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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Sep 16. 2022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작별의 노래

왜 내내 울컥하지, 생각해 보니 너무 고마운 일이 많아서였다. 오늘 나의 생일이었는데 스물여덟에 만났던 첫 제자 효정이는 그때 잘한다 잘한다는 말보다 힘든 일은 없냐고 물어봐 줘서 감사했다고 오랜만에 안부를 전해 왔다. 제법 일찍 결혼해서 아빠가 된 상범이는 예쁜 아들 덕에 어른이 되어가는 바쁜 와중에도 나의 하루를 궁금해해 주었다. 역사가 가장 긴 영주의 인사. 나의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느라 골머리를 썩고 있고, 나는 그런 친구들이 안쓰럽고 사랑스러워서 가급적 한 마디로라도 안아주고 싶었다. 정림이는 지금의 네가 예전의 너보다 행복하진 않을지 몰라도 지금의 네가 더 진짜고 좋다고 말해 주었다. 언니는 귀찮고 기쁘고 번거롭고 즐거운 모든 순간에 함께 해 주었다. 아빠 엄마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아빠의 목소리가 작은 것 같아 내가 더 크게 불렀다. 지호는 손소독제와 핸드크림을 선물하고 내 옆에 오래 누워 있었다.


오늘 나의 생일이 지나갔는데 나는 한 가지, 예전과 다른 인간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나 나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대학 시절로 가고 싶었다. 학교 곳곳에서 시간을 마구마구 즐겁게 흘려보내던 그 시절을 나는 너무 사랑했다. 그러나 이제는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때가 아무리 좋았던들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똑같이 겪어야 한다면 나는 과거의 어느 때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 지금의 나로 만족한다. 그 어느 때의 나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너무 단호해서 조금 놀랐다. 겨우 이만큼 찾은 안도를 조금도 뒤로 돌리고 싶지 않다. 고마워, 괜찮니, 좀 어때, 만날까, 수없이 말을 걸어 준 친구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고마워라는 답장으로 끝내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고마워, 괜찮니, 좀 어때, 만날까라고 먼저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힘을 내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건배.


202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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