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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Sep 15. 2015

깊은 물속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만난 사람, S 이야기


2013년 11월 13일의 일기

  오늘 아침에도 현지인 간사 차를 타고 클리닉으로 갔다. 가는 길에 태워 가야 할 환자가 있다고 했다. 결핵균에 감염이 심하게 되었는데 그게 시신경을 건드려서 눈이 먼 남자분이라고 했다. 집에 도착하고 전화 한 통을 하자 이윽고 나오는 남자는... 분명 딸은 아닐 텐데 아내라고 말하기도 좀 뭣한 여자의 부축을 받아 나왔다.

  둘이 부부라는 건 분위기로 금방 알 수 있었지만, 모습만 놓고 보면 모를 것 같았다. 움푹 들어간 눈으로 허공을 보며,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죽음을 연상케 하는 신음 소리를 뱉어내는 남자는… 차라리 디멘터라면 그러려니 할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여자는 울 듯한 얼굴에 애써 띄운 것이 역력한 미소를 가볍게 지으며 내게 인사를 했다. 엷은 미소를 짓는 여자의 팔목에는 털실 같은 것으로 만든 팔찌가, 남자의 팔목에 걸린 것과 같은 모양으로 감겨 있었다. 그리고 수심으로 삶을 보내왔다고 얼굴이 말해주는, 여자의 시어머니일 듯한 할머니.

  세 사람이 차에 오르고 나는 괜스레 긴장이 됐다. 꼭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처음 얼굴 볼 때는 정말 그랬는데… 그 차가 덜그럭거리며 가는 내내, 우리는 그냥 그 차에 실려 쿵쾅거리는 한 무리의 인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삶에 두 발 딛고 있는… 그냥 인간이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클리닉에 도착했지만 그랬던 건 나뿐이었던 것 같다. 병실 침대에 남편을 뉘인 여자의 얼굴에 엷게 덮여 있던 미소가… 그제야… 땅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는 느낌. 얼굴을 가리고 섧게 우는 여자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처연했다.

  웃고 있던 때도 그 긴 속눈썹 끝에 눈물을 달고 있던 걸 봤던 듯한 착각마저 드는, 너무나 슬픈 그 얼굴은… 죽음에 덮여 빛을 잃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남편에게 담요를 덮어주며 유리 도자기처럼 소중히 대하는, 같은 팔찌를 나눠 낀 그 손길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남편을 덮으려는 죽음의 그림자가 떠나갈 수만 있다면 그래 주길,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처음 S를 본 날의 일기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길거리의 부랑자들도 별로 본 적이 없는 상태였기에 더 놀란 것도 있다만. 나중에 알고 보니 S는 시력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리에도 마비가 오고 있어서 거동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지금 S의 다리는 마른 장작 같다. 꽉 꼬집어야만 누가 건드리는 느낌이 조금 들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부들부들 떨며 힘들게 차에 올랐고, 모처럼 일을 쉬고 그렇게  힘들어하는 남편을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부인의 얼굴에는 누가 봐도 명백한 비구름이 끼어 있던 거다.


S의 아내가 참았던 눈물을 마침내 흘렸던 곳. 이곳의 벽은 많은 눈물과 한숨, 절망과 소망을 보며 서 있다.

  그러나 얼마 후 다른 간사들과 함께 S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창문 코앞에 어른 키 만한 담이 서 있어 창문을 활짝 열어도 볕은 잘 들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집이 선선하니 좋았다. 집은 1자형으로 작게나마 방 2개와 부엌이 있는 집이었고 (단칸방이라고 하기도 옹색한 단칸방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방 개수부터 좀 놀라웠다.) S는 전에 본 그 S가 맞나 싶을 만큼 평온하게 앉아 있었다. 비록 움푹 패인 눈이나 볼품없이 마른 몸은 변함없었지만, 시트며 베개며 모두 깨끗한 것으로 잘 정돈된 침대에 말끔한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S는 웃는 얼굴로 허공을 보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깊은 물 같은 담담한 목소리, 한 번 말해준 내 이름을 기억하여 그 후로 내가 갈 때마다 옅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이름을 불러주는 얼굴은 아무리 봐도 천성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7-8년 전 결혼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은 어찌나 소중하게 여기며 계속 보여주는지, 지금의 S 모습과는 비슷하지도 않은 사진 속 부부의 눈빛이며 다정한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아서 눈 감아도 그 사진이 훤히 보이는 듯하다. 내게도 이런데 S에게는 더하겠지. 게다가 어디서 후원받는다는 500루피의 돈을 다른 곳에 또 후원하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기도 했다.


  감염으로 시력을 잃었다, 아내도 감염으로 힘들었는데 최근엔 그나마 몸이 좀 좋아져서 일을 다니고 있다, 자식도 없는 두 사람을 모든 친척들이 다 등한시하고 있고 돌봐 주는 건 양쪽의 어머니들뿐이다,라는 씁쓸하고 무거운 이야기만 배경지식으로 들어왔던 것에 비해 S와의 만남은 그렇게 생각보다 다정하고 가벼웠다.


  그리고 지난 1월, 단기봉사 팀과 함께 다시 S를 방문했을 때 S는 지나간 자기 삶 이야기를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아내와 결혼한 그때를 돌이켜 보는 것뿐인데도 수줍게 미소 짓는 S는 정말이지 대단한 애처가였다. S는 원래 운전 기사로 자기 차도 있고 자기 집도 있을 만큼 유복한 편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몸이 좋지 않아서’ 간 병원에서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를 입원시켰고, 의사들의 입김을 타고 이런저런 병원을 오가고 이런저런 비싼 검사들을 죄다 받는 동안 넉넉했던 가세는 기울어 갔다. S가 자기 몸에 HIV가 있다는 걸 안 건 그보다도 한참 후였다. 의사들은 마치 하이에나처럼 S가 가진 마지막 한 조각까지도 물어뜯었고, 그러는 동안 감염으로 S는 시력도 잃고 자유로운 다리도 잃었다. 돈에 대한 탐욕과 그를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는 불의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오늘 S를 방문했을 때, 여느 때처럼 S는 말끔한 옷차림으로 잘 정돈된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늘 있던 S의 어머니 대신 아내 G의 어머니가 웃는 얼굴로 맞아 주셨다. 방 안의 풍경을 보나, S의 손에 찻잔을 잘 쥐어주며 장모님이 S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가까움을 보나, 암만 봐도 S는 이 집에서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S의 아내 G에 대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나란히 기다리고 있었다. HIV/AIDS 관련 병원에서 잡무를 돕는 일을 하던 G는 두 달 전 병원이 집에서 먼 곳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남편을 돌보기 위해 직업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이런저런 당일치기 소일거리로 가계를 꾸려가고 있었고, 때문에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쌀, 렌틸 콩, 식용유를 사 들고 이 집을 방문한 거였다.


  세간도 많지 않은 집에, 오늘은 어쩐지 못 보던 책 몇 권이 놓여 있었다. 영어 기반의 학교를 졸업한 다음 대학 교육을 받을 때나 쓸 것 같은 그 책은, 놀랍게도 G가 학업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정규 대학 수업은 아니지만 격주로 일요일마다 수업을 듣는, 우리로 치면 일종의 학점은행 같은 제도를 통해 G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한 열의를 불 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S는 그 길을 응원하며 격려해 주고 있었다.


  S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와서 본 세상은 비현실적으로 햇빛이 강했고, 사람이 풍겨내는 분위기 때문인지 담 때문에 볕이 덜 들어서인지, 나는 마치 담담한 물 속에 있다 나온 것처럼 멍했다. 언제 봐도 S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웃으며 말문을 연 나는 같이 일하는 간사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언니, 혹시 S가 어떻게  감염됐는지 알아요? 그게… 아무리 봐도 부부가 금슬이 참 좋아 보이는데, S가 매춘을 했을 것 같지는 않아서...”


  건강을 잃기 전 S의 직업이 운전기사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넓은 인도 땅을 이리저리 오가다 보면  해지기 전 집에 못 들어가는 일이 예사이며, 올바른 성 의식도 없는 인도의 수많은 운전기사들이 그런 밤을 매춘으로 보내고 오늘날 인도가 세계 제2위의 에이즈 창궐 지역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세계 제1위 에이즈 창궐 지역인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도 운전기사들이 비슷한 역할을 했다.)


  환자들의 감염 경로는 환자들이 직접 간사들에게 먼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해 줄 때만 알 수 있는 것이고 함부로 어디 할 얘기도 아니기에,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보통 환자의 80% 이상이 성적인 경로로 전염되는 데다가 하필이면 직업도 운전기사였는데, 지금 보는 S의 모습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어지지 않는 듯한 이야기의 양 끝을 붙들고 있기엔 너무 궁금해, 그를 알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질문이 아님을 알면서도 물어봤다.


“사고를 당했다는데.”

“교통 사고?”

“응, 수혈을 받다가 그렇게 됐다더라. 그런 일도 생각보다 꽤 많아.”

“그런 일이 꽤 많다고요?”

“정식 병원 말고 동네 구석구석에 메디컬 센터들, 주삿바늘 그냥 계속 재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거든. 그런데서는 그런 일이 꽤 많아. 그런 곳은 피를 잘 검사하지도 않고.”


  햇빛 이글이글한 정류장에 버스가 올 때까지, 한참을 착잡하게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뿌리째로 뒤흔들고 짓밟아 버린 이유가, 그다지도 허망한 것이라니. 주삿바늘 값 좀 아끼자고, 고작 그 정도 조금 더 잘 먹고 잘 살아 보겠다고 한 사람의 삶 아니 한 가족의 삶이라는 대가를 이렇게 뼈아프게 치르게 하다니. 그때 언니는 덤덤히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번에 아동 초청 잔치 때왔던 K라고… 시력을 잃은 여자애가 하나 있거든.”

“누군지 알아요. 기억 나요.”

“걔 같은 경우는 낳을 때 의사 선생님이 애 엄마한테 모유 수유를 하지 말라고 했어.”

“왜요? 모유 수유가 좋은 거 아니에요?”

“아니, 엄마가 감염자일 때는 모유를 통해 감염될 수도 있어서. 그랬는데 엄마가 그냥 모유 수유를 한 거야.”


아.


“원래는 눈이 보였어. 그리고 한 살 반쯤 됐을 때였나, 그렇게 된 거야. 그 엄마가 울고 불고 난리였어.”

“그랬구나…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거네요. 어떡해. 볼 수 있었으면 진짜 야무지게 잘 살았을 텐데.”

“그래, 지금도 얼마나 똑똑한데. 무슨 공립 학교 다니는데 선생님 질문에 대답을 그렇게 잘 한대. 학교 갈 준비도 혼자서 척척하고, 뭐 사고 싶은 거나 심부름할 거 있으면 가게도 혼자 가서 사려는 물건 정확하게 잘 사오고. 아무튼 굉장히 똑똑해. 볼 수 있었으면 보통 아니었을 거야.”


  그런 얘기는, 정말 씁쓸했다. 이제 와서 그 의사들이나 K의 엄마를 원망해 봤자 아무  소용없겠지만…내 마음에도 별반 다르지 않은 불의가 있음을 알지만… S와 G, 그리고 K, 그리고 불의에 허덕여야 했던 수많은 삶들에, 대단한 나무는 못 자란다 해도 작은 들꽃과 산들바람처럼 기쁘고 평안한 날들이 소박하게 이어져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나아갈 길을 생각했다. NGO와 연결하겠다고 온 지 6개월, 그 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무언가 해야만 했다. 밤마다 러프한 아이디어 스케치를 했다. 여성 자활 프로젝트? 직업 훈련? 어떤 프로그램이 가능할까? 무슨 그림을 그려야 하지? HIV/AIDS라는 공통점 외에는 큰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이대도, 가족 형태도, 사는 곳도 모두 제각각 달라 무어라 묶어내기 힘든 사람들.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돕는 것 외에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고민의 밤이 여름과 함께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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