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두른 나이테가 한 겹 깊어지고
모든 생명은 성장한다는 자연법칙은 그 뒤에 한 가지 명제를 더 감추고 있다. 모든 성장이 상실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라야 열매를 맺고, 상실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걸 차곡차곡 배워 나간다. 키가 자라고 머리가 굵어갈수록 마음의 어딘가도 그렇게 단단하게 여물어 간다. 우리 집의 꼬물꼬물 개구쟁이 녀석들도 하나씩 소년 테가 나기 시작해 가던 즈음, 유독 뼈 아픈 교훈으로 그 시기를 보낸 녀석들을 기억한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나는 성장통이었다.
중동계 미남의 얼굴을 한 B는 다른 아이들보다 피부색이나 생김새의 느낌이 조금 달라서 눈에 띄는 편이었다. B가 가진 좋은 점 중 하나는 의욕이다. B는 뭐든 잘 하고 싶어 하고, 칭찬받을 때 으쓱 웃으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을 많이 갖고 있는 아이였다. 잘 한다 잘 한다 해주면 정말 끝까지 쭉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나 할까. 외모도 눈에 띄게 잘 생겼지만, 그 의욕이 눈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면 단연 시선을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B가 훈육을 받을 때면 뭔가 달라졌다. 거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만큼 확연한 차이였다.
훈육을 받을 때의 태도는 보통 자기 성격과 일관적이다. 일례로 나는 어렸을 때 무조건 잘못했다고 우는 타입이었다. 평소에도 조심스러운 N은 훈육을 받을 때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고, 평소에도 태평천하를 사는 G는 훈육도 놀이처럼 여기거나 아니면 제 자존심에 입을 꾹 다물고 그 정도가 심하면 씩씩대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B의 평소 태도로 미루어 보면 꼭 화를 낼 것만 같은데, 막상 훈육의 자리에 서면 B는 물에 젖은 강아지처럼 겁을 먹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일반적으로 단호하게 훈육할 때 겁을 먹는 아이들은 조곤조곤 타일러 말할 때 오히려 더 잘 듣는 편인데, B는 그것도 아니었다. 타이르면서 이야기하면 싸우자고 작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빈정거렸고, 단호하게 훈육을 하면 한 순간에 겁을 먹었다. B의 '행동'에 대한 '가르침'이어야 할 시간을 B는 자기 '존재'에 대한 '싸움'으로 받아들이는 것만 같아 보였다. 덤비거나 꼬리를 내려야만 하는 그런 싸움.
내가 손님으로 방문했던 시절 처음으로 아이가 같이 사는 누나에게 훈육받는 모습을 본 것도 B였다. 보통 손님이 왔을 때는 아이들도 더 잘 하려 하고, 누나 형들도 아이들 자존심이 있으니 손님 눈앞에서는 훈육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래를 배우던 날, 잘 하고 싶은 마음과 잘 되지 않는 상황 사이에서 스스로에게 실망도 하고 화도 났던 B가 이리저리 어깃장을 놓아 음악 수업 진행이 어려워졌고, 결국 그때 같이 살던 누나가 B를 데리고 들어가 잘못을 이야기하고 같이 시간을 보냈다. 문틈으로 보이는 B의 얼굴이 어찌나 섧게 울고 있었던지, O의 수학 수업을 하느라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던 나로서는 큰 일이라도 났나 걱정이 되어 나중에 언니한테 무슨 일이었는지 살짝 물어봤을 정도였다.
훈육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가르침인데, B는 처벌을 두려워하지만 뭘 배우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칭찬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건 보기 좋았지만 뭘 어떻게 하든 덮어놓고 칭찬만 받을 수 없다. 게다가 올바른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훈육도 칭찬도 큰 의미가 없을 터였다. 미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이 자꾸 들던 훈육과 칭찬 사이에서 고민하며 누나 형들도 같이 배워 나갔다. 누나 형들끼리 모여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 보면 B가 나이나 덩치에 비해 속이 어린 느낌이 든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어느 날 비 온 뒤 땅 굳듯 B를 하루아침에 쑥 자라게 한 일이 일어났다. 그 날은 정말이지 몇 달 후에 돌이켜 회고해봐도 기억에 남을, 제법 큰 사건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RC 카 장난감이었다. 리모컨으로 조종할 수 있는 자동차 장난감은 다른 장난감에 비해 단연 탐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어쩌다 선물로 들어온 RC 카 한 대가 선반 맨 윗칸에 고이 놓여 있었다. 24명에게 하나씩 나눠줄 수도 없고 공공재로 돌려봤자 제대로 갖고 놀지도 못할 거였으므로, 사실 자린고비의 굴비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가끔 'RC 카는 누구에게 줄 거냐' 물어 올 때면, 누나 형들 입장에선 대체 저게 줄 수는 있는 물건인가 싶고 작은 골칫거리처럼 느껴지긴 했다. 그래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직 보기만 해고 기분 좋은 물건이었다.
그 애물단지를 아직은 그냥 두고 보되, 조금씩 그 행방이 어떤 파란을 불러올까 슬쩍슬쩍 불안해지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B가 리모컨으로 자동차를 조종하고 있는 것을 아이들이 보게 된다. 아이들은 B에게 대체 누가 너에게 RC 카를 주었냐고 물었고, B는 누구 누나가 주었다 누구 형이 주었다 하며 어물쩡, 그러나 대상을 콕 집어 대답했다. 그건 아이들에게 일종의... 배신당한 듯한 기분이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웅성웅성 난리가 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거짓말은 오래 갈 수 없었다. 형이나 누나가 저기 멀리 다른 집에 살면서 한 달에 한 번 보는 사람도 아니고, 아이들이 누나 형에게 따져 묻지 못할 만큼 소원한 사이도 아니었으니. B가 거짓말을 했고 RC 카를 직접 꺼내서 자기 것처럼 갖고 놀았다는 건 금방 밝혀졌다. B는 자기가 이름을 팔았던 형과 누나와 대화하며 시간을 보낸 다음 큰엄마와 따로 또 훈육의 시간을 보냈다. B가 훈육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아마 그때가 정말 B에게 훈육이 훈육으로 받아들여진 시간인 것 같다. 기싸움도 아니고, 굴복도 아닌, 정말 가르침을 받는 시간으로.
따끔하면서도 맑아지는 시간이었을 거다. 내가 혼나고도 잘 혼났다는 마음이 드는 그런 훈육의 시간이 있다. 혼나서 배워야 할 일을 누군가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잘 혼내 주셨을 때의 그 아프고 괴로우면서도 홀가분한, 꼭 정화라도 된 듯한 그 마음이란.
B는 그 날 훌쩍훌쩍 울면서도 모두 앞에 의연히 서서 사과를 했고, 모두는 그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 후로 B는 차곡차곡 달라져 갔다. 나중에 어른들끼리 있을 때 큰엄마께서 이야기해 주셨다. B가 우리 집에 오기 전에 기숙학교 생활을 했는데, 그때 나쁜 버릇이 많이 든 것 같다고. 훈육의 자리 앞에서 그저 두려워할 뿐 배울 줄은 몰랐던 B의 태도도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됐다. B의 나쁜 행동들도, 어른들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아이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제대로 훈육받지 못하고 남아 있던 거였다. 공동의 물건에 몰래 손을 대는 것, 거짓말을 하는 것, 어떻게든 이기고 들어가려 드는 그 마음들은 그렇게 하나씩 뿌리가 뽑혀 나가기 시작했다.
B는 그 후 놀라울 만큼 자랐다. 훈육을 받아야 할 상황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이 와도 입술을 깨물며 자기 잘못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어려워하면서도 애쓰는 그 몸짓이 얼마나 대견하고 멋졌는지 모른다.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잘못했다 미안하다 차분하게 이야기했고 더 이상 빈정거리지도 않았다. 잘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잘 하게 되기까지 서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어린아이의 마음은 그 날 처참하게 깨졌다.
조용히 입술을 깨물고 속눈썹을 내리깔면서,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소년이 그 자리에 대신 섰다. 조급해서 자기 분을 못 이기던 아이의 모습을, B는 그렇게 하나씩 버려 나갔다. 그런 B의 태도에 대한 칭찬으로 우리는 응원했다. B가 다른 아이들을 잘 챙겨주네, B가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B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 그거야말로 정말 대단한 거야. 행위와 결과가 아닌 태도와 과정을 아낌없이 칭찬하며 모두 B의 성장을 기쁘게 지켜보았다.
지금 B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면 몰라보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 만큼- 사진 속의 B는 청년에 가까운 모습이다. 우리 눈에는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어린이 B와는 딴판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다부진 얼굴 표정에는 그때의 의욕적인 눈빛 대신 차분하게 빛나는 눈빛이 있다.
그러나 내가 알던 B가 사라지는 것이 아쉽지만은 않다. 그 상실의 자리를 대신 채운 B가 리더십을 배워 가는 모습을 보았으므로. 또 다른 것들로 부지런히 제 삶을 채워 나가고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그리고 나는 언젠가 그 B를 다시 만나 그 걸음의 방향을 또 응원해 주면 되는 것이기에.
Y도 B만큼이나 밝고 장난기 많은 꼬마였다. B가 유난히 빈정거려 다른 아이들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도 Y와의 관계만큼은 제법 안정적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냥 해맑게 웃는 것만 같아도 사실 Y가 다정한 면이 깊어서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두 아이의 공통점은 마냥 밝고 즐겁다고만 하기엔 속내 어딘가 너무나 여려 톡 터져버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 B의 마음에 심긴 것이 과실이었다면, Y의 마음에 어려 있는 것은 슬픔이었다.
Y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했다. 언젠가 Y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직접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일도 있었다.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Y는 아버지와의 관계도 서먹서먹한 편이었다. 1년에 한 번 방학 때만 집에 갈 수 있어서 부모님을 만나면 제 덩치가 무색하게 끌어안고 안기고 난리가 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놀라우리만큼 고요하고 뻘쭘하게 재회를 하곤 했다. 가기 전에는 누나에게 사실 집에 가기 싫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신나게 이야기할 때 Y의 표정은 가만히 가라앉았다.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는 아버지의 건강도 좋아 보이지는 않으셨고, 부자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공기에 마음이 쓰였지만 뭐라 대화를 나눌 새도 없이 방학이 시작되곤 했다.
그래도 일상에서는 괜찮아 보였다. 한 순간의 큰 사건이 계기가 되었던 B와는 달리, Y의 성장은 조금씩 알이 깨지듯 여러 번에 나누어 찾아왔다. 서서히 지켜보다 보면 보이는 점이 있었다. Y는 또래 집단에 약해도 너무 약하다는 거였다. 사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친구의 영향이 큰 게 당연하지만, Y는 그 정도가 심해서 거의 친구가 후 불면 흩날리는 수준이었다. 친구가 하라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게 나쁜 짓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했다. 형이 잔돈을 모아 둔 통을 건드려 그 돈으로 친구와 신나게 빵을 사 먹은 적도 있었고, 자기보다 훨씬 작고 어린아이가 주도하는 장난에도 별생각 없이 동참했다. Y 주변의 누군가가 나쁜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는, 착하긴 하지만 너무나 기준이 없고 위험한 마음이었다.
한 번은 배가 아프다고 끙끙 앓아서 학교를 못 가고 병원까지 갔더랬다. 뭘 잘못 먹었냐고 해도 아니라고 하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도 아무 일도 없었다 해서 입원하고 검사까지 했다. 우리는 모두 다각도로 추측을 하며 긴장을 했다. 혹시 학교 가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건 아닐까? 누구한테 맞았는데 차마 저 성격에 말 못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Y 지금 괜찮을까?
Y는 모든 질문에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답했다. 나중에 형 한 명한테만 가만 털어놓았다고 한다. Y보다 한두 살 많은 J가 움직이다가 실수로 팔꿈치로 쳤는데 그 후로 아팠다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도 우리의 긴장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정말 실수로 친 거라면 왜 말을 못 했을까? 사실 J가 때린 건 아닐까?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고 있던 데다가 '내가 형아'라는 카리스마가 있던 J였기에, 두 아이의 성격을 미루어 보아 더 걱정을 했다. 그러나 정말 실수로, 그냥 그럴 수 있는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정말 별거 아니었는데 모두가 긴장했던 것이다.
별 일 아닌 작은 일을,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조차도 말하지 못할 만큼 Y는 또래 집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쉬이 끌려갔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건 말로 가르쳐 고쳐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때그때 올바른 것을 끊임 없이 가르치는 수밖에. 그게 Y의 기준이 되어 주길 바라며 계속해서 가르치는 수밖에.
잔돈 통을 건드렸을 때도, 입원해서 검사를 했을 때도-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 모두 우리에게는 온 집안이 들썩들썩해지는 큰 일이었다. 혼나야 할 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혼이 났다. 돈을 슬쩍한 사건은 빵을 같이 사 먹고 Y를 충동질한 사람이 친구였기 때문에 학교까지 연결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간을 들여야 했다. Y도 그 친구도 많이 놀랐을 거다.
Y는 그렇게 천천히 자기 행동에 책임지는 법을 배워 나갔다. 그냥 순간적으로 별생각 없이 남을 따랐어도 결국 혼나고 배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다. 속속들이 착한 Y는 그렇게 훈육을 받으면 누나 형들에게 많이 미안해했다. 흩날리는 가벼운 다정함은 조금씩 묵직하게 Y의 삶에 멋지게 자리를 잡아 나갔다.
Y는 지금도 성장 중이다. 잘생긴 얼굴에 짓궂은 아이의 웃음을 씩 짓던 녀석이 이제는 야무진 소년의 웃음을 보여준다. "너는 왜 점점 더 잘 생겨져? 어떻게 더 잘 생겨질 수가 있지?" 동생 덕후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 누나의 뻔뻔한 말에 수줍게 고개를 숙인다. 옆에 다른 녀석이 "왜냐하면 여자애들이 있으니까!" 하고 까르르 웃으며 놀려대고, "오~ 그런 거야~?" 하고 같이 놀리면 누나 말이 다 맞다면서 또 웃는다. 누나를 놀리는 건지, 아니면 이제는 같은 학교 여자아이들의 웃음 앞에 더더욱 듬직한 소년이 되어간다는 걸 누나에게도 보여주는 건지. (아마도 둘 다인 것 같다.)
아이는 소년이 되고, 우리를 둘러싼 나이테가 그렇게 한 겹 늘어나고, 소년은 또 계속해서 자란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애정 어린 눈으로 계속 지켜본다. 나를 길러내고 지켜본 시선과 내가 길러내고 지켜볼 시선 사이의 사슬. 어쩌면 인간의 역사란 그 애정의 사슬이 켜켜이 쌓인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오늘도 그렇게 역사가 한 장 쌓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