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오랫동안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은 나의 한가운데에 묵직하게 들어앉아서 내가 어느 쪽으로도 넘어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 주었다. 흔들리더라도 철퍼덕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쓰고 싶은 마음 덕분이었다. 넘어질 것 같으면 넘어질 것 같은 마음을 썼다. 부서질 것 같으면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을 썼다. 쓴다는 행위가 나를 아주 넘어지게, 아주 부서지게 두지 않았다. 쓴다는 마음을 품고 쓸 수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을 품은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쓰고 싶은 마음 없이 시간이 흘렀다. 덜 사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래서, 쓰고 싶은 마음을 잃어서, 쓰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쓰기로 했다. 부서질 것 같을 땐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을 쓰고 넘어질 것 같을 때 넘어질 것 같은 마음을 쓴 것처럼 쓰고 싶은 마음을 잃은 지금은 그 잃은 마음에 대해 쓴다. 억지로 되는 건 점점 없어진다. 모든 것들이 때가 되어야만 움직인다. 지금 나는 젖은 발로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밖을 내다보다가 아이스라테를 마신다. 밖에는 비가 오고 카페 안에는 커피머신 소리가 위이잉 울린다. 어깨에 묻은 비를 털며 두 사람이 들어왔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이런 것들을 옮기며 쓰고 싶은 마음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얼음만 남은 유리잔에 뿌옇게 물방울이 맺힌다. 나는 방금 읽은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어 두었다.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대양 속의 소금같이, 허공 속의 외침같이, 사랑 속의 통일같이, 나는 내 모든 겉모습들 속에 흩어져 있답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그 모든 겉모습들은 저녁의 지친 새들이 둥지로 돌아오듯 나의 속으로 돌아올 거예요. 고개를 돌리고 순간을 지워 버리세요. 생각의 대상을 갖지 말고 생각해 보세요. 제 어미가 입으로 물어다가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도록 어린 고양이가 제 몸을 맡기듯 당신을 가만히 맡겨 보세요.”
나를 무방비하게 맡기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의 대상을 갖지 않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면서도 이 구절이 너무 좋아서 위아래에 한 번씩 두 번이나 모서리를 접어 두었다. 한번 더 소리 내어 읽어보니 더 좋아서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자리에 외우고 싶은 마음을 포개 놓는다. 나는 저 꽃이에요. 그 하늘이고, 이 노래, 지금의 졸음, 어제 불어온 바람, 그 속의 고요, 포기하지 않을 갈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