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다녀왔는데 갈 때 쓰고 간 양산이 올 때는 우산이 되었다. 책을 돌려주고 새로 빌려 나오는 사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도서관 옆에는 낡은 공중전화가 한 대 있는데 왼편의 위쪽 유리가 깨져 있었다.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누가 이렇게 화가 났을까. 누군가 일부러 깨뜨린 게 분명한 공중전화의 빈 창을 보며 깨뜨려버린 마음을 생각했다. 저렇게 산산조각 내버릴 만큼 화가 났었나, 왜 화가 났을까, 지금은 괜찮을까, 부서져있는 유리조각들이 누군가의 마음 같았다. 이제는 괜찮아졌기를, 누구의 마음이든 평화로워지기를,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빗줄기가 굵어서 발이 다 젖어버렸다. 먼지와 비로 더러워진 발을 씻고 마루에 앉았는데 어두웠다. 하필 마루 형광등이 고장난 지금 오후 한 시의 어둠이라니,라는 생각도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새로 빌린 책들을 훑어보며 빵 한 개를 다 먹었고 살이 찌겠어,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비가 오는 소리를 들었다. 비가 들이칠까봐 빨래를 널어놓은 쪽 베란다 문을 닫고 불을 환하게 밝힌 방에서 일기를 쓴다.
나뭇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나무 밑에서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홑장의 나뭇잎도 있고 나뭇잎이 서로 겹쳐 초록이 짙어진 부분도 있다. 혼자일 땐 가볍고 둘일 땐 짙어지는 초록이, 그 무수히 많은 잎들이 연두 연두 초록 초초록 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나는 그렇게나 좋다. 나무 밑에 가만히 앉아 간혹 위를 바라보고 웃다가 그 초록의 그늘 속에서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다가 풀 냄새 가득한 공기 한 모금, 맥주 한 모금, 그렇게 이 여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