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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May 20. 2022

나이테에도 비밀이 있다

어제는 일찍 마치고 퇴근길에 맥주가 마시고 싶었다. 마땅한 곳을 찾는데 여기도 저기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싫었다. 말을 하고 싶기도,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제는 나이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테를 잘 살피면 나침반 없이도 남쪽과 북쪽을 알 수 있다는데 나이테가 넓은 쪽이 남쪽, 좁은 쪽이 북쪽. 햇볕을 많이 받은 남쪽은 나무가 성큼 성큼 자라서 나이테와 나이테의 사이가 넓고, 햇볕을 적게 쬔 북쪽은 더디게 자라서 나이테 사이가 좁다고 한다. 나는 나무를 좋아해서, 울창한 나무 밑은 걸어만 다녀도 축복이 쏟아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세상의 나무들이 따뜻한 쪽으로 기울어 넓어져가고 있다 생각하니 우주가 1.5배쯤 아름다워진 느낌이었다. 따뜻한 걸 좋아하는 거였구나, 너도 좋아하는 게 있구나, 귀여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나무가 좋아하는 게 어디 햇볕뿐이겠어, 비도 바람도, 노래도 좋아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묵묵한 나무도 따뜻한 쪽으로 기운다. 생명 있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뜻한 쪽으로 기운다. 나도 따뜻한 사람이 좋다. 나무들이 줄지어 선 길을 걸어갈 땐 노래를 불러야겠다. 따뜻한 걸 좋아하는 나무에게 따뜻한 마음을 담아 도레미파솔 노래를 들려줘야지. 나의 노래를 들으려고 몸을 슬그머니 기울일 나무를 상상한다. 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 아주 조금씩 넓어져갈 희고 깨끗한 나이테를 상상하니 우주가 세 배쯤 아름다워진 것 같다.

우주가 아름답기가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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