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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Feb 04. 2023

봄을 맞을 준비

이제 좋을 일만 남았다

꼭 이즈음, 해가 길어졌구나, 감탄하게 되는 이 즈음에는 퇴근길이 몹시 즐겁다. 퇴근길인데 해가 남아있어, 다 지지 않았어, 앞으론 점점 밝아질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이제 좋을 일만 남았네’ 싶어 혼자서도 웃는다. 이 정도의 밝음도 반가워서 다만 어깨를 펴고 걸었을 뿐인데 결국은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고. 뒷걸음치고 있는 것 같은 순간도 결국은 나아가는 길의 한 대목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자 어깨가 좀 더 활짝 펴졌다. 뭐가 뭐래도 나아갈 수밖에 없어, 그렇게 생각하니 강력한 아이템을 얻어 레벨업이 된 기분이었다. 그 기분에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눈앞에 보이는 것도 잡히는 것도 없었고, 낙관이라기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 기분엔 각오가 있었다. 와 봐, 뭐든지, 이런 각오가. 두 주먹 꽉 쥐고 다 덤벼, 이런 각오가 아니라 한 발 한 발 앞으로 가는데 물웅덩이가 나오면 힘주어 건너뛰고, 뛰다가 발이 젖으면 잠시 말렸다가 다시 걷고, 가시덤불이 나오면 찔리지 않을 수 없겠지만 걷다 보면 또 상처가 낫겠지 하는, 눈앞에 뭐가 나와도 결국은 통과해가지 않을 수 없다는, 통과하고 말겠다는 각오.

저 끝만 밝을 뿐인데 저물어 가는 저 빛이 나를 일으켜 주는 것 같다

넘어져도 일어나고 싶다. 넘어져서 누워 있는 시간이 길더라도 결국엔 다시 일어나고 싶다. 일어나서 내 두 발로 다시 섰을 때 나는 나를 그전보다 더 믿게 되니까. 그렇게 내가 나를 안심시키는 일을 반복하면서 살고 싶다.

퇴근길인데 해가 지지 않아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휩싸였다. 우리도 자연이라 봄이 온다고 좋은 생각들이 싹을 틔운다. 어젯밤엔 낮에 찾아들었던 헨델의 음악을 작게 틀고 누웠다. 봄의 꽃밭에 누워 있는 기분이 들어서 놀랐다. 모든 것들이 봄을 가리키고 있다. 퇴근길의 밝음도 그 길에서 샘솟던 각오도, 헨델을 틀고 누운 밤도 모두 봄을 가리킨다.

이 모두가 봄을 맞을 준비. 눈을 감고 연두의 어린싹들이 움틀 상상을 하니 감은 눈 속이 환하게 빛난다. 좋아, 이제 좋을 일만 남았어, 좋을 일만 남았다.

기다릴게 봄,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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