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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Aug 10. 2022

쓰고 싶은 마음

나에게는 오랫동안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은 나의 한가운데에 묵직하게 들어앉아서 내가 어느 쪽으로도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 주었다. 흔들리더라도 철퍼덕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쓰고 싶은 마음 덕분이었다. 넘어질 것 같으면 넘어질 것 같은 마음을 썼다. 부서질 것 같으면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을 썼다. 쓴다는 행위가 나를 아주 넘어지게, 아주 부서지게 두지 않았다. 쓴다는 마음을 품고 쓸 수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을 품은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쓰고 싶은 마음 없이 시간이 흘렀다. 덜 사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래서, 쓰고 싶은 마음을 잃어서, 쓰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쓰기로 했다. 부서질 것 같을 땐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을 쓰고 넘어질 것 같을 때 넘어질 것 같은 마음을 쓴 것처럼 쓰고 싶은 마음을 잃은 지금은 그 잃은 마음에 대해 쓴다. 억지로 되는 건 점점 없어진다. 모든 것들이 때가 되어야만 움직인다. 지금 나는 젖은 발로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밖을 내다보다가 아이스라테를 마신다. 밖에는 비가 오고 카페 안에는 커피머신 소리가 위이잉 울린다. 어깨에 묻은 비를 털며 두 사람이 들어왔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이런 것들을 옮기며 쓰고 싶은 마음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얼음만 남은 유리잔에 뿌옇게 물방울이 맺힌다. 나는 방금 읽은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어 두었다.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대양 속의 소금같이, 허공 속의 외침같이, 사랑 속의 통일같이, 나는 내 모든 겉모습들 속에 흩어져 있답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 모든 겉모습들은 저녁의 지친 새들이 둥지로 돌아오듯 나의 속으로 돌아올 거예요. 고개를 돌리고 순간을 지워 버리세요. 생각의 대상을 갖지 말고 생각해 보세요. 제 어미가 입으로 물어다가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도록 어린 고양이가 제 몸을 맡기듯 당신을 가만히 맡겨 보세요.”

나를 무방비하게 맡기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의 대상을 갖지 않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면서도  구절이 너무 좋아서 위아래에  번씩  번이나 모서리를 접어 두었다.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니  좋아서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자리에 외우고 싶은 마음을 포개 놓는다. 나는  꽃이에요.  하늘이고,  노래, 지금의 졸음, 어제 불어온 바람,  속의 고요, 포기하지 않을 갈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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