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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Aug 01. 2022

지금까지와 다를지라도

작별의 노래

일 년 넘게 이어오던 일이 마무리가 되어 간다. 돌아보니 그 일 년에 여러 가지 일들이, 언제나 일어날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일어날 만한 일들을 겪으며 어쩌면 나는 이제야 남편의 부재를 실감한다. 자려고 불을 끄면 막연한 불안이 내 옆에 함께 누워 자꾸 울 것 같다.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어떤 것이 내 안에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그것은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인데 그것 덕분에 지금까지의 내가 있어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친구가 이름 붙여준 그것의 가장 가까운 이름은 ‘낙관’인데, 낙관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그것을 일단 낙관이라고 부르겠다. 남편은 ‘네가 지금의 모습으로, 너 자체로 살아올 수 있는 것은 내가 있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자기가 지켜주고 있어서 내가 나로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가끔 남편은 조금 억울한 듯 말했다. 나는 남편의 말에 대체로 수긍했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마음을 갈고닦으려는 나의 노력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있으니까 내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거 알아. 늘 고마워.”라고 대답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때 내가 남편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네가 아니었어도 나는 나로서 살 수 있었을 거야, 그게 나라는 사람이니까.’였던 것 같다.     


요즘의 나는 당신이 펼쳐 놓았던 그 세계, 우리를 지켜주려고 안간힘을 쓰며 만들었을 그 세계의 평화로움과 안정감에서 내가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때 남편이 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되었고, 그 말이 생색이 아니라 알아달라는 투정이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닫는다. 내가 해야 하는 것, 할 수밖에 없는 것, 도망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비를 고스란히 맞고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누구도 비를 가려주지 않고 같이 맞지 않아. 온전하게 나 혼자 짊어지고 이 세계에 서야 한다는 실감이나 무게 때문에 자려고 누우면 자꾸 울 것 같다. 내가 사라질 것 같아서,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올까 봐. 그리고 어떤 경험은 그 그림자가 아주 길어서 벗어나는데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알았다. 그 시간을 그림자로만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걸까. 그게 어렵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그게 어려워.

파도가 쉼없이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막막한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고민했다.

제주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서 나는 그걸 찾으려고 곰곰이 생각했다. 앞으로의 내가 가질 마음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는 유란이 생각을 했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 우리가 즐거웠을 때, 미래가 막연하긴 했어도 우리가 충분히 낙관적일 수 있었던 그때, 눈을 감고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려 보니 너무 빛난다. 우리에게 어떤 시간이 다가올지 모른 채 그때의 우리는 너무 충만하게 행복하고 빛났다. 그때 우리가 몇 년 후 우리는 삶과 죽음으로 갈라질 테고, 또 나는 그 몇 년 후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빛났던 그날들처럼, 앞날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건 그때와 같으니까 그때의 우리처럼 그냥 지금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그때처럼 나는 충만하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이제 나는 자신이 없어졌다. 자신이 없어졌어. 그게 사실이야.     


낙관이 지금까지의 나를 지켜줬지만 이제 낙관만으로 갈 수는 없다는 것도 안다.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다음 챕터의 나는? 나는? 여러 번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자신은 없지만, 나는 지금까지보다 좀 더 씩씩하고 분명해지기로 했다. 동시에 너그럽고 가볍기를 바란다. 어쩌면 앞으로의 나는 쉽게 자책하고 구겨져 쪼그라들 것이다. 조심스러워 움츠러들고 잠 못 드는 날도 많겠지. 그렇지만 금세 털고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모습이면 어때, 나는 언제든 열심일 텐데. 열심히 고민하고 털고 일어나 웃을 나를 믿기로 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나를 나로 만들어 준 것은 넘치는 사랑이다. 이어진 마음, 마음을 타고 전해지는 사랑, 그러니 혼자 비를 맞고 있다는 내 생각은 아마 틀린 것일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를지라도 나를 아무렇게나 버려두지 말아야지. 이것은 나의 다짐. 내일 무너질 나를 모레 다시 일으킬 다짐이다. 그러니 너도 내 안에서 사라지지 말아라. 사라지지 말아.     

202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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