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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Sep 16. 2015

천천히 웃으면서 가도 괜찮아

러크나우 이야기 (1) 출발


  NGO와 연결되어 아동 결연 및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그 일주일 전. 나는 망연자실하게 공항에 앉아 있었다.


  우리 집은 인도 남부에 있는데, 인도 북부에 있는 우타르 프라데쉬(UP) 주의 주도(州都) 러크나우로 가려고 아침부터 서둘러 나온 길이었다. NGO 사무총장님의 출장에 동행하게 되었고, 사무총장님이 내가 사는 곳에 오시기 전 러크나우를 먼저 가시는데 그 길에 함께하게 된 거였다. 인도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다녀오는 거라 큰 일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나마도 직항 편이 없어 델리를 경유해 가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모처럼 신선한 경험이 되리라.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침에 공항에 도착해서야 여권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는 정도?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여권 사본을 보여주고 창구 직원을 찾아가 거의 읍소에 가까운 하소연을 했지만 친절한 창구 직원의 동정 외에는 받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창구 직원은 아니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어쩜 여권을 두고 올 수가 있냐며, 나를 딱하게 여겨 주었다. 오늘 비행기는 시간이 맞지 않고, 내일 비행기는 꽉 찼다고 했다. 그러다 뭘 찾았는지 갑자기 표정이 결연하게 바뀌더니, 11시까지 여권을 가지고 오면 어떻게든 해주겠다고 했다. 집에서 곤히 자고 있던 다른 스태프들은 자다가 봉창 두드려 맞는 격으로 내 여권을 들고 부랴부랴 공항에 오는 중이었다. 나는 창구 직원 언니에게 고맙다고 연신 말한 후 벤치에 앉아 여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방금까지는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동거리다가 자리에 앉으니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NGO 사무실을 비롯해 연락을 취해야 할 곳에 모두 상황을 알린 다음, 마음을 진정시킬 겸 시간을 죽일 겸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까만 히잡을 두른 세 명의 여자아이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나를 둘러쌌다. 안녕 하고 인사를 하기에 몇 마디 하다 말겠지 하고 안녕, 나도 대답해 주었다. 아이들은 이름이 뭐냐, 어디서 왔냐, 눈이 너무 예쁘다, 어디 가려고 공항에 왔냐, 왜 여기 이러고 앉아 있느냐,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대화가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아이들은 나를 금방 놓아줄 기세가 아니었다. 그래서 일기장을 덮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은 써니고, 한국에서 왔고, 너희야말로 눈이 참 예쁘고, 러크나우에 가려고 공항에 왔는데 여권을 두고 와서 비행기를 놓쳐 여기 앉아 있다고 했다. 나를 의아스럽게 보거나 창구 직원처럼 딱하게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웃고는 말했다. "우리 오빠도 비행기 놓쳤는데!"


  아이들의 오빠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귀국했는데, 오늘 비행기를 타기로 해서 일가 친척 모두 배웅을 나온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오빠 본인, 그 아내, 아버지, 어머니, 친척 아주머니까지 일가 친척을 하나하나 다 소개해 주었다. 비자가 만료된 지 몰랐는데 오늘 비행기 타기 전에 발견해서 비행기를 놓쳤다고 했다. (듣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긴 나도 이러고 있지만...) 아이들이야 어려서 뭘 몰라 그런다 쳐도, 오빠 본인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아내의 손을 다정하게 맞잡으며 내게 말했다.


“그 덕분에 가족들이랑 이틀을 더 보낼 수 있게 됐어요. 잘된 일이죠.”


  일가족은 부서지는 아침 햇살 같은 목소리로 한참 웃었다. 같이 사진을 찍고,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말을 서툴게 잇는 나를 보며 또 웃고, 그러다가 급기야 나에게 같이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오랜만에 만나는 맥모닝으로 실컷 배를 채운 데다가, 긴장으로 뱃속에 아무 느낌이 없던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럼 계속 여기 있을 거죠?" 내게 묻고는, 내가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11시까지 여기 있어야 한다는데 혼자 어딜 가겠어, 여기 있겠지" 하고 쑥덕쑥덕 결론을 내렸다. 아침을 먹고 돌아와서 내 손에 헤나로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하고는 왁자지껄 사라져 갔다.


  멀어지는 그 순까지도 친구들이 11시까지 충분히 올 수 있을 거라고,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다 같이 힘주어 말하며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사실 당사자들이 여기 있는 이유를 생각하면 별로 신뢰가 가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마음만큼은 고마웠다. 사실 누구든 좋으니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아까와는 다른 헛웃음이 났다. 정말 울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억지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 별반 깊이라곤 없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그러고 있는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기분이 좋아졌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11시까지면 친구들이 충분히 올 수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말도 내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고, 눈도 예쁘고 머리카락도 예쁘고 그냥 다 예쁘다고 해준 칭찬도 무척이나 기분 좋았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그 긍정적인 태도가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비자가 만료된 걸 당일 알았다는 황당한 상황에서도 가족들과 이틀을 더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마냥 기뻐하는 그 낙천적인 모습을 보며 내가 처한 상황도 뭐 그렇게 대수롭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비행기를 놓쳤고, 그래서 예상치 못하게 돈이나 시간을 더 써야 했지만, 시간 지나서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생긴 걸로 쳐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저렇게 낙천적인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나라고 못 그럴 건 또 뭐 있나 싶어서.


  30분 후 오겠다던 가족은 11시 가까워서 도착한 친구들에게 여권을 받고 공항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30분은 30분이 아니었어. 어디선가 유쾌하게 밥을 먹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며 공항에 들어갔다. 직항으로 갔다면 1시간 반 남짓한 거리의 국내선이었지만, 어딘가 멀리 해외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한 기분었다. 나는 친절한 창구 직원 덕분에 조금 바뀐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고, 델리 대신 뭄바이를 거쳐 그 날 밤 늦게 러크나우에 도착했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던 꽃들. 꽃 덕분에 눈호강을 한 며칠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밤에는 정신없이 잠들었고, 다음 날 아침 눈에 담은 풍경은 생각보다 맑고 따사로웠다. 북인도는 남인도에 비해 훨씬 험하고 거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지라 사실 좀 바짝 긴장을 하고 갔는데, 아침부터 나를 맞아준 건 뜻밖에도 산들바람과 아름다운 꽃들이었다. 숙소는 검박하고 조용한 곳이어서, 마치 수도원으로 피정을 나와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고운 붓 끝 같은 꽃잎.
지금 돌이켜 봐도, 사랑스러운 아침.
수도원으로 피정을 간다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러나 이 때는 몰랐다. 내가 러크나우에서 보고 들을 이야기는 꽃잎처럼 하늘거리고 가벼운 게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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