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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Sep 15. 2015

부끄러움의 벼랑 끝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하며


  이 편지 같은 글의 시작이자 나에게는 인도의 시작이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2012년 12월 26일 인천을 출발해 1월 17일 다시 인천에 도착하기까지,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노는 까진 좋지만, 에이즈에 대해선 뭔지도 모르 마냥 두렵던 마음. 그리고 그럼에도 에이즈 사업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게 싫고 그냥 3주 내내 아이들이 있는 집에만 있고 싶어 했던 비겁한 마음도 기억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 마음 위로 차가운 물방울처럼 내려앉았던 생각들. 에이즈 사업장에 NGO 손을 잡고 오는 것, 그건 뭘까. 어떻게 하는 걸까. 결정한 후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헤매던 내 모습도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다.


  아주 최근까지도 내 고민이었다. 나는 분명 에이즈 사업장을 위해 여기 온 사람인데… 아이들의 집에 지내면서 이중으로 속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특권이고 그래서 정말 마음 깊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중으로 속했기 때문에 처하는 어려움도 분명하게 존재했다. 아이들과 사는 집은 에이즈 사업장에 비해 이미 체계가 잡혀 있었고, 일주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 더 많았고, 한국인 스태프들도 함께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상대도 많았다.


   한마디로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내게 에이즈 사업장은 외롭고, 어려운 느낌이 항상 존재하는 곳이었다. 더불어 NGO와 연결하기로 하고 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실패감이 슬슬 나를 찾아오기 시작한, 인도 도착 6개월 차.


  드디어 꿈결 같은 그 순간이 찾아왔다. NGO와 에이즈 사업장이 탄탄한 첫 연결고리를 잡았다. 가정 방문 사업을 위한 행정비 지원이 시작되었고, 후원자와 연결되는 대로 아동 결연이 시작될 예정이다. 때문에 요즘 문서 작업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덕분에 꿈결은 갈수록 현실로 느껴지고, 나는 그야말로 행복하다.


  NGO 지원을 통해 우리에게 배고픈 사람에게 나눠줄 음식이 생기고, 돈이 없어 학교를 못 다니는 아이들에게 학비가 생긴다. 그간 우리 손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기적 같은 선물이다. 그러나 더 기쁜 건 이게 시작이라는 거다.


  이렇게 일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 수고했다, 잘 했다, 하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사실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저 이 순간 여기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여기서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음이. 나는 여기 뭐 대단한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온 게 아니다. 어쩐지 와서 덩그러니 보고 있을 뿐인 평범한 사람일 뿐.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는 부끄러운 사람, 어쩐지 와서 덩그러니 보고 있을 뿐인 사람이라고 하니 얼마 전에 환자들을 데리고 큰 병원에 다녀온 일이 떠오른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어 마치 살갗을 콕콕 쪼는 듯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이었고, 도시의 절반 정도를 동선으로 소화해야 했던 날이기도 했다. 도시 외곽 쪽에 있는, 병원이라기보다는 요양원 같아 보이는 소담스러운 에이즈 환자 병원을 찾아가 모녀 환자를 태우고, 정부에서 무료로 제공해 주는 ART* 약을 받기 위해 도시 끝에 있는 큰 병원까지 오가야 했던 날이었다.


 (*ART=항레트로바이러스제 치료법. 항레트로바이러스제는 HIV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AIDS의 진행을 늦추는 몇 안 되는 약이지만,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이 꾸준히 먹어야 하고 값이 비싸다. 때문에 인도 정부에서는 공립 병원을 통해 등록된 에이즈 환자들에게 이 약을 무료로 나누어준다. 이 약을 쓰는 치료법을 ART라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다시 할 것이다.)

이 모녀와는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할머니는 건강이 많이 좋아지셔서 지금은 거동에 불편함 없이 집에서 소일거리를 하신다. 딸은 일을 다니고 있다.

  쨍하게 내리쬐는 볕 때문에 어지러울 만큼 힘이 들기도 했고, 마침내 긴긴 시간 끝에 도착한 ‘큰 병원’은 흔히 생각하는 병원 모습이 아니라 무슨 시장바닥 같은 느낌이었다.


  병원이 있는 곳은 오래전 이슬람 왕조가 다스리던 시절의 궁정과 그 일대가 남아있는 구시가지였고,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때 탄 구시가지 건물들로 빼곡한 곳이었다. 건물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색을 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병원 건물 자체도 200년쯤 된 것이었고, 한국에서라면 폐허로 쳐서 진작 헐어버렸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낡은 건물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건물로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외국인을 향한 시선이 꽂히기 시작했다.


  몸을 바들바들 떨며 잘 걷지 못하는 어머니를 부축한 딸이 계단을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고, 그 뒤를 따라 한 걸음씩 나도 아주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둥글게 말려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성병은 243호실로’라는 안내 글귀가 쓰여 있었고 그 순간 왠지 나는…나는, 정말로 당황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어딜 가나 꽂히는 시선이 당연고 이젠 제법 익숙해졌는데도, 그때부터 내게로 모여드는 시선은 등으로 가슴으로 칼날처럼 박히는 눈총이 됐다. 243호실에 가는 것도 아닌데, 2층에 243호실만 있는 건 아니니 이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라고 모두가 성병 환자인 건 아닌데도, 마치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꼭 나를 그런 사람으로 여기는 것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해명하고 싶었다. 아니에요,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마침내 도착한 ART 센터는 216호였다. 복도 끝에 칸막이를 세우고 그 안에 의자 몇 개를 두어 꼭 격리구역 같은 대기공간을 해두었다. 거기서 환자들이 양옆의 진료실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사람이 많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길바닥에서 자거나 앉아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기에 복도 양쪽에 피난민처럼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가득했다. ART 센터로 들어가는 이상한 외국인 여자를 계속해서 쳐다보고…쳐다보고… 쳐다보았다.


  칸막이 안쪽에는 창문도 없고 선풍기도 부족했으며 환풍기 하나가 벽에 있기는 했지만 나마도 꺼져 있었다. ‘건강한 사람’인 내게도 탁한 공기가 곧장 느껴질 정도였다. 들어가자마자 같이 일하는 간사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면역력이 매우 약하니까 결핵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고, 지금 이 공기 중에 바이러스가 엄청 떠다니고 있을 건데, 마찬가지로 면역력이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게 얼마나 치명적인 환경이냐”고 안타까워했다. 달리 할 말이 없는 곳이었다.


  그 날은 너무나 더웠고, 너무나 지쳤고, 그래서 마치 하루가 꿈인지 생시인지 싶을 만큼 파김치가 된 날이었기 때문에… 다시 도시 외곽의 작은 병원으로 돌아와 환자들을 내려줄 때쯤 나는 거의 멍한 상태였다. 그늘에 앉아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도 꿈결 같았다. 아침에도 분명 들렀던 곳인데, 그게 아주 오래전처럼 느껴지는 그런 오후였다.


  찬찬히 둘러 본 병원은 아침에 봤던 것보다도 인상이 더 좋았다. 가톨릭 계통의 병원이었는지 마리아, 베드로, 아씨시, 알폰소 등 성인들의 이름이 붙은 건물들은 복숭앗빛 페인트로 칠이 깨끗하게 되어 있었고, 병실과 복도의 하얀 타일도 보얗게 잘 닦여 있었다. 비록 기운 없이 늘어져 있고 누가 봐도 어딘가 아프다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환자들은 서로서로 대화도 하고 살펴도 주며 편안하게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턱 아래로 화상을 입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청소부 여자가 한 번 손을 멈추는 일도 없이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있었고, 진입로부터 곳곳에 심겨진 망고나무, 장미꽃, 가지와 토마토까지 거기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누군가의 손길을 알차게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 간사와 그곳에 있던 환자들은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는 못 알아듣는 현지 말로 대화가 오가고 있었기에, 나는 그늘을 누리며 가만히 앉아 풍경을 보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오후의 햇살, 꽃, 나무, 바람, 그리움, 사람, 같은 단어들이 둥둥 떠다녔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말 한 마디로 담자면 그야말로 "생의 감각"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오후였다.


평화로운 시간. 꽃과 바람, 나무와 대화 소리에 살아 있음을 홈빡 느끼고 있던 그 순간.

내가 그렇게 생을 누리고 있던 순간, 여태까지 걸레질을 하고 있던 청소부 여자가, 화상으로 벌어진 입 때문에 종잡기 힘든 표정을 하고, 지친 것처럼 벽에 기대 섰다. 그리고 갑자기 그 눈에 눈물이 괴기 시작했다. 그와 우리 간사 사이 몇 마디 심각한 대화가 오간 후, 내게 한 마디 통역을 해 주었다. 며칠 째 상태가 좋지 않았던 환자 하나가 지금 막 세상을 떴다고. 나는 오직 살아 있는 것들과 살아 있는 나를, 느끼고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생의 감각"이라고 지금을 정의내리던 바로 그 순간에.


  햇빛이며 꽃이며 바람이며 하는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그래서 기분이 솔솔 좋아지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그토록 아름답고 고요하게 찾아온 죽음은 내게 유독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꾸는 꿈인지, 이 곳에 있는 누군가의 꿈속에서 내가 배경 인물이 되어 있는 건지. 호접지몽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느슨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내 위에 얹힌 것만 같은 오후였다.


  그리고 너무나 긴긴 하루를 마감하고 돌아온 내 얼굴에는 굳어진 석고 마스크 같은 것이 얹혀 있는 기분이었고… 마치 그 마스크를 벗겨내듯, 아주 오랫동안 일기를 썼다. 왜 눈물이 나고 왜 괴로운 건지 이유도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루의 있었던 일들을 구구절절 나열하고 나서야, 마치 모든 물을 다 퍼 올리고야 우물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듯 괴로움의 밑바닥, 마음의 밑바닥을 바라본 일기였다.



  병원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그리고 이 솔직한 심정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했으면서 사실 같아지고는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도울 수도 있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해 줄 수는 있어요. 그러나 나는 당신과는 달라요. 우린 다른 사람이에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이런 거 아닌가. 결국… 하루하루 죽어가는 건 그들이나 나나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이들이 내 가족과도 같다고 했던 모든 말들에는 거짓이 섞여 있던 것.


  이 병에는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수치도 너무나 큰 것이었다. 알고 있었는데,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가. 사실 이러기나 저러기나 그게 그거인, 작은 차이로 그들과 나를 구별하고 싶어 하는 내 수치심 그 자체가 수치스럽다. 진짜 수치스러운 건 생생히 살아 있는 나의 에고가 외치는 바로 그것이었다.


  수치가 수치스럽고, 부끄러움이 부끄러운 날이었다. 서시 속에 갇힌 사람이 된 기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바라면서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그런 기분에서 아주 오래도록 울었다. 철저하게 나만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에서도 내 시선에 들어오는 것들에만 주목하며 내 나름의 생의 감각들로 나를 채워가고 있는 나 자신. 나에게만 집중된 나의 시선은 소름 끼치도록 끔찍한 것이었다.


  내가 느낀 그 비현실적인 기분, 내 꿈도 같고 남의  꿈같기도 했던 그 기분을 돌이켜 보면서, 시선을 바로 하지 않는다면 나는 마치 유령이나  다름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클리닉에서 무너지듯 울던 여자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도. 며칠 전 그곳에서 청소부여자의, 그 눈물 고인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던 나도.

  그 순간 ‘나’라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세상을 볼 수 없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비록 분명한 현실이었지만 만약 그 순간을 꿈이라고 한다면, 아마 그 청소부 여자의 꿈이었을 테고 나는 그 순간 그늘 아래 앉아 있던 배경 인물에 지나지 않았을 거다. 마음 없이 하나의 시선만 멀거니 남아 그들을 보고 있던 나는 과연 나라는 ‘1인칭 시점’으로 그 곳에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관조적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멍하니 있는 걸 잘 하는 나. 마치 유령처럼, 존재가 아닌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던 내 자신의 면면들이 자꾸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오늘 방문한 작은 병원은 도시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넓은 포도원을 볼 수 있었다. 포도를 살 수 있을까 잠시 기웃거려 봤던 포도원. 그 아름답고 청명한 빛깔이 펼쳐진 모습과, 씻다 말고 후다닥 뛰어나와 외국인을 바라보던 말간 아이들. 너무 많은 일들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내 마음 깊은 곳을 파낸 괴로움이 가득한 와중에도, 뭐라고 말해도 오늘 보고 느낀 것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그 빛 고운 장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삶은 어떻든 아름답고, 오늘 같은 날이 있기에 우리에겐 시(詩)가 필요하다. 끝없이 괴로워하는 내 이 삶도, 멀리서 보면 한 편의 아름다운 시로 빛나는 날이 될 것이다. 그저 오늘을 꼭,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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