.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나하나 익숙해질 것이다.


  그래도 경적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들은 특히 그래서, 몇 달이 지나도 도로에서는 몸을 흠칫하곤 한다. 소리에 둔한 나는 웬만한 경적은 울리거나 말거나 그러려니 하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왜 저렇게까지 경적을 울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큰 트럭이나 덤프 뒤에는 어김없이 'HORN PLEASE'라든지 'PLEASE HONK' 같은 말이 적혀 있는데, '경적을 울려 주세요'라니 이 또한 내게는 의미 불명이었다. 내 기준에서 경적은 앞사람이 멈춰서 가지 않는다든지, 불만이 있을 때 표출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지금 자기한테 불만을 표시하라는 건가?


사진을 자세히 보다가 아저씨 뒤에 여자 분도 한 분 타고 계신 걸 보면서 생각났다. 일가족이 스쿠터 하나를 같이 타는 일도 흔하다. 4명까지는 거뜬한 것 같다.


  그러나 인도에서 사람들은 앞차가 움직이지 않을 때나 불만이 있을 때뿐 아니라, 그 어느 때든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경적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내가 이제 방향을 틀 생각인데 혹시 이 길에 사람이 있다면 들어라'는 의미로 좌회전 혹은 우회전 전에 울리는 정도의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앞 차 문이 덜 닫힌 것처럼 나와 별 상관 없는 것들까지도 경적으로 알려준다. 우리나라라면 도로에 지장이 없는 한 그냥 지나갈, 그런 일들까지 말이다.


  운전하던 사람이 경적을 울리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을 때야 나는 비로소 컬처 쇼크를 받았다. 아무 이유 없는 게 아니었어! 물론 아무 이유 없는 경적도 있다. 말하자면 경적이 울리는 게 더 자연스럽달까. 그러나 이를 무의미한 미개인들의 습관으로만 여기면 좀 곤란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오지랖 넓고 정이 많은 사람들의 표현 방법이 조금 마이웨이일 뿐.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유명한 책 제목으로 쓰인 문구이기도 하고, 한국에 인도 음식점들이 많이 보편화되면서 이제는 '인도 커리'와 우리가 먹는 카레가 다르다는 게 많이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3분 카레'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카레'의 이미지는 사실 일본에서 온 것이다. 인도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파되면서 차츰 로컬라이즈 된 결과물이다. 당연히 인도 음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강황 가루 정도?


정작 인도에서 커리를 만들 때는 강황 가루tumeric powder뿐 아니라 더 풍부하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강황 가루를 베이스로 사용하면 노란빛 커리가 되고, 토마토를 베이스로 사용하면 붉은빛 커리가 되는 등 배합의 차이가 있지만 강황 가루, 코코넛 가루, 카다멈(cardamom, 소두구라고도 하는 일종의 향신료, 씨앗처럼 생겼다.) 등 향신료가 다채롭다.


  흔히 말하는 마살라masala는 이러한 재료들을 배합한 것으로, 마트에 가면 '치킨 마살라' (치킨 커리에 사용하기 최적인 조합), '가람 마살라' (외국인에게 진입 장벽이 높은 편으로 꼽히는 마살라) 등 여러 가지 마살라를 판다. 음식에 따라서는 커리 리프curry leaf라고 부르는 잎도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인도 음식은 커리밖에 없지.'라는 말로 인도 음식을 눙치기엔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그 '커리'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토마토 커리, 알루(감자) 커리, 치킨 커리, 가지 커리 등 주 재료와 향신료 배합을 달리해 전혀 다른 음식을 만들어내는데,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단독으로 먹는 게 아니라 밥이나 로티, 차파티(chapati, 빈대떡 같이 생긴 주식)와 곁들여 먹는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밥과 곁들여 먹는다고 모든 찌개를 한 가지 음식으로 치지 않듯, 커리도 마찬가지다.


좀 진하게 만든 달 같다. 그리고 옆에 보이는 건 피클.

  그리고 진짜로 커리만 있지도 않다. 커리가 찌개 같은 느낌이라면, 구수하고 은은한 된장국 같은 느낌이 드는 요리가 '달daal'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렌틸 콩을 오래 뭉근하게 끓여내는 요리로, 이 또한 재료에 따라 다른 묽기와 점성, 다른 느낌을 얼마든지 낼 수 있다.


  처음에는 커리에 비해 밋밋하고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오래 먹을수록 정이 들기도 하고 질리지 않으며 잘 차린 가정식 같은 느낌이 들어 무척 좋았다. (지금도 커리보다는 달이 더 그립다.) 맵고 짠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경우, 여기에 피클을 곁들이면 더 좋다. 초록 망고나 레몬, 라임 등을 고춧가루와 소금 등에 절여 만드는데 장아찌 같은 느낌이다.


흰 빵 같이 생긴 이들리(idli), 도넛같이 생긴 와다(vada), 길쭉한 음식이 도사(dosa). 전형적인 남인도 아침 식사 이미지 컷이다.

  아침 식사는 또 다르다. 아침에 흰쌀밥과 커리를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사진에 보이는 건 타밀나두를 비롯한 남인도 음식들로, 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다. 짧게 툭툭 끊어 만든 소면 같이 생긴 세미야, 곡식 알갱이 같은 우푸마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아침 메뉴다. 따뜻한 음식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게 얼마나 상쾌하고 즐거운 일인지.


  이러한 식문화도 지역마다 달라서,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각 주의 이름과 그 주마다 다른 언어뿐 아니라 각 주의 의식주에 대해서도 배운다. 마치 우리 초등학교 때 울릉도의 귀틀집을 배웠듯이.


  북부에선 주로 빈대떡 같이 생긴 차파티를 주식으로 하고, 남부에서는 주로 쌀을 주식으로 한다. 인도는 그 넓이와 인구에 비례하게 음식 또한 다양하다. 인도에 커리밖에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여담을 하나 보태면, 인도는 종교상의 이유로 채식주의자인 사람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매우 생소하지만 음식마다 100% 채식인지 아닌지가 표시되어 있다. 육식성 성분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Veg라고 이야기하면서 초록색 마크를 쓰고, 육식성 성분이 들어갔으면 Non-veg라고 하여 빨간색 마크를 쓴다.


  KFC나 맥도날드 같은 곳에 가면 아예 Veg와 Non-veg조리대 자체를 분리해 놓기도 한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잘 보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Veg Restaurant이라는 글을 못 보고 들어가 치킨을 찾다간 난처해지기 십상이다. (경험담)


  설령 잘 보고 들어갔더라도 인도의 메뉴판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분명 영어로 쓰여 있는데 읽어도 뭐라는지 모르겠는 이유가 뭐죠...?” 하고 생각할 것이다 메뉴는 대개 주 재료와 음식 종류를 합친 형태인데, 인도에서 쓰는 말을 발음만 영어로 적어놓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알루Aloo는 감자, 고비Gobi는 브로콜리, 빨락Palak은 시금치 등이다. 만추리Manchuri, 달, 차트니Chutney 등 음식 종류도 다양하고 그 재료 명도 인도 말로 되어 있으니 초보자 눈에 들어올 리가.


  그럴 때는 그냥 물어보는 게 최고다. 물어봐도 말이 안 통하면 그냥 버터 치킨 마살라와 탄두리 치킨을 외쳐도 된다. (어차피 탄두리 치킨을 먹을 거면 난에 찍어 먹을 커리는 치킨 대신 빠니르Paneer로 먹어보는 것도 좋다. 두부처럼 생긴 치즈인 빠니르를 넣은 커리도 한국 사람들이 좋아한다.)


인도 영화관에는 인터미션이 있다.

  발리우드의 나라, 인도. 한국에서는 워낙 충무로와 할리우드가 대세다 보니 인도 영화는 낯설다. 화려한 군무와 노래가 버무려진 구성, 깔려 있는 기본 전제에 차이가 있어서인지 우리에게 인도 영화는 우리와 좀 다른, 낯선 무언가이다.


  그래도 <세 얼간이>의 활약으로 인도 영화가 우리에게 많이 친숙해졌다. 아미르 칸을 아는 사람도 꽤 많고 아미르 칸의 다른 영화들도 한국에서 입소문을 탔으며, 찾아보면 다른 좋은 작품들도 많다.


  하지만 위 포스터에 있는 남자를 모르는 사람도 아직은 많을 듯하다. <마이 네임 이즈 칸>의 주인공 샤룩 칸인데, 팬 수로 따지면 세계 톱 급인 유명인사다. 한 번은 톰 크루즈와 같은 호텔에 묵고 있었는데, 호텔을 둘러싼 인파가 톰 크루즈 팬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다 샤룩 칸 팬이었더라... 하는 일화도 전해져 온다. 친구는 샤룩 칸이 너무 잘생겼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잘 모르겠다. 그의 출연작을 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튼 샤룩 칸 모르는 인도 사람은 없다 해도 될 만큼 어마어마한 유명인사다.


  내가 살던 지역은 발리우드 문화권은 아니었다. 인도는 언어가 다양하기 때문에, 힌디어를 근간으로 한 발리우드가 있다면 남쪽에는 또 다른 언어를 기반으로 한 영화 문화권이 탄탄하게 잡혀 있다. 나름대로 영화가 발달한 도시여서 그랬는지, 아이맥스 영화관도 있었는데 정작 나는 일할 땐 일한다고, 쉴 땐 쉰다고 영화관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하나 알게 되었지. 바로 인도 영화관에는 인터미션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미션, 뮤지컬이나 연극 등 공연을 볼 때 중간에 잠깐 쉬어 가는 시간을 말한다. 인터미션이 없는 뮤지컬은 들어 봤어도 인터미션이 있는 영화라니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인도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다. 영화 자체가 좀 더 길기도 하고, 재미있는 문화 차이이기도 하다.



인도의 한여름은 5월이다.


  그 전에는 내가 관심이 없어 눈에 안 띄었던 건지, 아니면 날씨가 작년부터 정말로 이상한 건지. 작년부터 4-5월이 되면 인도 폭염에 대한 기사가 심심찮게 포털에 오르내린다. 아스팔트가 녹을 정도의 폭염, 몇 백 명 혹은 천여 명이 죽었다는 폭염.


  그러면 거기에 달리는 댓글도 비슷하다. “지금 벌써 그렇게 더우면 7월에는 어떻게 살아요 ㅠㅠ” 이런 귀여운 댓글을 보면 꼭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7월에는 별 무리가 없다. 인도의 한여름은 5월이기 때문이다.


  인도라는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기후는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북부의 카슈미르 근처나 히말라야 인접한 쪽은 산에 눈도 오고, 아래쪽 고아 방면으로 내려가면 몰디브를 반대편에 둔 지역답게 푸른 인도양을 낀 휴양지 분위기다.


  그러나 단순하게 북쪽이니까 덜 덥고 남쪽이니까 시원하리라는 기대는 금물. 내가 살던 지역이 나름 중남부에서 덥기로 유명한 곳이었는데도, 진짜 내가 더위에 신체의 한계를 느낀 건 북쪽에서였다. 분지라서 더 더운 델리, 타지마할에 같이 묻힐까 봐 걱정해야 했던 수준의 아그라, 아예 잠을 못 잤던 바라나시... 북쪽이라고 덜 더운 건 아니다.


  대략적인 기후는 4-6월 한여름, 7-9월 우기, 그 이후로 조금씩 선선해지다가 11-1월 정도가 되면 제법 선선하다. 내가 살던 곳을 기준해서 한국 날씨에 빗대 말하면 저녁에 카디건 하나 걸치고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늦여름 느낌이다. 그래도 아침엔 꽤 추워 덜덜 떤다. 현지 사람들은 이때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분지인 델리는 이때 영하까지 가기도 한다. 연교차도 크고 일교차도 크고... 영하 25도 내려가는 동네에서 나고 자란 나는 대체 영하 2도에서 왜 사람이 얼어 죽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 인도에서 살아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2014년 우리 지역에는 3달가량 이어져야 할 우기가 통째로 여름이 되었다. 비가 온 시간은 대충 한 달 미만. 다음 여름이 덥겠다고 사람들이 끌탕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해인 2015년 5월 한국에도 기사가 몇 개나 떴다. 1,000명도 넘는 사람이 죽었다고. 아예 내가 살던 주 이름이 나왔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한 해의 이상기후를 담은 기사겠거니 했는데 올해도 아스팔트 녹았다는 기사가 또 눈에 들어온다. (올해 아스팔트 녹은 지역도 북쪽이다.) 부디 이상 기후 없이 올해는 비가 올 만큼 와서 내년에는 사람들이 가뭄이나 더위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그런 기사를 안 보고 싶다.


  아참, 인터넷에 “월별 해외 여행지 추천” 하면서 인도 9월에 가라고 누가 자꾸 써 놓던데... 인도 여행 최적기는 1-2월이다. 9월은 우기에 걸릴 확률이 꽤나 높고, 요즘 이상기온 때문에 아직 더위가 다 가시지 않았을 수도 있다. 1-2월은 인도에서도 겨울이라 남부에선 선선하고 북부에선 조금 쌀쌀한 정도의 날씨다. 다만 일교차가 크고 우리나라 온돌 같은 난방이 없으니 북부 여행을 할 거라면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가 좋겠다.


인도는 소를 신성시한다.


  대체로 맞는 명제다. 많은 힌두교도들이 소를 신성시하고,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소를 신성시해서 거리에 소가 그렇게 많이 다니고 소들이 길을 막아도 그냥 내버려 두는 거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예를 들면 무슬림인 오토릭샤 아저씨는 소를 신성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길을 막고 있는 소를 치고 지나갈 수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별거 아닌 것 같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 명제는 생각보다 많은 갈등을 낳았다.


  오래전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소고기 도축이 금지되었는데, 이 해묵은 법령이 두어 해 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힌두교를 위시한 극우 당인 BJP(현 집권 여당)이 이끌고 있던 마하라슈트라 주 정부가 주 단위의 법이었던 이 소고기 도축 금지령을 대통령에게 들이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고기 매매와 집에 소고기가 있는 것까지도 불법으로 묶어 버렸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다. 무슬림을 비롯한 타 종교권 사람들에게 소고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고, 소고기와 연관이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결국 최근에서야 뭄바이 법원은 개인이 소고기를 갖고 있는 걸로는 문제 삼지 않겠다고 판결을 내렸다. 다만 도축은 여전히 불법이어서, 마하라슈트라 주가 아닌 다른 주에서 도축된 소고기를 들여오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원칙이다.


  인도는 소를 신성시한다. 대체로 맞다. 그러나 큼직한 부분이 곧 전체라는 뜻은 아니다. 분명 그 법령에 반발한 사람들도, 그로 인해 직업을 잃은 사람들도 있었다. 애초에 인도라는 나라가 어느 한 가지로만 말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지만.


인도에는 다양한 인종이 있다.


  '인도 사람'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개 비슷하다. 코와 턱에 중후하게 수염을 내고 터번을 뒤집어쓰고 하얀 옷을 입고 있다든가. 사실 터번을 쓰고 덩치가 큰 남성들은 시크교도로, 암리차르에 들어가지 않는 한 일상에서 자주 보이는 편은 아니다. 숫자로 보면 힌두교도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터번이 있든 없든 으레 우리가 상상하는 인도인들은 갈색 피부에 쌍꺼풀 진 눈이 부리부리한 인상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홑꺼풀에 낮은 코, 누가 봐도 '이 여자는 동아시아에서 왔구나' 싶을 법한 얼굴의 표본인 나도 인도 사람으로 오해를 받은 적이 여러 번 있다. 나갈랜드, 마니뿌르, 미조람 등 인도 북동부에 있는 몇몇 주에는 얼핏 동양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산다. (위 첨부된 사진은 마니뿌르의 한 축제 장면이라 한다.)


  실제로 가끔 우연히 만난 누군가에게 '한국 분이세요?'라고 묻기 직전에 나갈랜드 사람임을 알게 된 적도 있었다. 어떤 사람을 보고는 꼭 '잘생겼다고 화제가 되어 알려진 일본 축구 선수처럼 생겼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떻게 생긴 거냐고 물어보면 나도 모르겠지만) 마니뿌르 출신이라든지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인도 사람들도 '남인도 사람들과 북인도 사람들이 다르게 생겼다'는 명제 정도는 갖고 산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원래 살던 드라비다 족을 남쪽으로 몰아내고 아리아 인이 북쪽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감정은 꽤나 분명해서, 남인도에 살던 나는 '북인도는 사람들이 사기도 많이 치고 위험하다'라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그만큼 북인도 사람들이 더 호전적이고 거칠다고들 생각한다. 외모적으로 보면 남인도 사람들이 좀 더 까무잡잡한 피부와 작은 체구, 북인도 사람들이 큰 덩치와 상대적으로 흰 피부를 특징으로 하는 편이다.


  그러나 큼직한 통념이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로 인도는 훨씬 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자연히 주마다 혹은 부족마다 복식도 다르고 축제도 다르며, 인식도 매우 다르다. 인도 사람들은 종교를 불문하고 돼지를 더럽다고 여기기 때문에 대체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만, 북동부 나갈랜드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기도 한다. 또 주 단위로 다를 뿐 아니라 소수 부족의 경우 자기들만의 언어와 문화가 또 따로 있기도 하다.


라지브 간디와 인디라 간디
인디라 간디는 마하트마 간디와 별 상관이 없다.


  인도라는 나라 자체가 지금 '인도'로 묶여 있기는 하지만, 오랜 역사 중 지금과 국경선이 비슷했던 적은 거의 없다. 워낙 큰 땅덩이라 부족이나 도시 국가 단위가 강성했다. 당장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직전까지도 마이소르의 군주가 '마이소르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빛내며 영국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하이데라바드의 왕은 마이소르의 호랑이를 토벌하고자 영국과 군사 동맹을 맺고 있었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인도사를 떠올려 볼 때 드문드문 떠오르는 것도, 조각조각 도시 국가의 역사까지 배우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통일 왕조나 큼직한 왕조만 훑다 보면 인더스 문명, 마우리아 왕조, 무굴 제국 정도 떠오르는 게 보통이니 우리에게 인도사는 듬성듬성한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그러나 우리의 빈약한 상식에서도 걸출하게 빛나는 인물이 간디와 네루일 것이다. 동시대를 살며 독립 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이고, 그러다 보니 나란히 같이 배웠기 때문에 이들의 기억이 묶여서 떠오르는 게 놀랍지는 않다. 그러니 네루의 딸 이름이 인디라 간디라는 말을 듣고 간디와 상관이 있다고 막연히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델리 국제공항의 이름이기도 한 네루의 딸 인디라는 네루의 후광을 입고 정치계에 입문한 정치인이었다. 시크 교도들이 분리 독립을 주장할 때 그들의 도시를 짓밟았다가 이후 자기 경호원으로 들어온 시크 교도들에게 암살을 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선거의 승패로 성공을 결정짓는다면 제법 성공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나중에 힘을 잃고서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동정표를 얻어 자기 아들까지 집권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정치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평이 상당히 엇갈릴 듯하다. 본인이 속한 국민의회당을 거의 사조직처럼 부리기도 했고, 인디라 간디가 입은 네루의 이름을 이겨먹겠다고 야당이 '힌두교'를 중심으로 뭉쳐 오늘날의 극우 조직이 되기도 했다. 그것까지 본인 잘못은 아니지만 인도 정치사의 방향에 있어 긍정적인 것만 남긴 사람이 아님은 확실하다.


  인디라 간디가 마하트마 간디와 상관이 없으니, 그 아들인 라지브 간디나 며느리 소냐 간디도 마하트마 간디와 상관이 없음은 물론이다. 소냐 간디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인도 의회에 진출한 최초의 외국인이고, 그 아들인 라훌 간디도 정계에 입문했으니 마하트마 간디와는 상관이 없어도 인도 정치사에 중요한 인물들이긴 하다.


  간디라는 이름 자체는 인도에서 원래 드물지 않은 성이고, 마하트마 간디 덕분에 더 유명해져서 농담을 할 때 우리나라에서 홍길동 씨나 김철수 씨가 들어가듯 '간디 지가 ('지'는 우리말의 '씨'와 비슷한 존칭) 이랬는데 이렇게 됐대~' 하는 농담도 많다. 다만 간디라고 하면 마하트마 간디가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인도는 강간의 나라, 미개한 나라가 아니다.

  가끔 질문을 받곤 했다. 인도의 여성 인권이 정말 그렇게 낮냐고. 분명 No보다는 Yes다. 인도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이 녹록한 일은 아닌 듯하다. 관공서를 가도 남자가 같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확연히 다르다고들 했다. 오죽하면 “가서 조목조목 따져봐야 듣지 않으니 그냥 차라리 울어버려. 그럼 해 줄 수도 있다.”라고도 했다.


  여자를 남자보다 약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남자가 그만큼 많다는 소리일 것이다. 사실 나는 외국인에다가 남녀 차별을 하지 않는 인도 사람들과 일했기 때문에 차별을 피부로 느낄 일은 없었지만, 여성 인권이 박살 나는 일이 많다는 건 꼭 내가 직접 느끼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몇 년 전 델리의 한 버스에서 대학생 한 명이 무자비하게 윤간당한 일은 충격이었다. 인도 소식을 들을 일이 잘 없는 우리나라 뉴스에까지 그 파장이 전해져 왔을 정도로. 그리고 그 충격의 여파로 한동안 인터넷 기사에는 인도와 강간이 연관 검색어처럼 붙어 다녔다.


  순위권 기사에는 인도 성범죄를 다룬 기사가 하루 하나씩은 꼭 있었다. 허위 보도는 아니지만, 한 사건이 준 충격으로 관련된 기사가 유독 많이 번역된 시기이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인도가 강간의 나라라는 둥, 답이 없다는 둥 하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뉴스로 읽기만 했는데도 손이 떨릴 만큼 잔인한 이야기들도 있고, 내가 눈앞에 피해자를 앉혀 놓고 직접 들은 이야기도 있다. 시골로 들어가면 마을 회의가 곧 법이고, 거기서 결정한 사안에 토를 달 수 없기 때문에 거기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그러나 그 사건들을 이유로 한 나라를 그렇게 뭉뚱그려 칭하는 건 너무나 폭언이다. 델리 여대생 사건을 둘러싸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변호사의 뺀질뺀질한 얼굴이 방송을 탔으니 우리에게 인도는 '배웠다는 사람도 저런 말을 하는 나라'가 되기 쉽지만, 실제로 그 이후에 사람들은 교도소를 습격해 범인을 끌어내서는 호되게 태질을 해 죽여 버렸다고 한다. 법치주의라든지 사법의 정의라든지 하는 것과 거리가 먼 행동이기는 하나, 12억 인구 모두가 강간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은 절대 아니라는 건 분명히 알 수 있다.


  인도가 미개하다는 인식은 더더욱 틀렸다. 인도는 IT 강국에 속하는 편이기도 하고, 무수한 가능성 또한 품고 있는 나라다. 고개를 돌리면 2016년이, 또 고개를 돌리면 1990년이, 또 고개를 돌리면 1970년이 보일 만큼 다양한 모습이 공존하고 있어 그 일면을 보면 뒤쳐지는 듯 보일지 모르나 그렇지만은 않다.


  인도는 특이하다. 자기 색깔이 정말 강하다. 150년이나 식민 통치를 받고서도 자기 색깔을 일상생활에서조차 지우지 않았다. 일을 할 때조차 전통 의상인 사리를 입고 하는 여자들을 보며, 예쁜 전통 의상이 일상복이라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이고, 고집이라면 고집이다.


  그중엔 틀린 것도 있다. 오래전 남편 잃은 과부를 태워 죽이던 사티라는 풍습이 그랬다. 그러나 인도라고 무조건 다 틀린 것도,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다 틀린 것도 아니다. 인도의 다양함을 차근차근 들여다보고 나서 말해도 늦지 않다. 인도는 특이하고, 알 때마다 관광청이 그 문구를 얼마나 잘 지었는지 무릎을 치게 되는 나라니까.


Incredible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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