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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Jan 14. 2018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제목과 부제는 각각 시인 나태주 선생님의 <풀꽃>, <꽃2>의 한 구절입니다. <풀꽃>이 워낙 유명해서 <꽃2>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는데 무척 좋습니다. 가수 정밀아 씨가 노래로 부른 버전도 좋아요. :-)




  24명의 오색찬란한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사람 성격에는 타고나는 면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같은 집에서 나서 같은 부모님 아래 같은 방침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나와 내 동생만 보아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비슷한 면이 많지만 상당히 다른 성향이 서로 부대껴 "넌 대체 왜 그래?" 하고 싸울 때도 있으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던진 그런 질문에 가끔은 동생이 "너 때문에 그래!"라고 악 받쳐 대답할 때도 있었다. 나는 내 입장이니까 몰랐던 동생의 고충이, 그런 쪽으론 말을 아끼는 편인 동생이 한 번씩 쌓여 있던 불만을 못 참고 터뜨리는 날이었다.


  동생이 그렇게 악 받쳐 소리치기까지 한 건 우리가 각자 타고난 성향만큼이나 위치의 차이 때문도 있었다. 첫째와 막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건, 그게 편애가 아니라는 건 이제 알 만한 나이여서 둘 다 그걸 문제 삼지는 않지만.


  우리뿐 아니라 주변에서 만나는 이들 또한 다 이제는 집안의 포지션에 따라 부모님의 대우도 조금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알 나이이기에, 요즘 내가 그런 이유로 서러워하는 얘길 들을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는 쉬는 시간 난로에 모여 하던 이야기 중 연예인 이야기나 여름철 괴담만큼이나 단골 주제였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집에서 둘째인 아이들의 설움이 제일 컸다. 구구절절한 부연 설명도 필요없이 그저 "언니는 언니라서, 막내는 막내라서" 라고만 말해도 다 이해하고 끄덕거리곤 했다.


  둘째로 살아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요즘은 아마 그렇지만도 않겠지만... 그 시절 우리들은 '둘째에게는 그림자가 진다'는 건 거의 기정사실로 여겼다. 나뿐 아니라 그 시절 어른들 또한 흔히 말했다. 중간에 끼인 아이들이 바깥에서 친구도 잘 사귀고 사회 생활도 잘 한다고. 그 말이 얼추 맞는 것도 같았던 것이, 때로는 서럽게 엉엉 울기도 하고 씨근덕거리면서 불만을 쏟아놓기도 하지만 정작 그 아이들은 언제나 뭘 해도 즐겁게 누리고 야무지게 잘 했다. 고무줄 놀이를 할 때에도 공기놀이를 할 때에도 그냥 친구네 집에 놀러갈 때에도 그 애들은 항상 당찼다. 공기 알을 떨어뜨리지 않고 꺾기를 하는 요령을 보여주는 것도, 풀어진 운동화 끈을 들고 헤매는 친구가 있으면 가장 야무지게 묶어주는 것도 대개는 그 애들이었다. 항상 자신있는 성격에 짓궂은 소리를 들어도 웬만해선 잘 되받아치다 보니 사람을 끄는 편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인도 우리 집에도 첫째들 그늘과 막내들 등쌀에 끼인 각처럼 지내던 둘째들이 있었다.



사진은 수줍게...


  오래 전 가장 대화를 나눠 보고 싶은 상대를 묻는다면 당시 디디 바이나들은 모두 입을 모아 C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그만큼이나 C는 디디 바이나들과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단기로 온 사람 중에는 C와 제대로 이야기 한 번 나눠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C는 24명 중 가장 먼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다섯 명 중 하나여서 사실 눈에 띄려면 얼마든지 띄는 빨간 체크무늬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신발을 벗고 옷을 갈아입으며 슥 들어가서는 형 누나들 가까이에 잘 오지 않았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이런 녀석도 있기 마련이라, 딱히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고 그냥 성격 차이일 뿐이었다.



  그래도 아쉽긴 했다. C가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자기네 동네 말로 이야기하는 걸 슬쩍 보면 듣는 아이들 모두가 자지러지게 웃고 있고, 그들의 말 한 마디 알아듣지 못하고 들어도 C가 말투의 완급 조절을 해 가며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게 보였으니까. 한국인 형 누나 모두 C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지 궁금해했지만, 무슨 이야기였나 물어도 대답은 해 주지 않았다. "아 그냥 얘기했어..." 하고 말꼬리를 늘이며 대답하는 아이를 붙잡고 그러니까 대체 무슨 얘기를 했냐고 채근하면 "그냥 얘기..." 하고는 저쪽으로 슬쩍 걸어가 버리는 식이었다.


  꼭 이럴 때뿐 아니라 우리와 대화할 때도 C가 가끔 참다 못해 한 번씩 던지는 일갈을 보면 얼마나 위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말꼬리를 잡거나 비꼬듯이 말해도, 툴툴대면서 대답을 해도 하나도 밉지 않은 대답을 해서 누구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쿨한 유머 감각이 있는 아이였다. 잘 안 보여줘서 그렇지 골계미가 있달까.


  그러다 보니 그때 당시의 C가 한번씩 와서 "디디," 부르고 말을 걸면 그건 정말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 감격스러웠던 어느 날, 그래 이야기해보라는 내게 C가 입을 연 그 순간-


  "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딛디!!!!!" 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우리 말 많은 R이 다가왔다. R이 큰 눈을 더 크게 떠 가며 이야기 하나를 마치기까지 C는 점잖게 기다렸다. 물론 R의 이야기도 하나하나 다 소중하지만... 여러 명이 나를 문자 그대로 둘러싸고 각자의 말이 한 군데서 휘몰아칠 때 어디를 보고 어떻게 동시에 들어야 할지 고심해야 하는 디디 입장에서, 어떻게든 디디가 제 이야기를 듣게끔 하는 R보다는 모처럼 다가온 C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힐끔힐끔 C의 눈치를 보아가며 듣던 R의 이야기가 끝나기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때, 같이 눈치를 보고 있던 C도 "디디,"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우리 해맑은 R은 그와 동시에 "디디!!" 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눈치는 약에 쓸래도 없는 친구 같으니... C는 표정도 찌푸리고 한숨도 쉬었지만 또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서로 성격 다 아니까 나오는 배려였지만 그 배려가 서너 번 반복되도록 말을 멈추지도 C를 눈치채지도 못한 채 R의 행복한 수다는 계속되었다. 결국 C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멀어져 갔다. 그 상황이 너무 귀엽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으니 R이 그제야 왜 그렇게 웃냐며 갸우뚱했다. 그냥 계속 이야기하라고 웃었을 뿐, 결국 그 날 C가 하려던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끝내 듣지 못했다.


그래도 사이가 좋다.


  멀리서 보면 만담꾼이 따로 없는데. 사진 찍자는 카메라뿐 아니라 매일 같이 사는 대화도 은근슬쩍 피해 지나가 버리는 걸 보면 의아하긴 했다. 우리는 C가 낯 가리는 기간이 6개월이라며 성격이려니 하고 넘겼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C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R의 긴긴 수다를 다 기다리면서까지 디디들과 대화를 하려고 기다리기도 하고, 환하게 웃어주기도 하고. 정말로 낯 가리는 기간이 오래 필요한 녀석일 수도 있지만, 그때 당시 큰엄마가 지나가듯 말씀하셨던 한 마디가 나는 잊히지 않는다.


  "C가 아버지 돌아오시고 자신감이 많이 붙었어."


  C의 아버지는 운전 기사시라고 들었다. 9년이었던가 8년이었던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여러 해 집에 돌아오지 않고 소식이 두절된 채여서 동네 사람들 모두 아마 객사했을 거라고 수군거렸다고들 했다. 차분한 말씨를 한 C의 어머니는 그때도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혼자서만 아니라고 말하며 계속해서 기다린다고 안타까워하는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그게 내가 C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얼마 후였던가, C네 아버지가 돌아오셨대, 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난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는 C를 데리러 오신 아버지와 그 옆에 선 C의 미소는 쨍한 인도 햇살만큼이나 눈부셨다.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도 안 받아줄 것 같은, 매우 극적인 이야기다. 그 덕분인지 C의 미소는 날로 환해지고 말수도 늘었다. 누나 형들은 뿌듯하게 C의 달라진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친동생이 인도에 왔다. 나는 아이들과 한 집에 살고 있었고 동생은 다른 곳에서 지냈는데, 아이들이 어린이 캠프에 참석하느라 동생이 있는 집으로 가게 되었다. 세상에 내 동생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다 거기 있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서 보니 다들 한껏 들떠 있다가 날 보고 화사하게 웃어주고 있었다. 불과 며칠 아이들을 보았을 뿐이지만 나에게 아이들 이야기는 몇 년을 들어왔던 내 동생에게 아이들이 어떻냐고 묻다가 C 이야기가 나왔다.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조별로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C가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C는 발표하라고 하면 '아니야...' 하면서 은근슬쩍 제일 뒤편으로 어느새 빠져 있을 녀석인데.


  동생은 그 이야기를 듣더니 오히려 놀랐다. C가 당당하게 손 들고 발표하겠다 자진해서 나섰고, 발표를 얼마나 기똥차게 했는지 다들 빨려들어서 재미있게 들었다고 말해 주었다. C는 자기가 어렸을 때 뚱뚱한 편이었고 스스로 '나는 왜 날씬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자라면서 살도 빠지고 얼굴도 많이 잘생겨졌다고, 자기 잘생겨지지 않았냐고 씨익 웃으며 이야기했다고 했다. 와아 웃음을 터뜨린 아이들을 앞에 두고, C는 어느새 진지한 어투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짧지만 모두가 감탄할 수밖에 없게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지켜보면 캠프 간사들 모두가 박수를 쳤다고 동생이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졌는지 모른다.


  장난스럽게 이름 중 한 글자만 늘려서 억지로 만든 별명을 부르면서 괜히 깐죽거릴 때면 누나 뭐하는 거냐고 꾸짖듯 말하면서도 씨익 웃어주는 녀석을 안다. 모처럼 이야기하려다가도 R이 중얼중얼 늘어놓는 이야기를 다 기다려 줄 만큼 배려심 있는 녀석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오래 낯을 가리는 건지, 자신감이 없었던 건지 서서히 변해가는 아이를 보며 여전히 궁금한 게 더 많았다. 아이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이야기했다는 말을 들으니 그 사랑스러움에 절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큰형들이 워낙 잘 하는 데다가 동생들은 세상에 다시 없을 천둥벌거숭이들이어서, 수십 명이 사는 집 우당탕탕 굴러가는 일상에서 둘째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기 일쑤였다. 둘째들을 불러보는 일도 많지 않았다. 그냥 정신없이 하루를 살고 밤이 되면 방에 둘러앉아 이야기했다. 막둥이들은 사고 쳐서 혼내느라 이야기한다지만, 중간 나이대 아이들이랑 얼굴 본 거 같지가 않다고. 물론 그 아이들 반을 담당하는 언니가 든든하게 있었으니 아이들이야 누군가와 이야기를 했겠지만, 대부분의 누나 형들 입장에선 아쉬움이고 미안함이었다.


  그랬는데 그 둘째가 어엿하게 자라서는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자신은 사랑받았다고, 그리고 자기도 그런 자신을 사랑한다고. C는 처음 만났을 무렵에 비하면 거의 딴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격이 180도 바뀌어 가고 있다. 자라면서 성격이 바뀌는 건 당연하지만 C의 경우는 자연스러운 성격 변화라기보다 아이 내면에 있던 무언가가 싹을 틔우고 피어났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흐뭇하고 소중하다.


  내가 어린 시절 교실에서 만난 야무지고 다정했던 둘째들처럼, C도 지금 교실의 누군가에게 위트 있고 뭐든 잘 하는 좋은 친구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격이 확 바뀐 C와 달리, T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참 일관성 있고 알기 쉬운 친구다. 올바른 행동을 해서 칭찬 받는 것 좋아하고, 똑똑해지고 싶어하고, 바르고 고운 말을 진지하게 잘 하고, 눈 빛내며 손 번쩍 들어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는 그런 친구. 근엄하게 예의를 갖추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다. 허세가 아니라 원래가 반듯해서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엄숙하게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악수를 하곤 했다.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모양새는 아주 엄숙한데 날 보며 웃는 얼굴은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서, T가 가진 진지한 면이 싫지 않았다.


    T가 가진 월등한 외향성은 언제 어디서나 빛을 발한다. 오래 전 아직 꼬꼬마였던 아이들이 다 같이 서서 엄숙하게 인도 국가를 부를 때 "차렷! 경례"를 앞에서 맡아 하던 때부터, 행사가 있을 때 앞에서 진지하게 사회를 보거나 고향에서 오신 어른들 옆에 깍듯하게 서서 통역을 하는 것까지 능수능란하게 해내는 오늘날까지 그 모습은 늘 여전하다.


가슴에 빛나는 반장 배지.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T가 가진 외향성은 안에서부터 흘러넘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T 안에는 틀릴까봐 두려워하고, 혼나거나 잘못을 지적 받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하고, 잘 하지 못해서 모자란 면을 보일까봐 움츠러드는 면이 있다. 워낙 평소에 T가 가진 에너지가 건전하고 활기차게 뻗어 나가기 때문에 얼핏 보아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T 안에는 분명 그런 성격이 있다.


  실제로 그런 적도 있었다. 나이에 비해 낮은 학년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서둘러 월반을 하려고 간 상담에서 학교 측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었다. "영어 교과서를 읽다가 발음이라도 틀리면 다른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데, 그럼 자라 목 움츠러들듯 확 기가 죽는다. 그런 아이를 어떻게 월반을 시킬 수 있겠냐"는 말이었다. 당시 우리는 T 내면에 있는 그런 성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받지는 않았지만, 그런 면보다 노력하는 면이 더 큰 T를 알아서 속상해했다. 실제로 성적도 좋고 반장도 여러 번 할 만큼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측과 더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T의 수업 태도와 여러 가지를 참작해 무사히 월반을 했고, 그 전이나 그 후로나 T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훌륭한 학교 생활을 계속해 오고 있다.


  T를 보면서 자랑스럽고도 고마운 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모자란 면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싫은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모자람을 감추고 없애려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모습에 쉬이 만족하지 않고 그래서 언제나 자신을 갈고닦는 것을 멈추지 않는, 뿌리로 물을 끊임없이 쭉쭉 빨아들이는 나무 같은 친구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만 몰두하게 되면 좀 이기적이고 쌀쌀맞아지기 쉽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다들 다정하고 농담을 잘 하고 주변을 푸근하게 품어주는 사람에게 더 끌리기 마련이니까. 실제로 집에서도 농담 잘 하고 재미있는 형들 혹은 정말 큰형처럼 뭐든지 받아주는 형들을 막내들이 더 편안하게 여기고 그런 형들 가까이에 더 붙어있는 모습들을 보곤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24명이 복작복작 살아온 덕에 T는 스스로에게 매몰되는 짓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악기 연주도 잘 하고,
언제나 뭐든지 열심히 배우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다.


  많은 식구가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두 집에 나눠 살던 시절의 일이다. 당시 우리는 상대적으로 어린 아이들과 누나들, 큰 아이들과 형들로 각각 집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내 동생이 인도를 방문했던 것처럼 다른 디디의 남동생도 여름방학을 맞아 자기네 누나가 사는 곳에 놀러온 참이었다. 성격이 유하고 친화력도 좋아서 금방 적응하고 잘 지냈지만, 음식도 물도 기후도 무엇 하나 같지 않은 곳에서 지내다 보니 하루는 좀 아팠던 모양이다. 이른 아침 열이 올라 끙끙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려고, T는 아침 댓바람부터 자전거를 몰고 눈썹 휘날리게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아파 누운 형은 물론이고 친동생을 걱정할 누나의 마음까지 헤아려서 급하게 움직여준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왔다는 그때 T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언제나 T는 그랬다. 굳이 딱 생각나는 특별한 일을 많이 만들기보다, 그냥 일상에서 항상 주변을 맴돌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먼저 나서서 뚝딱뚝딱 움직였다. 입만 살아서 좋은 말 예쁜 말만 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T는 항상 솔선수범 그 자체였다. 그런 T의 모습을 보면 배울 점이 많은 모습에 부끄러워지는 동시에 T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고는 했다.



  T는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비슷하다. 내 눈에 T는 너무나 훌륭하고 반짝반짝 빛나지만, 세상의 기준에서 아주 거대한 인물이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신문에 오르고 텔레비전에 나오고 세간의 화제가 되고 뭐 그런 일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서 어떤 삶을 살든 T는 언제나 그 날 분의 짐을 들어 옮기고, 주변의 아픈 이를 위해 기꺼이 땀을 흘리고,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화려한 필기체로 글씨를 쓰고 글씨가 잘 써졌다며 만족해 하고,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나 칭찬을 들으면 흐뭇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선하고 착실한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 어딘가에 든든한 기둥 하나가 들어서는 기분이다. T가 나무라면 그 밑둥은 튼튼하고 그늘에는 누군가 쉴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늘에서 제2의 T가 자라고 제3의 T가 자라는 것을 선순환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을 떠올리며 나는 또 한번 행복하였다.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던
더더욱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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