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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Aug 25. 2023

무엇보다 오늘, 사랑인 채로

개브리얼 제빈, <섬에 있는 서점>

나는 최근 두 개의 글을 썼다. 하나는 읽은 책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구절이 있어서, 또 하나는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둘 중에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글은 첫 번째이다. 소개하고 싶은 구절을 읽었을 때의 벅차고 좋은 마음을 나는 유지하지 못했다. 나는 내내 어지러웠고 혼란스러웠고 슬펐다. 그런 마음으로 이 아름다운 구절을 온전히 소개할 수는 없었다. 거짓말 같아서 글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실은 저 마음은 오래도록 내 것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내가 되는 것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아무나 아무거나 사랑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랑에 인색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마음이고 싶었다. 좋은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그 자체이고 싶었다. 물론 그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자주 나쁜 마음이었고 애초에 가능한 꿈이 아니라는 걸 숱하게 깨달았다.


그래도.

그렇다 해도.


‘그래도‘는 마법 같아서 어디에 갖다 붙여도 쓰러지지 않는다. 기어이 일어나 나를 일으킨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내가 좋은 마음 자체가 아니라도 말이야, 내가 나쁜 마음이 더 자주 든다고 해도 말이야, 그래도, 그렇다 해도 말이야.

이 말 뒤에는 내 목소리가 아니라 네 목소리가 덧붙어야 하는데 예컨대 네가 내 편을 들면서 ‘그럼.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너는 말이야,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야.‘ 막 이러면서 나를 추켜세운다.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고 되물을지 몰라도 나는 그런 우리를 사랑하니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곧 내가 되니까, 결국 우리가 내가 되어서 나는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니까, 더욱 소중한 무엇이 되어 내일 같은 그깟 것쯤 아무렇지 않게 살아낼 힘을 얻는다.

시팔 내일이 뭐가 두려워. 오늘, 오늘뿐인걸, 내일은 오지 않았는걸. 있는 것은 오늘뿐이다. 현재는 두렵지 않다. 지금은 누구보다 잘 보낼 수 있어. 그러니 내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보다 오늘,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며 나 자신이 사랑인 채로 그렇게 살아내고 싶다. 그렇게 지지 않고 살아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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