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피어난 작은 동물원
내가 살면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아마 "엄마랑 똑같이 생겼네!"일 것이다. 학창 시절에 엄마가 상담 건으로 학교에 찾아가면 엄마를 처음 보는 선생님이어도 "누구 어머님인지 안 여쭤봐도 알겠네요." 하시곤 했다.
가족은 신기하다. 그냥 얼굴만 보아도, 어떻게 그렇게 닮을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어떻게 그렇게나 다른 사람일 수 있는지 신기해지곤 한다.
인도 우리 집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신기하다. 24명이 고사리 손으로 흙장난을 하던 시절부터 아이들 모두 성격이 확연히 달랐다. 각자의 색깔로 통통 튀는 찬란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성격이란 게 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친형제인 아이들의 닮은 듯 다른 모습은 더더욱이나 신기했는데, 그중에서도 W와 R 형제는 그 집안을 관통하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모두를 웃게 만드는 존재들이었다.
형인 W는 아버지를 쏙 빼닮았고 동생인 R은 어머니 붕어빵이며, 고향 집에 있는 막내 여동생은 둘을 반반 섞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온 가족이 얼굴이 닮기도 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스타일'을 중시하는 멋쟁이라는 점도 꼭 같아서, 다섯 식구가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아이들이 '스타일 가족'이라고 할 정도였다. 게다가 모두 유쾌하고 밝은데, 뭐랄까 굉장히 마이웨이의 유쾌함이었다.
오래전 내가 같이 일하던 언니 동생들과 함께 아이들의 고향 마을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의 가족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 모두 '멀리서 온 외국인들'이 방문한다고 소문이 났더랬다. 그 따뜻한 마음을 받으며 첫 잠을 잔 곳은 D의 집이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자 멋진 오토바이를 끌고 벌써 옷도 멋지게 입으신 W과 R의 아버지가 와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W과 R를 찾았는데 그들은 없었다. 그냥... 그냥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끌고 우리를 한 번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진짜 문자 그대로 우리 얼굴만 보고 한 번 환하게 웃으시고는 이내 가버리신 짧은 방문이었고, 그 집에 곧 갈 예정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의문의 방문이었다. 우리는 만화 한 장면처럼 사라지는 오토바이 뒤에서 멍한 대화를 했다 왜 오신 거래? 몰라... W랑 R은 뭐 하고 있대...? 몰라... 왜 같이 안 오셨대? 모르지... 상황 파악이 안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냥 재미있었다.
형인 W은 특유의 긴 허리와 한껏 세운 셔츠 깃, 느물느물하게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장난치는 말투 때문에 멀리서 봐도 딱 W라는 걸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눈을 반짝거리면서 '오오~' 소리를 내며 듣고, 사진을 찍자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발리우드 영화 주인공처럼 포즈를 잡고, 아무 일 없어도 혼자 흥얼흥얼 거리면서 춤도 흥겹게 추었다. (잘은 아니고 즐겁게... 우리 집 춤신춤왕이다.)
그러면서도 진지해질 때는 표정이 세상 심각해졌는데, 워낙 평소에 나풀나풀 돌아다니는 아이다 보니 아이가 진지하게 대답할 때조차 우리는 얘가 알아듣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대답만 하는 건지... 싶어 지곤 했다. 아무튼 우리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위기 메이커인 건 늘 확실했다.
그래도 이 아이의 유쾌한 면은 그저 남들과 방법이 다른 것일 뿐, 사실 알아야 할 건 다 알고 있고 해야 할 것도 은근히 챙겨 나가고 있었다. 하루는 교회의 성경 공부 시간에 에스더 이야기를 들은 날이었다. 에스더는 페르시아 왕의 비(妃)로 들어간 유대인 여성이었는데, 하만이라는 신하가 유대인들을 몰살하려고 음모를 꾸밀 때 죽음을 각오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가 그 음모를 저지한 여성이다. 즉 어떤 교훈 이전에 기승전결이 뚜렷한 진짜 "이야기"였으므로, 종이인형이나 동영상 등의 교재를 통해 즐겁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가장 큰 아이들은 느낀 점을 말해 보라는 질문을 받았다.
W는 가장 큰 아이들과 같은 반이었는데, 그 반에 앉아 있는 성숙한 형아들 입에서는 '정답스러운' 대답, 듣는 사람을 감탄하게 하는 대답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었다. 나이로 보아도 이해도를 보아도 사실 W가 그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W 또래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한 명만 그 반으로 올려 보내려다 보니 어쩌다 키가 제일 큰 W가 올라가는 바람에 그림이 묘해졌다.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 이야기에서 뭘 배웠어?” 라는 질문을 듣고 다른 아이들은 “좋은 답”을 이야기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민족을 위했던 에스더의 용기라든지 에스더를 통해 그 상황을 만든 에스더 삼촌의 지혜 같은 뭐 그런 것들. 하지만 우리 W는 또 즐겁게 눈을 빛내며 "아름다워야 된다는 거?" 대답했다. 묘하게 맞는 답안이네... 멋부리는 녀석다운 답이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또 한참 어이없어하면서 웃었다.
자기가 재미있어하고 자기가 멋진 게 제일 중요하던 W도 성장통은 피해갈 수 없었다. 한 지붕 아래 살던 우리가 부득이하게 두 지붕 아래로 식구를 쪼개야 했던 시절, W는 다른 친구 하나와 둘이 동생들을 다 데리고 지내게 되었다. 본인들도 형들과 또래 친구들과 있는 게 더 재미있었겠지만, 그리고 이미 동생들을 잘 챙길 줄 아는 형들과 동생들을 붙여 놓았다면 모두가 더 편했겠지만, W도 동생들을 챙기는 법을 배워야 할 때였다. 모두가 힘들었다. 1년 중 가장 더울 때였고, 여름방학 직전이라 아이들 모두 들떠 있기도 했고, 갑작스러운 이사로 적응해야 할 것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동생들이 꼭 혼날 일만 골라서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시간이었다. 그때 W는 처음으로 책임이라는 걸 배웠다.
원래 자존심이 세던 W였다. 밤에 자러 갈 시간이 됐는데도 자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벽 보고 서 있는 벌을 받았는데, 끝끝내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열두 시가 넘어서야 잔 적도 있었다. 그냥 잘못했다 하고 자러 가면 될 것을, 처음에 자기 싫어했다는 그 자존심 지키겠다고 서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 모습이 또 당시 혼낸 누나 마음에 여태 남아 있는, 그런 일도 있었다.
그러던 W였는데 이제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을 하고, 혼자 유쾌할 새도 없이 바삐 동생들을 챙겨야 했다.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게 얼굴에 보였지만, 그 와중에도 비가 많이 왔던 날 영화 포스터를 따라 으쓱거리면서 놀고 있는 모습은 그냥 W가 W여서 좋고 고마웠다.
얼굴 못 본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W는 '스타일'을 챙기며, 눈썹을 꿈틀꿈틀하고 씩 웃고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해야 하는 공부를 은근히 해내면서도, 그러면서도 유쾌하게 하루하루를 잘 지내고 있겠지. 풍문으로 듣기론... 요즘 여자 친구를 사귀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하던데... 누나들도 아직 연애를 안 하고 있으니 너는 아직은 공부를 하면 좋겠어...라고 멀리서 사심을 담아 속으로만 생각해 본다.
그 동생 R은 단언컨대 우리 집에서 말이 제일 많았다. 나를 포함해 우리 집에 수다쟁이가 많았지만, R만큼은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양의 수다쟁이였다. 절대 말을 멈추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이 말은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니까.
보통 누나 형들 모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재미있어하고 (아이들 특유의 통통 튀는 성격이 드러나는 대화가 재미없을 수가 없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 이야기를 마음에 잘 모아 두었다가 하루가 끝날 때 혹은 낮에 아이들이 없을 때 같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웃기도 잘 했다. (아줌마들의 카카오스토리 감성을 그래서 나는 이해한다.)
그럼에도 대부분 R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건 힘들어했다. 왜냐하면 끝... 그런 건 오지 않으니까. 지금 손에 하는 일을 마무리지어야 할 때 R이 찾아와서 차마 그 말을 집중해 듣지 못하고 어어, 하면서 대충 들으면 누나 얼굴까지 붙잡아 고개를 당긴 다음에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이쯤 되면 인정해 줘야 한다.
R 수다의 특징은 끝없다는 것 말고 또 있었다. 언제나 '누나!'를 부르고 시작한다는 것이었는데, 꼭 옛날 미국 만화에 더빙한 목소리 같이 독특한 목소리로 R이 '누나!'를 외치는 억양은 정말이지 특이했다. 누나라는 뜻의 '디디!'는 보통 다들 짧게 부를 만한 2음절의 단어임에도, R은 언제나 "디↘디↗~?!"라고밖에 쓸 수 없는 특이한 억양으로 누나를 부르고, 어떨 때는 "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로 시작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 그 누나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딱히 기억에 남은 건 별로 없다. 왜 아무 생각이 안 날까 싶어 다른 누나들에게 물으니 다들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너무 많아서 우리가 귀를 닫아 버렸나... 뜻밖의 반성을 좀 해 본다.
한 번은 R이 옆에 쫄랑쫄랑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동시에 C가 무슨 바람이 불어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졌는지 옆에 와서 말을 걸어왔다. 하필 둘이 동시에 디디! 하고 부른 것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용무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이야기가 하고 싶은 눈치였다.
옛날에는 누나들을 설설 피해 다니기까지 할 만큼 말이 없던 C는 자라면서 언제부턴가 한번 입이 트이면 그때부터 말을 무척 잘 했는데, 그래도 C와의 대화는 여전히 희소성이 높았다. 둘 중에 누가 먼저 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R에게는 미안하지만 경험상 R이 하는 말보다 C가 하는 말을 먼저 들어주어야 둘 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C에게 먼저 말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그러나 C의 눈치도 나의 눈치도 전혀 보지 않는 R은 거리낌없이 자기 할 말을 줄줄 했다. 그래도 R보다 형이었던 C가 덤덤하게 R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주었고, 나도 R의 말을 차분하게 들었다. 이야기가 일단락되어 C가 "디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R은 마치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는 듯이 "디↘디↗?!" 하고는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C는 어이없어했지만 R을 알기에 그냥 또 꾹 참고 기다렸고, 나는 그런 C에게 눈인사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대강 전한 다음 또 R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일단락될 때마다 비슷한 일이 두어 번 더 반복되었고, C는 결국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떴다. R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끝없는 이야기를 했다. 옆에 C가 있었던 걸 알기는 알았을까... 그날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기억에 굉장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날이 하루 있는데, 휴일이라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빗자루를 들고 거실을 쓸고 있었고, 거실과 연결된 현관문 바로 앞에는 아이들이 앉아서 동당거리며 놀곤 하던 하얗고 긴 나무 의자가 있었다. R은 그 위에 늘어지듯 앉아 있다가 기분이 좋았는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떴다 떴다 비행기>와 같은 멜로디로 부르는 Mary had a little lamb이었다.
Mary had a little lamb, little lamb, little lamb,
Mary had a little lamb whose fleece was white as snow.
메리에게는 어린양, 어린양, 어린양이 한 마리 있었다네
메리에게는 눈처럼 털이 새하얀 어린양이 한 마리 있었다네
그 짧은 구절을 (10분 넘게...) 부르다가 곧 지루해졌는지 가사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메리 대신 내가 새끼 양을 갖게 되었다. Sunny didi had a little lamb, 써니 누나에게는 털이 새하얀 어린양이 있다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는 little frog, little donkey, little dog, little cat... 개구리, 당나귀, 개, 고양이, 사자와 호랑이까지... 그 귀여운 노래를 들으며 저절로 입가로 새 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 비질을 하고 있는데, 그런 내 눈 앞에 순식간에 작은 동물원 하나가 피어났다. 아이가 만들어 준 동물원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누구나 다 '내 새끼 천재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거겠지만, 나는 R이 정말 이야기와 표현의 귀재라고 생각한다. 처음 만났을 때 만화 속 바니 토끼가 그려진 내 후드티를 보며 금방 무슨 스토리를 만들어내어 조잘조잘 말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새해 선물로 다 같이 곰인형을 하나씩 받았을 때에도, 그 곰인형에게 '스쿠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이야기를 만들어 한참 들려주었다. 다시 만나 이야기했을 때 R은 정작 스쿠비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의 스쿠비는 그때 끄적끄적 그린 그림에 남아 아직도 내 서랍 속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본인이랑 스쿠비만 그리길래 "지금 옆에 있는 N도 그려줘야지" 했더니 N까지는 꽤 정성스럽게 그려주었으나 "그럼 나머지 22명은?" 했더니 귀찮은 표정을 짓고는 졸라맨을 슥슥 그려주었다. 미묘하게 갈수록 귀찮아하는 게 보이는 와중에도 정확하게 22명을 그려 줬다는 것이 킬링 파트.
일전에 아이들의 고향 집을 방문했을 때는 내 필름 카메라를 한참 궁금해하더니 설명을 해주자 필름이 넘어가는 원리를 금방 이해하고는 카메라를 받아 들고 몇 방인가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 놓기도 했다. 초점이라든지 다 엉망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소중한 추억이고, '내 새끼 천재' 필터를 끼우고 봐서 그런지 내 눈에는 되게 느낌 있어 보이는 사진들이다. 언젠가 먼 미래에 아이에게 돌려줄, 아이 인생의 첫 사진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일전에 시나리오 수업을 잠깐 들으면서 느낀 게 있다. 그 날이 그 날 같은 우리네의 일상에는 사실 하루에도 단편 영화가 될 만한 소재가 몇 개씩이나 묻어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는 굳이 억지로 눈을 돌려야만 볼 수 있었던 새로운 사실이었지만, R에게는 매일이 그런 재미있는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런 R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다면 R도 행복하고 사람들도 즐겁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R이 좋은 작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늘 재미있는 이야기가 좋은 R이 바라보는 세계에는 색색깔의 비눗방울 같은 게 퐁퐁 터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R은 자라면서 변할 테고, R이 좋아하고 잘 하는 것들로 꿈을 꾸게 될 거고, 그 모습은 그 모습대로 (아버님처럼) 유쾌하고 즐거운 삶이 되겠지만... 그냥 지금의 아이를 보며, 그 아이가 가진 특유의 색깔을 감탄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막연하게 즐거운 상상을 해 보는 것도 오늘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일상의 잔 재미가 아니겠는가.
오늘도 아이들은 자기 주변을 유쾌한 색색으로 물들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이 더 많은 것을 향해 반짝거리고, 아이들의 입이 더 많은 사람을 향해 웃음을 던졌으면 좋겠다. 작은 물풍선처럼 퐁퐁 터지는 아이들의 기쁨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달되는 행복한 날들을 살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날들이 소박하게 이어진 그 언젠가, 작은 동물원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며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하루를 꽉 채우고 있어 그립다는 생각을 그다지 해보지 않았던 형제의 수다가 참 그리워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