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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Aug 02. 2022

우리 엄마

작별의 노래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나는 엄마 아빠와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결혼으로 집을 떠난 지 12년 만이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호와 단둘이라고 생각하니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장례 둘째 날 아침, 나를 장례식장에 데려다주며 엄마가 말했다. 너는 아무 걱정 말고 지호 생각만 해. 다른 건 뭐든지 엄마가 해줄 테니까. 너랑 지호 위해서 엄마가 뭐든지 다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는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너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저 차 앞 유리를 바라보며 응, 응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서야 그런 생각을 했다. 당시의 나는 엄마의 마음까지 헤아릴 여력이 없었다. 나는 오로지 우리 지호, 우리 지호 생각뿐이었다. 나를 남편의 장례식장에 데려다주던 엄마의 마음도 오로지 우리 선희, 우리 선희뿐이었겠지.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중에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언니와 동생은 본인들의 슬픔이나 안타까움을 앞세우지 않았다. 흔들림 없이 나를 지켜 주었다. 나는 그 흔들림 없는 사랑 속에서 마구 흔들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그렇게 사 년이 흘렀다.


엄마 아빠와 사는 일은 동아줄 같은 거였다. 붙잡아야 내가 살 수 있었다. 지호를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키우고 싶었다. 지호에게 쏟아질 가족들의 사랑을 생각하면 안심이 되었다. 자라면서 내가 받았던 사랑을 생각하니 그 사랑을 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충만한 사랑 속에서 지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채워지기를 바랐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것들이 익숙해지고 나자 나는 때때로 집이 답답했다. 엄마 아빠가 늦은 밤까지 틀어놓는 티브이 소리가 피곤했다. 늦게 들어가는 날이면 내가 올 때까지 잠도 안 자고 기다리는 엄마가 부담스러웠다. 속옷이 비치는 것 같으니 옷을 갈아입고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참기 힘들었다. 나는 속으로 나를 배은망덕한 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아무 걱정도 염려도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어렸을 때 생각이 난다. 저절로 웃음이 난다.

엄마는 오랫동안 나의 자부심이었다. 엄마의 천진난만함, 너그러움, 따뜻함 그 모든 게 나의 자부심이었다. 우리 엄마는 말이야, 하면서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면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의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있기가 힘들다. 가급적이면 혼자 있고 싶었다. 조금만 아파도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초조해하는 엄마가 싫었고, 냉장고에 물건을 쌓아두는 엄마가 싫었다. 경제관념이 없는 것도 싫었고 정치에 열을 올리는 것도 싫었다.


나는 나에게 말을 걸지 말아 줬으면 싶을 때는 책을 읽었다. 내가 책을 읽고 있을 땐 엄마가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매일이 그런 마음이었던 건 물론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런 마음이 커졌던 건 사실이다. 잘해야지, 아니야 애쓰기 싫어,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집에서라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미안한 마음과 내 멋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싸웠다. 그러다 어제.


지호가 내 방에 와서 재잘재잘 떠드는데 마루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던 엄마가 똑똑 방문을 두드리고 살짝 열더니 ‘잔다’하고 인사를 했다. 지호와 나는 입을 모아 ‘잘자아아아’하고 인사를 했다. 우리의 목소리는 금방 나눈 이야기의 여운으로 들떠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우리에게 방해가 될까 봐 방문을 활짝 열지도 못하고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그때 본 엄마의 옆모습이 생각났다. 언젠가는 엄마와 나도 영영 헤어질 텐데 엄마가 없는 집에서 오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옆모습이 너무 쓸쓸하게 기억될 것 같았다. 방문을 활짝 열지도 못하고, 슬쩍 들여다보고는 멋쩍은 표정으로 돌아서던 엄마의 쓸쓸한 옆모습 때문에 벌써 후회로 마음이 아파왔다. 그동안 내가 쓸쓸하게 한 엄마의 모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던 나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았을 엄마, 닫힌 내 방문 앞에서 서성였을 엄마, 늦은 시간까지 나를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 있었을 엄마, 몇 번이고 시간을 확인하며 초조했을 엄마.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엄마를 떠올렸는데 모두 그런 쓸쓸한 모습이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엄마를 쓸쓸하게 내버려 두지 말아야지, 아직은 나에게 기회가 있으니까, 엄마를 쓸쓸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기회가 있으니까, 앞으로 그러지 말자는 결심으로 지나간 엄마의 모습을 덮으려 했지만 마음이 아픈 건 여전했다. 오래오래 마음이 아프다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엄마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마루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서로에게 잘 잤냐고 습관처럼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말투는 다정하지만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한지는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보는데, 엄마는 나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와 눈을 맞추고 웃었다. 잘 잤어?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데 목이 조금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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