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을 시작했다. 어쩌면 사는 일이라는 건 고뇌의 연속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후부터 많은 게 조심스럽고 두려워졌다. 낙관이 낙관적인 상황을 가져온다고 믿었던 나는 삶은 고뇌라는 이 생각이 삶을 지배할까 봐 걱정이 된다. 터무니없이 미신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두려움이 두렵다. 불안 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슬픔이나 우울은 있었어도 그동안의 나는 불안을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안. 그건 불안이 다가올 일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의 일 같은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거나 그리지 않는 인간이기 때문에, 앞날에 대해서는 잘되겠지라는 낙관만 갖고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불안을 몰랐다. 불안이란 일어나지 않은 일들과 관련된 것이니까,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톱만 물어뜯는 것이 불안이니까 나는 불안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삶은 어쩌면 고뇌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고뇌의 연속이면 어쩌나 앞으로의 시간들이 불안해졌다. 뜨개질을 시작한 건 그래서였다. 바늘을 찔러 넣고 실을 돌리고 빼내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엔 그럭저럭 불안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막상 시작해 보니 너무 간단해서 손을 놀리면서도 잡생각이 끼어든다. 다음엔 좀 더 복잡한 방법의 뜨기를 시도해야겠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다.
방이 이렇게 따뜻한데 빨래도 저렇게 잘 말랐는데, 잠든 남편과 지호의 숨소리가 이렇게 고른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불안 속에 앉아 있다. 다행인 건 크리스마스트리의 작은 전구들.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은 이상하게 평화롭고 따뜻하다. 트리 옆에서 캐럴을 들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는 더없이 평화로운 이 장면 속에 불안이 작은 파도처럼 철썩이는 건 나밖에 모르는 일. 그러니 우리는 '나는 너를 알아'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2017. 12
-어쩌면 저 불안은 예감 같은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